2018. 10. 6. 토요일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 보니 전날부터 내리는 비는 한층 거세져 장맛비처럼 퍼붓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
호출한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는 집사람과 함께 06시 30분에 출발하는 속초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쉼 없이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괜한 짓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고속버스는 10시쯤이 되자 속초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린 우리 부부는 다시 택시를 타고 속초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그런데 시외버스터미널의 매표소 직원은 고성 대진항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아니라 일반버스를 타야 된다면서 버스정류장의 위치와 대진행 버스의 노선번호까지 알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행인이 뜸한 길거리의 한 음식점에서 늦은 식사로 아침의 시장기를 달랜 후 승차한 대진행 버스는 1인당 약 5,000원의 요금과 1시간 조금 넘는 시간을 삼키고 나서야 우리를 대진항 입구에 내려주었지만 그곳의 비바람은 더 거세져 있었으니…
태풍으로 적막강산이 된 강원도 고성 대진항.
인기척이 전혀 없는 대진항 한 모퉁이에서 우리 부부는 비옷으로 완전 무장을 한 다음 발걸음을 내디뎠다.
2박 3일 동안 강원도 고성의 대진항에서 속초해변까지 약 50.2km의 해파랑길을 걷기 위한 첫발인 셈.
하지만 오늘 우리 부부가 내디딘 첫발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니…
해파랑길은 강원도 고성에서 부산까지의 동해안 트레일 길이며, "해파랑"에서 '해'는 태양 또는 바다(海)를 연상시키고 '파'는 파란 바다 또는 피도를, '랑'은 '누구누구랑' 또는 '무엇이랑'처럼 함께할 때의 의미를 가지니 '해파랑길'은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나는 작년 9월 30일부터 10월 12일까지 13일 동안 속초해변에서 부산역까지의 520km를 나 혼자서 걸었다. 하지만 속초해변에서 고성까지의 구간은 언젠가는 집사람과 함께 걷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던 중 작년 10월 말경에 있었던 두 딸의 시댁 어른들과 함께한 나의 520km 도보여행 완주 축하모임에서 내가 속내를 이야기했더니 두 사돈은 우리 부부만 걸을 게 아니라 세 부부가 다 함께 걷자고 하면서 잡았던 날이 올 10월 6일부터 10월 8일까지의 2박 3일이었고 , 지난 9월 중순에 있었던 사돈들과의 모임에서도 보름 후 정도면 함께 떠날 도보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그런데 큰 변수가 생겼다.
작은딸의 시어머니이신 경기도 광주 사부인께서 추석 무렵부터 무릎통증이 심해 병원에 갔더니 장거리 보행은 큰 위험이 있다며 한두 달간의 통원치료를 권했단다. 광주사돈께서는 같이 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우리 부부와 중곡돈사돈, 즉 두 집만 다녀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늘 함께하는 세 집인데…
결국 세 부부의 도보여행은 후일로 연기했다.
아쉬웠다.
나는 사돈들께 양해를 구한 다음 사전답사라 여기고 왕복 고속버스표까지 예약을 했다.
그런데 출발을 며칠 앞두고 또 변수가 생겼다. 마른하늘에 벼락이라더니 멀쩡한 가을 하늘에 태풍이란다.
우리나라를 피해 갈 것 같다던 태풍, '쿵레이'가 날이 갈수록 한반도 쪽으로 다가오고 위력 또한 역대급이란다.
딸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위험하다며 가지 말라 성화고, 함께 가기로 한 집사람조차 예약한 버스표를 취소하라고 했다.
기왕 마음먹었던 도보여행인데…
지금이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날인데…
시간마다 속초지역의 일기예보를 검색하며 망설이다 첫날인 6일엔 종일 비가 내리지만 둘째 날은 7일과 마지막 날인 8일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예보를 보고는 계획대로 걷고자 대진항까지 왔으니 이제는 물러날 수 없는 노릇.
대진항→ 초도항→ 화진포→ 이승만대통령별장→ 화진포성(김일성별장)→ 거진항
집사람은 생각보다 잘 걸었다.
줄기찬 빗속의 도보에 한 마디의 짜증도 내지 않고 즐겁게 걸었다.
보행거리: 11.6km
소요시간: 3시간 12분
··················
거진항에서 먹었던 싱싱한 회는 얼마나 맛나던지…
모텔 온돌방의 따끈한 욕조에서 3시간 동안 홀딱 젖은 몸을 녹일 때는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
김일성별장이었던 화진포성 가는 길의 바다
-화진포의 설화-
먼 옛날 화진포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해 마을에 구두쇠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봉사 스님이 이화진의 집을 찾아와 시주를 얻으려 하자 시주대신 소똥을 퍼주었다. 그러자 스님은 염불을 외며 소똥을 바랑에 받아 넣고는 답례로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말하며 돌아서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드리며 "우리 아버님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빌었다. 그러자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화진포 고개의 고총산까지 올라갔다. 며느리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딱 멈춰 서며 며느리에게 말했다.
"왜 자꾸 나를 쫓아 오시오?"라고 묻자 며느리는 사정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스님은 시주를 받으며 "그대는 나를 따라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돌아보지 말라"라고 말했다.
며느리가 얼마 동안 스님 뒤를 따라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쾅'하고 하늘이 무너질 듯 한 큰 소리가 나자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봤다.
그러자 하늘에는 폭우가 마구 쏟아지고, 이화진이 살던 집이며 논밭이 순식간에 모두 호수로 변했다.
스님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고, 며느리는 애통해하다가 그만 돌이 되어버렸다.
그 일 이후 고을에 큰 홍수가 나고, 농사는 흉년이 들기 시작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고총서낭신으로 모셨는데 그 후로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화진포라는 이름도 이화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화진포 금강소나무
3시간 동안 빗속을 걷느라 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젖어버린 집사람의 운동화를 드라이기로 말리고 있는데…
문득, 요 작은 운동화 속에 들어갈 만큼 작은 발이 4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내가 은행에서 정년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잘 내조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孝婦라 불릴 만큼 시부모님께 효도를 다하고, 두 딸이 바르게 자라도록 뒷바라지를 한 것도 모자라 지금은 三食이 서방과 외손주들까지 돌보기 위해 세상을 누비느라
더 작아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등 만감이 교차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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