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반이 넘었다.
본래 소질이 없는 줄이야 잘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더딜 줄이야.
거의 매일 밤, 달밤에 체조하듯이 연습을 했는데도
아직 제대로 불 수 있는 곡이 별로 없으니 원 ……
입시생 레슨을 많이 한다는 20대 후반의 선생이 처음에는 꽤 괜찮다 싶었는데
감기가 심하다며 수업을 미루고, 늦잠 잤다며 미루고, 차가 방전되어 늦겠다며 미루고…
지난 연말에는 선생에게 '내 나이가 어때서'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악보를 준비해 주고, 시범 연주하는 선생의 자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해들어 마침내 사무실이 있는 영등포의 실용음악학원에 이별를 고했다.
그리고 그간 밀렸던 수업을 끝내고는 집 부근의 동호회로 옮겼다.
오픈한지 두 달되었다는 '양재색소폰 동호회'
옆에있고 꽤 오래된 '강남색소폰 동호회'와는 달리 회원은 십수 명이란다.
회원 명단을 보니 내가 제일 어리다.
대부분이 40년대 생이고, 50년대 생은 나까지 3명이다.
"젊은 사람은 왜 이리 없어요?" 물었더니,
"그러게요. 젊은 사람이 있으면 좋지만, 젊은 사람들이야 먹고 살기 바빠 동호회 나와서 연습할 수 있나요"
그렇겠다 싶었다.
레슨 선생을 만났다.
중학생 때부터 거의 50년간 색소폰을 불었단다. 길옥윤과 같은 악단생활을 한 72세란다.
1년 반동안 레슨을 받았다고 했더니, 한 곡을 불어보란다.
한동준의 노래 '사랑의 서약'을 불었다.
선생은 나에게 색소폰을 왜 배우느냐고 물었다.
전문가가 되어 무대에서 연주를 할 거냐는 물음과 함께,
나는 훗날 조용한 곳에 살면서 집사람이랑 손자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색소폰을 부르고 싶고
때로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못 부르는 노래 대신 색소폰을 불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일년 반동안 배운 것은 다 잊으세요. 다만 악보 읽는 방법이랑 박자 맞추는 요령은 제외하고…"
참 황당했다. 제대로 된 앙부쉬어를 익힌다고 얼마나 애썼는데…
입술 옆에 보조개처럼 쏙 들어가게 하려고, 볼펜을 물고다니며 얼마나 애썼는데…
이제 겨우 입술에도 근육이 생겨 입모양이 안정되고, 영등포의 여선생은 음정 음색이 좋아졌다고 칭찬했는데…
老 선생님은 입 모양을 그냥 편하게 하란다.
입술에 온 힘을 집중하는 지금 나의 입 모양은 클래식을 연주할 때는 맞지만
유행가 등 일반가요를 연주할 때는 무엇보다 비브라토(바이브레이션)가 필요하단다.
색소폰을 불 때는 비브라토가 제대로 되어야 맛깔나는 연주가 된다면서 먼저 비브라토를 연습하란다.
비브라토를 하려면 입술에 힘이들어가면 안되니, 지금까지의 입 모양과 습관을 다 버리란다.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더니…
이런 걸 멘붕이라고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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