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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막상막하

2021. 7. 20. 화요일

햇살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좀 걸을 요량으로 찾은 양재천은 절정에 이른 듯 요란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군데군데 연둣빛을 감추었던 나무들은 어느새 짙푸름으로 갈아입고 있었고, 며칠 전부터 시원한 목청으로 노래 부르던 매미는 36℃∽38℃를 오르내리는 폭염을 경고하느라 목이 쉬도록 울어댔다. 걷는 듯 뛰고 있는 아스팔트는 이글이글거렸지만 어제 오후에 시원하게 퍼부었던 소나기 덕에 한결 풍성해진 양재천에서는 팔뚝만한 잉어들이 신나게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아지랑이가 피는 듯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곳곳이 거뭇거뭇했다. 도심의 인도에 시꺼멓게 눌어붙은 껌처럼 보이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씹다 버린 껌처럼 보인 것은 짓이겨진 지렁이 사체들이었다.

 

소나기로 인해 땅속에 숨 쉴 공기가 없어 나왔거나 아니면 잠긴 땅속이 답답해 나왔던 모양이다.

아스팔트 위로 기어 나왔다가 폭염에 달구어진 아스팔트의 열기에 말라죽었거나 쌩쌩 달리는 자전거 바퀴에 깔려 죽고,  산책 나온 사람들에 밟혀 죽은 것들이었다.

풀숲이나 맨땅으로 나왔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렇다면···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뒤덮은 지 어느덧 일 년 반.

그 사이 세계의 석학들이 기록적인 속도로 예방백신을 만들어냈지만, 바이러스는 인간의 백신 개발을 비웃기라도 하듯 알파 변이종, 델타 변이종 등으로 진화를 거듭하면서 지구촌은 또다시 빗장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날마다 수천, 수만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쏟아지는 코로나의 참상을 인도네시아 등 많은 국가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그런데 우얄꼬?

작년 팬데믹 초기 한때는 방역 모범국으로 불리며 많은 나라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우리 대한민국의 지금 상황은 한창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니 민초들의 두려움은 날로 풍선처럼 부푼다. 백성들의 두려움이 이러한데도 '방역 모범국'이란 해외의 칭찬 덕에 정치적 이득(?)을 크게 누렸던 위정자들은 현재로선 최선책인 예방백신 확보엔 게을리한 채 엉뚱한 요란만 떨다가도 좀 나아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얼굴을 내민다. 나아지는 모든 게 자신들이 잘해 그러한 양 '선진 방역 모범국이 어떠니···', 'K방역이 어떠니···'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그뿐이면 얼마나 다행일까 싶다. 두세 달 전까지는 7월부터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겠다 둥, 올 추석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둥 금방 코로나 상황을 끝나게 할 듯이 큰소리를 쳤다. 더 신중해야 할 위정자들이 이렇게 김칫국부터 마시는 소리를 해대자 일 년이 넘도록 부모형제조차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란 감옥에 갇혀 지내던 민초들은 현혹될 수밖에 없었으니···. 위정자들의 자화자찬과 감언이설에 현실감각을 잃은 백성들은 정말 예전의 일상이 돌아온 줄 알았으니···. 일 년 반이 넘는 긴장감을 풀어헤치고 감옥생활 같았던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말았으니···

최근 들어 일일 확진자 수가 연일 역대 최고를 갱신하는 네 번째의 대유행은 필연일지 모른다.

 

미물(微物)이니 영장(靈長)이니 하지만···

예방백신 도입에는 손을 놓은 채 자화자찬만 일삼는 위정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겠지만···

이런 위정자의 자화자찬에 부화뇌동하거나, 이 엄중한 시기에도 '나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긴장을 풀어헤친 체 여기저기 몰려다니다가 코로나에 감염된다면 비 온 뒤에 아스팔트로 기어 나왔다가 밟혀 죽거나 말라죽는 지렁이랑 무엇이 다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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