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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지하철에서...

2016. 12. 8.(목요일)

오늘은 한일은행 입행동기들과 송년모임이 있는 날.

약속 장소인 아현역 부근에 있는 음식점으로 가기 위해 양재역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탔다. 11시쯤이었는데도 지하철은 거의 만원이었다. 빈자리가 없어 나는 경로석 앞에 서 있었는데, 내 앞의 경로석에는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두 분의 할아버지 사이에 한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옥수역을 조금 지날 때쯤이었다. 옥수역에서 승차하신 듯한 두 할머니가 내 옆으로 와서 섰다.

한 할머니는 머리가 완전 백발이었지만 정정해 보이고, 다른 할머니는 연세가 좀 적은 듯 검은 머리에 역시 정정해 보였다.

경로석에 앉았던 할머니가 일어서더니 백발의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백발의 할머니가 괜찮다고 사양을 하자 자리를 양보한 할머니는 곧 내릴 거라면서 다시 자리를 권했다.

백발의 할머니와 자리를 양보하는 할머니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디서 내리시는데요?"

"충무로역에서 내려요."

"나도 충무로역에서 내리니까 그냥 앉아 계세요." 

그러자 백발 할머니의 동행인 할머니가 백발 할머니를 떠밀어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이 할머니 연세가 91세예요. 고마워요."

백발의 할머니는 나이 많은 게 무슨 자랑이라며 동행인의 말을 끊으려 하자.

동행 할머니는 자랑은 아니지만 자리 양보한 분이 사정은 알아야 된다며 말을 이었다.

26년 생으로 내년이면 92세가 되시는데도 정정하지만, 매일 옥수동에 있는 복지관에 가서 춤이랑 운동을 하신다며 지금도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 피곤하실 거라면서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자리를 양보한 할머니가 그 연세에 어떻게 이처럼 건강하시냐고 놀라자 백발의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매일 이렇게 즐겁게 사는 행복밖에는 없어요."

동행하는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지금 81살인데, 10년 후에 형님처럼 건강할려나 모르겠어요"

자리를 양보한 할머니가 말했다.

"저는 80살인데…"

서로 상대방이 더 젊어 보인다며 한참 동안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하철이 동대입구역에 다다르자 할머니 옆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할머니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기가 무슨 역이예요?" 

"동대 입구인데 어디까지 가세요?"

"종로3가역"

"충무로 다음 다음이 종로3가니까 세 역은 더 가셔야 겠네요."

그러면서 백발의 할머니 입에서는 역들의 이름이 줄줄줄 나왔다.

"충무로, 을지로3가, 종로3가, 안국, 경복궁, 독립문, 무악재········· 대화."

자리를 양보한 할머니가 놀라면서 어떻게 역을 다 외우느냐고 묻자. 백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치매 걸리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매일 지하철 역이름을 외우고 있어요."

"····················"

충무로역에서 내리시는 세 분의 할머니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91세의 할머니도 저렇게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면서 매일을 즐겁고 행복한 하루로 만들어 가고 있는데, 나는…. 

나는 좀 피곤하다고 오늘은 아침운동을 빼먹었으니….

좀 힘들다고 수시로 짜증을 내고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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