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도-
식칼은 오늘도 제멋대로다.
잔칫날엔 딱따구리가 되었다가
흥이 시들면 느릿느릿 지렁이가 되고
화가 나면 도끼가 되기도 한다.
도마의 아픔 따윈 아랑곳없이…
이미 만신창이가 된 도마는 그런데도
시퍼런 칼날을 온몸으로 다 받아낼 뿐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는다.
그것이 제 숙명인양
상처가 훈장인양
칼은 이제야 알았다.
도마가 왜 움푹 패었는지를,
도마가 없었다면 자신은
부추 한 잎조차 제대로 썰지 못하고
벌써 부러지고 말았으리란 것을…
이제서야 나도 알았다.
내가 바로 식칼이었음을
(2018.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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