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손주들-천아, 보송이, 다솜이..

은규의 외출

2014.12.17. 수요일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보라가 복직하면서 아침부터 은규와 함께 한 날들이…

집사람과 함께 아침부터 은규를 데려와 세 끼 식사에 간식까지 만들어 먹이고, 낮잠을 재우고 또 데리고 놀다보면 하루해가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만큼 바쁘다. 하지만 여전히 새벽에는 운동을 하고, 낮이든 밤이든 시간 나는 대로 동호회에 나가 색소폰을 연습할 수 있고, 친구모임에도 잘 나가고 있는데다, 손자의 재롱을 하루 종일 보면서 맘껏 사랑할 수 있으니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으랴 싶다.

여기에 나는 집사람이 힘들까봐, 집사람은 내가 힘들까봐 서로를 걱정하며, 서로의 일을 덜어주려 애쓰게 되었으니 우리 부부 사이에 쌓이는 사랑은 오롯이 덤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은규는 온통 재롱장이였다.

아침을 잘 먹은 은규에게 점심과 저녁으로 그저께 내가 끓인「 발아현미 전복죽」을 먹였다.

처음 끓여 본 「발아현미 전복죽」은, 끓일 때 데치지 않고 생으로 갈아 넣은 부루커리 때문에 냉이뿌리를 씹으면 느껴지는 알싸한 매운 뒷맛이 있어 원준이와 은규가 먹지 않을 줄 알았다. 완전히 실패한 요리인줄 알았다.

어제 우리 부부가 먹어야지 하다가 은규와 원준이에게 조금씩만 떠주었더니 아주 잘 먹지 않는가.

하물며 다섯 살배기 원준이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최고라고 했다.

한 냄비나 끓였던 전복죽은 두 손자들이 이틀 동안 말끔히 먹었다. 우리 부부 제대로 맛 볼 새도 없이

영양이 많다기에 내가 사흘 동안 현미를 발아시키면서 애써 끓인 영양 만점의 전복죽이었지만, 내 입엔 맛이 시원치 않아 실패했다 여겼는데, 손자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볼 때는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

오늘도 우리 은규는 거실과 온 방을 다니며 온갖 장남감이랑 책을 꺼내면서 잘 놀고, 낮잠시간이 되자 이내 잠이 들더니 거의 두 시간을 잤다. 적당한 묽기에 냄새도 괜찮은 황금색의 응가도 세 번이나 했다.

 

낮잠에서 일어난 은규가 점심을 다 먹자 나는 동호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서초동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였다.

우리 서초동 아파트에서 3년 동안 살았던 세입자가 내년 1월 중순 쯤 이사를 나가고 싶어해서 몇 달 전부터 아파트 인근의 중개업소에 내놓았지만,  높은 월세 때문인지 여태 아무런 연락이 없더니….

바로 현재 세입자와 연락을 주고받은 다음 아파트를 둘러본다더니 바로 계약을 하겠다고 했다. 

집사람과 함께 은규를 데리고 서초동으로 갔다.

30년 이상을 살았던 서초동.

우리 아파트 앞을 지나 부동산 중개업소로 향할 때는 은규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이 아파트를 놓지 않았다면 은규가 넓은 집에서 잘 놀고 있을 텐데…'

'원준이는 지금도 한두 살 때 다녀갔던 아파트의 놀이터를 지금도 기억하면서 이야기하는데. 

 

부동산 중개소에서 만난 사람들은 은규가할머니를 닮아 예쁘다며 귀여워했다. 

예쁜 외할머니를 닮아 은규가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집사람은, 은규는 싸인을 해달라는 사람까지 있을 만큼 가수 이승기를 많이 닮은 아빠를 닮았다며 손자 자랑, 사위 자랑까지 하는 팔불출이 되고 말았다.

시어머니 말에 따르면 은규 외할아버지도 어릴 때는 동네사람들이 '미남자'라고 했다는 자랑은 하지도 않고.

우리 아파트의 임대차 계약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나보다 두 살 많다는 세입자는 막내아들의 대학 입시준비를 위해 인천 송도 신도시에서 서초동으로 옮기로 했단다. 회갑을 넘긴 나이에 대학 입시준비하는 아들이라면 40을 훨씬 넘긴 나이에 얻은 늦둥이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내 나이에 손자가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늙으막에 얻은 늦둥이는 얼마나 더 귀하고 사랑스러울까?

우리가 제시한 조건들을 조금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입자.

세입자의 환한 표정에서 늦둥이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은 우리 복동이 은규의 즐거운 외출이 만사형통을 불러온 날이었다.

'내 손주들-천아, 보송이, 다솜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솜이가 태어난 날  (0) 2015.02.15
잠자는 은규를 보면서…  (0) 2014.12.23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0) 2014.12.16
김장하는 날  (0) 2014.12.13
은규엄마의 복직  (0) 201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