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11.(화요일)
아침 7시 10분이 되자, 동서울 종합터니널 입구에 모인 친구들과 함께 포장마차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9명이 잔치국수와 몇 줄의 김밥으로 아침 요기까지 마쳤지만 아직 최동효가 도착하지 않자 한 친구는 깁밥을 한 줄을 포장 시키고 종이컵에 오뎅국물까지 챙겼다.
탑승시간에 늦지 않게 동효도 도착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늦잠을 자고 말았단다.
하긴 이틀 전인 일요일에 사랑하는 무남독녀를 시집보냈으니 몸도 마음도 얼마나 피곤했을까?
그런데도 이렇게 산행에 동참한다고 헐레벌떡 달려왔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우리를 태운 버스가 출발했다.
빈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쌍쌍이 자리 잡은 친구들이 담소를 나누는 사이 2시간 30분이 흐르고,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동효는 큰 것이 급하다며 화장실을 찾아 인근 음식점에 들어가고, 산행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준비운동을 해야 된다는 만능 스포츠맨인 종성이의 구령에 따라 맨손체조를 하고는 돌격 앞으로 Go Go∼
지난 9월 하순 경 모든 TV와 신문에는 이런 뉴스가 있었다.
"남설악 숨은 비경 한눈에"라는 타이틀이었는데, 국내 최고 비경으로 꼽히는 설악산의 만경대가 46년만에 개방되지만 개방기간은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46일간 한시적이란다.
이 뉴스를 본 한 친구가 이 뉴스를 우리 이륙산악회 단톡방에 올리자 몇 친구들이 산행을 제안하고, 이어서 날자를 조율하더니 김귀동 부대장의 치밀한 기획 아래 일사천리로 추진하여 떠나는 산행길이었다.
진행 과정에 김 부대장은
'차를 가지고 가느냐?'
'광화문의 동화면세점 앞에서 관광버스를 탑승하느냐?'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느냐?'를 놓고 의견을 수렴했다.
그러고는 차를 가져가면 운전하는 친구는 술을 마실 수 없으니 곤란하고, 관광버스를 이용하면 비용은 절감되지만 체류시간이 너무 짧아 여유로운 산행이 어렵고 벗들과 산행 뒷풀이로 설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술 한잔 나눌 시간조차 없다며 고속버스를 택했는데 나중에 보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평일임에도 적잖은 등산객이 모여들었다.
오색약수터에서 출발해 출렁다리를 건너 시작되는 등산길은 무척 편안한 길이었다.
주전골에 들어서자 뿌리로 커다란 돌멩이를 감싸안은 나무가 등산객을 반겼다.
단풍을 만끽하기에는 좀 일렀지만, 설악산 맑은 공기와 기암괴석 사이의 계곡에서 흐르는 수정처럼 맑은 물은 내 영혼까지 깨끗이 씻어 줄 것 같았다.주전골을 지나 오색석사에 들렀다.
그런데 오색사는 웅장한 대웅전을 비롯해 요사채까지 수많은 건물로 이루어진 일반 사찰과 다른 점이 많았다. 보물 제497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 하나가 있지만, 검소한 건물 달랑 단 한 채 뿐이었다. 부처님은 모셔져 있지만 '대웅전' 같은 현판도 없고, 화려한 단청조차 없었다. 오색석사는 아무런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의 아름다운, 기품있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주변의 풍광과 너무 잘 어우러진 모습은 동양의 美 또는 여백의 美가 아닌가 싶었다.
내가 지금껏 보았던 어떤 사찰보다 편안함을 주는 오색석사였다.
등산길 옆에서 여러가지 안내판들이 간혹 보였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구별하는 방법을 알리는 안내판도 있고, 돌멩이의 삶을 적은 안내판, '죽은 나무가 흙이 되기까지란 안내판이 있었다. 그런데 '죽은 나무가 흙이 되기까지'란 안내판의 내용이 산행하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나무의 일생'에 대한 수필을 한번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수정보다 맑아 보이는 물을 담은 게곡 바위의 모습이 옛날에는 정말 선녀가 목욕했을 법한 선녀탕을 지나고, 해탈의 문 같은 금강문, 옛날에 이 소에서 살던 큰 용이 천둥이 요란하고 비바람이 세차던 날 폭포수를 타고 승천했다는 전설을 지닌 용소폭포를 지나 친구들과 잠시 쉴 자리를 잡아 각자 배낭에 넣어온 간식으로 출출한 배를 채운 후 망경대로….
아니, 이렇 수가….
망경대 탐방로에 들어서기 전의 대기장에 들어서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토,일요일엔 등산객이 엄청 몰릴 것 같아 일부러 주말을 피해 화요일에 왔건만,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공원사무소의 직원이 나와 통제를 하면서 안내방송을 했다. 오전에 3,500명이 망경대를 다녀갔는데 2km도 안되는 등산로를 통과하는데 3시간 이상이 걸렸다며, 3,000명이 몰린 오후는 출입구에서 기다리는 시간만 한 시간, 등산로를 통과하는데 세 시간 등 모두 4시간 이상 걸릴 거라면서 망경대 관광을 포기하고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가 오색약수터에 가는 게 상책이라며 등산객을 분산시키려 애를 썼다.
그런 방송이 끝날 때마다 버스의 출발시간 때문인지 배낭에 산악회 리본을 단 많은 등산객들이 망경대를 포기하고 대기장 인파의 한가운데서 뚫고 나오느라 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우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관광버스를 타지 않고, 느지막이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예약해 두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대기장에서 40여 분 기다려 망경대 탐방로에 들어섰지만 몇 발자국을 걷다 서고, 또 몇 발을 걷다 서고 했으니….
마침내 기암괴석이 빚어낸 만물상이 눈 앞에 펼쳐졌다.
바로 망경대였다.
만경대? 망경대?
뉴스에서는 설악산 만경대로 소개를 했는데, 이곳 곳곳의 안내판과 안내지도에는 망경대로 되어 있었다.
어느 것이 옳은 걸까?
설악산 국립공원사무소에서 개방을 앞두고 '많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의 망경대(望景臺)로 명칭을 정했지만, 본래는 '1만 가지 경관을 볼 수 있다'는 뜻의 만경대(萬景臺)가 맞단다. 고려시대 문인들의 문집과 조선시대 문인드릐 문집은 물론 백과사전과 양양향토지 등에 모두 만경대로 표기되어 있다니 역사적으로도 망경대가 아니라 만경대가 맞단다. 향후 망경대를 정식 개방할 때는 만경대로 변경할 가능성이 크단다.
뉴스에서는 망경대를 중국의 최고 비경 중 하나인 장가계에 비길만 하다고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생각만큼 웅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금강산의 축소판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망경대에 조금은 더 머룰고 싶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이 몰린 인파에 떠밀려 다니느라 그럴 수도 없었다.
가파른 길을 걸어 하산을 마치자 우리를 맞는 맑은 계곡물.
친구들과 함께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자 설악의 맑고 시원한 계곡수가 피로를 씻어주었다.
당초 계획은 하산 후 온천물에 몸을 담그기로 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바로 하산 뒷풀이.
한 친구가 굳이 산에 오르기 전에 화장실이 급했던 동효가 신세졌던 식당을 찾아가잔다.
열 명의 장정(?)들이 실컷 먹고, 실컷 마셨으니 그 식당 주인은 복 받은 셈.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자 시계바늘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는 법.
호프집을 찾아 닭다리는 뜯고 우정은 쌓으며 한잔 더.
참 즐겁고 멋진 망경대 산행이었다.
적어도 십 년쯤은 젊어진 듯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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