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 목요일
지난 주말이었다.
같이 詩공부를 하는 文友가 카톡으로 사진 한장을 보내왔다.
「전국 만해백일장」을 알리는 포스터였다.
'백일장이라니…'
여태 참석해 본 적도 없거니와
백일장 참석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이상했다.
하루하루 가까워질 수록 관심이 커졌다.
백일장은 어떻게 하는 건지 경험하고 싶었다.
내 실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내 순발력으로 정해진 시제로 정해진 시간 내에
詩 한 수를 창작할 수 있을까 시험해 보고 싶었다
3호선 지하철을 타고 동대입구역에 내렸다.
금방 봄이 올 듯 며칠 따뜻하던 봄기운이 간밤에 내린 비바람에 쓸려갔는지 다시 추운 날씨다.
찬공기의 바람을 맞으며 동국대학교로 향하던 중 언덕에서 동녘을 바라보고 계신 스님像을 만났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유정 사명대사였다.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 밀양의 표충사로 소풍을 갔었는데
그때 표충사에서 보았던 사명대사의 유물과 전설,
그리고 한때 막내고모집이 있었던 밀양시 무안에서 사명대사의 표충비를 보고
나라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땀을 몇 되씩 흘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다
또 '사명대사'란 영화에서 쩔쩔 끓는 방에서 수염에 얼음을 얼게 하는 등
신출귀몰하는 장면을 보았으니 당시의 내겐 최고의 영웅이었다.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詩碑를 지나 들어선 동국대학교
백일장 참가 신청을 접수 받는 임시 천막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국내 3대 백일장 중의 하나인데다 이번이 39회일 만큼 전통이 있으니 참석인원이 많을 수밖에 없을 듯.
해마다 천 명이 넘는데 작년에는 1,500명이 넘었고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듯 하단다.
그렇지만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일반부가 있어서 그런지
나처럼의 흰머리는 별로 보이지 않고 젊은이들이 대부분.
참가신청을 하자 안내장과 몇 장의 원고지를 준다.
원고지 쓰는 법도 잘 모르는데…
빈자리가 없어 계단에까지 가득찬 중강당에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10시부터 시작된 1부 행사는 만해 한용운 대선사의「3.1민족자주독립선언」99주년 기념식이다.
개회 선언과 국민의례, 애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끝나자
다음은 불교의식으로 '삼귀의례', '반야심경' .
이어 만해 한용운 선사의「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낭독,
그리고 백일장을 주최하는 대한불교청년회 중앙회장의 기념사 등등.
귀로는 기념사와 축사를 듣고 있었지만
내 눈은 스마트폰에 꽂혀 원고지 쓰는 법을 읽어야 했으니…
참가자들이 배정된 강의실을 찾아가면서
2부행사인 백일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들어선 명진관의 대학·일반/시·시조 시험장.
우리 강의실 정원은 48명, 빈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나 만큼 나이들어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두 명이 감독이 신분증과 접수증을 체크하고는
칠판에 시제(詩題)를 적었는데
시제가 무려 5개이다
1. 컵밥
2. 바람
3. 미세먼지(먼지)
4. 꿈과 근심
5. 매듭
시제를 보자 앞이 캄캄했다.
컵밥은 먹어보기는커녕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짧은 시간에 제대로 쓸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쌀 포대의 매듭을 풀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글을 몇 해 전 수필로 썼던 적이 있어
이것을 축약하면서 詩로 재탄생 시켜보리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참가자가 질문을 했다.
2번의 '바람'은 자연의 바람(wind)를 말하는지 아니면 바란다는 뜻의 바람(hope)인지를…
잠시 어디를 다녀온 감독은 '바람'은 wind와 hope 두 가지 모두란다.
hope란 말에 문득 떠오르는 시상(詩想)이 있었다.
떠오르는 대로 쓰고 고치고, 또 쓰고 고치고
했더니…
하늘이시여 -이석도-
딱딱딱 산사에서 울리는 죽비소리는 구도자의 정진을 재촉하고
땅땅땅 숲속에서 들려오는 망치소리는 참나무 속 잠든 표고버섯을 깨우고 있다.
아! 하늘이시여 99년 전 3월 1일 담아 가신 만세 함성을 내 편 네 편 가를 줄만 알았지 한마음 한뜻을 모르는 어리석은 우리에게 호통 소리로 돌려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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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40분,
웬일이야
40분만에 詩 한 편을 다 쓰다니…
강의실을 나가고 싶어 원고지를 제출하려는데
12시까지는 퇴실할 수가 없단다.
작가와의 대화 등 3부 행사가 남아있고
오후 5시엔 4부 행사인 시상식이 있다는데
상의 내역은 이렇단다.
- 만해대상 : 대한민국 대통령
- 만해상 : 대한민국 국회의장
- 장원 : 서울특별시장
- 우수상 :대한불교조계종 중안신도회장
- 장려상 : 대한불교 청년회장
하지만
내게 상이란 언감생심
오늘은 멋진 경험 하나로 만사 오케이.
오랜만에 장충단 공원을 둘러보면서
나는 집을 향하여 Go Go…
잠시 후 오후 3시부터
우리집 앞 근린공원에서 열리는
『정월 대보름 맞이 민속 大 축제』를
기다리고 있는 정원준, 송은규, 정세은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