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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상선약수

2022. 2. 20. 일요일

 

하루 10만 명을 훌쩍 넘는 확진자를 사나흘 연속 쏟아내고 있는 국내 코로나 상황.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까지 갈 수 있다는데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는 러시아 야욕의 먹구름에 덮인 하늘.

전과 4범의 잡범이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 출전해서 그런지 다 드러난 그의 비리와 의혹은 묻어둔 채,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온갖 마타도어와 흑색선전, 가짜 뉴스들이 동원해 상대방을 공격하더니 이런 요설과 궤변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까? 이제는 TV 史劇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짚으로 만든 인형을 칼과 창으로 찌르는 등 정적(政敵) 제거의 주술인 '五殺 의식'마저 등장시킨 '21세기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 선거.

너무 어수선한 세상이다.

末世다 싶다.

 

그래서일까?

핸드폰이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며 글들을 나른다.

마음을 다스리는 글또는 마음을 내려놓는 글그리고 건강과 행복, 행운 등을 기원하면서도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잊게 하거나 달래기에 도움 되는 글 또는 동영상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근에 곱씹을 만한 글이 왔다. 내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밴드와 카페에 올랐을 뿐 아니라 단체 카톡방과 개인 카톡으로 온 거의 똑같은 글이다.

여류 소설가 박경리와 박완서의 노후를 상선약수의 삶에 비유한 글이다.

 

상선약수

上善若水?

가장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 물은 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뜻으로 기원전 4세기경 중국의 老子가 지었다는 도덕경 제8장에 나오는 말이란다. 그렇다면 예부터 물을 이처럼 최고의 선으로 보는 이유는 뭘까?

첫째는 자기 자신을 낮추기 때문이란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간다. 세상에 어떤 물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물은 없다. 또 험하고 지저분한 것을 가리지 않고 어느 곳이든 스며든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다.

둘째는 포용력이란다.

물은 흐르다 바위를 만나면 자신의 몸을 나누어 휘감아 돌아간다.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과 결코 다투는 법 없이 비켜 지나가는 것이다. 둥근 모양을 만나면 자신을 둥글게 바꾸고, 네모 모양을 만나면 자신을 네모로 만든다. 어떤 환경 어떤 상대를 만나도 넉넉히 품는다.

마지막은 모든 생명력의 원천이란다.

아무리 강한 동물이나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라 하더라도 물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바싹 말랐던 땅이라도 비가 내리면 금방 생명이 움트기 시작한다.

 

소설가 박경리 씨는 말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박완서 소설가는 어떤 글에서 이렇게 말했단다.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다. 살아오면서 볼꼴, 못 볼꼴 충분히 봤다. 한 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책임을 벗고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위의 두 분은 물처럼 살다 간 분이란다.

흐르는 물처럼 남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 부쟁의 삶을 살았고···

만물을 길러주지만 공을 과시하지 않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을 살았단다.

 

이 글을 읽었더니 내 삶도 물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마다 장리곡(長利穀: 장리로 갚기로 하고 꾸는 곡식)으로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빈농의 5남매 중 셋째다.

하지만 젊음을 바쳐 개간한 비탈진 밭에 뽕나무와 감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고, 길쌈을 하는 등 갖은 고생을 다 하시면서도 일평생 큰소리 한 번 없었을 만큼 금슬 좋은 부모님의 땀과 눈물 덕에 별 어려움 모르고 자랐으니 어린 시절은 큰 물결 없이 흐르는 냇물과 같았다. 까까머리로 한일은행에 입사해 작은 물결밖에 일렁이지 않는 호숫물처럼 근무한 후 半白으로 정년퇴직한 지 벌써 7년이 넘었으니 지금은 한남대교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강물쯤 되겠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나은 은 흔치 않으리 싶었다.

나도 두 여류 시인을 닮은 걸까?

아니면 40여 년의 직장 생활 동안 하고 싶어 했던 것은 거의 다 해봤기 때문일까?

그것마저 아니면 아침마다 목을 조였던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게 편해서인지 다시 젊어지고 싶지는 않다.

젊은이들이 한창 일하는 시간에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여유로움이 얼마나 좋은데···

빨리 진급하고 싶다는 욕심, 많이 갖고 싶다는 탐욕이 사라진 지금이 얼마나 홀가분한데···

만나기만 하면 자석처럼 착착 달라붙는 세은이를 비롯해 은규, 원준이 등 세 놈의 손주들로부터 하루에 몇십 번씩이나 할아버지! 할아버지!” 큰 소리로 불리며 절친되어 살갗 맞대는 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데···,

날마다 한 시간은 원준이랑 또 한 시간은 은규랑 나란히 앉아 수학 공부하면서 칭찬하는 재미가 얼마나 큰 행복인데,

가는귀 살짝 먹은 덕분(?)에 마누라 잔소리 같은 듣기 싫은 소리 못 들은 체할 수 있어 좋고, 나보다 나이를 먼저 먹는 눈(目) 덕에는 보기 싫은 꼴, 못 볼꼴은 못 본 체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지공선사 친구들과 수시로 名山을 오르내린 후 주고받는 하산주는 또 얼마나 시원하고 얼마나 달콤한데···

내가 왜?

지금의 손주도 없고, 지금의 지공선사 친구마저 없는 젊은 날로 왜 돌아가겠는가?

 

지금이 좋다.

흐르고 흐르다 보면 저 앞에 보이는 반포대교도 지나고 한강대교, 성산대교도 지나겠지···

행주대교도 지나 저 멀리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머리에 인 서해바다에 닿을 때까지 유유히 유유히 흐르고 싶다.

너무 빠르지도 않게 흐르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흘러 서해바다에 도착한 다음.

그곳에서 뽀얀 수증기로 하늘에 올라 아름다운 저녁노을 되는 물.

나는 그런 물, 물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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