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엔 제법 많은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비가 그친 하늘구멍에서 비 대신 바람을 쏟고있다.
울긋불긋 한창 뽐내고 싶은 단풍잎은 세찬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친구가 며느리를 맞는 날이다.
예식장으로 가는 길에 가로수가 윙윙 소리를 낼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이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고 있었다.
불과 몇 달전 푸르름으로 우리를 시원케 하고,
불과 며칠전까지 갖가지 색으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더니
낙엽이 되어 거리에 뒹굴고 있었다. 자기를 키워준 나무에게
새 봄이 오면 새 잎을 내미는 영양소가 되는 거름이 되기 위해.
나에게 오뉴월의 푸른 나뭇잎처럼 열심히 일했던 날들이 있었고
지금은 만추의 형형색색 단풍잎처럼 아름다울 날들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친구들의 축복 속에 예식이 시작되었다.
주례가 없는 예식이라지만 양가 부모의 축사를 겸한 덕담이 있어
나름 뜻있는 예식 같았는데, '혼인서약'을 '사랑의 서약' 이라 이름을 바꿔
신랑이 먼저
* 신용카드를 함부로 끍지 않겠습니다.
* 잠은 반드시 집에 와서 자겠습니다.
:
신부는
* 남편을 위해 반드시 아침밥을 짓겠습니다.
:
라며, 신랑신부가 다짐하는 내용이 요즘 젊은이답게 발랄하고 참 재미있었다.
집에 돌아오기위해 양재동 AT센타 앞에 내렸다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이 붐비고 대부분이 강아지를 데리고 다녔다.
AT센타에서 『제15회 국제 애완동물.용품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빼빼로 데이인 내일, 11월11일은 우리 부부의 결혼 기념일이면서
2008년11월11일 태어난 우리 집 강아지 뽀미의 다섯 번째 생일이다.
뽀미 생일 선물로 어떤게 있나 싶어 들어간 AT센타.
마지막 날이라 강아지를 데리고 온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통로 곳곳에서 왕왕 거리는 강아지 소리에 머리 속까지 멍∼ 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지난여름 강릉시에서 애견전용 해수욕장을 만들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오늘 박람회에서 보니 '애견 의료보험'도 있었다. 하긴 병원비가 웬만큼 비싸야지…
온갖 모양으로 치장한 강아지들을 보면서 우리 뽀미를 생각해 본다.
갓난 강아지 때는 우리 식구 모두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지
그러다 원준이가 태어나자 사랑을 원준이에게 많이 빼았겼지만,
그래도 보라 언니랑 병돈이 오빠가 있어 많이 사랑해 주고
또 주말이면 집에 데려가 같이 지내면서 재미있게 놀아주고 했었지.
그런데 지난 9월 보라 언니 집에 은규가 태어나고는 달라졌어.
보라 언니랑 병돈이 오빠는 거의 볼 수 없고, 와서도 금방 가버리니…,
엄마 아빠도 원준이 아니면 은규를 돌보느라 통 간이 없으니,
우리 뽀미는 너무너무 외로워 할 것 같았다.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사료랑 물을 잘 주고, 목욕만 잘 시켜주면 되는 줄 알았다.
알고보면 우리 뽀미도 원준이나 은규만큼은 아니지만 아직 아기인데….
뽀미야 미안해.
그리고 생일 축하해.
더 이뻐하고,사랑해 줄께.
(AT센타를 다녀온 후, 제일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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