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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여행, 등산...

청계산 눈 산행

2021. 1. 30. 토요일

 

"또 눈 올지 모르니까 무리하지 마시고 이수봉만 다녀오세요."

배낭을 멘 채 등산화를 신고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집사람이 제법 큰소리로 말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척 대문을 나섰다.

새해 들어 주말마다 올랐으니 네 번째 찾는 청계산이지만 지난 주까지는 두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하느라 이수봉까지만 다녀왔더니 좀 모자라는 듯하길래 오롯이 혼자 산행하는 오늘은 좀 더 걷고 싶은데 이수봉에만 다녀오라니 어림없다 싶었다.

     

옛골 등산로에 들어섰더니 그저께 내린 눈이  아직 꽤 쌓여 있었다.

 

크게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겨울 산행은 조심과 안전이 최고다 싶어

겨울에 들어설 무렵부터 배낭에 넣어 다니는 아이젠과 스패치를 꺼내 만반의 준비를 한 후 Go

 

이파리를 다 떨군 나목들 사이에 쌓인 白雪이 겨울맛을 더하고 있었다.

 

'저 하얀 눈들이 백설이 아니라 코로나 19 백신이면 얼마나 좋을까.'

말도 안 되는··· 생뚱맞은 생각도 하면서···

 

흙 한 줌, 물 한 방울 없는 바위틈에서 멋진 모습으로 자라는 나무.

우리 삶의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물 한 방울 흙 한 줌 없는 바위만큼은 아닐 텐데

저 나무처럼 최선을 다하는 대신 고달프다 힘들다 환경만 원망하는 건 아닐까?

 

청계산의 명소 돌문바위

매봉에 오르는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한 번쯤 돌문바위를 돌면서 소원을 비는 곳인데

나는 돌문바위를 지날 때마다 탑돌이를 하듯 세 바퀴를 돌면서 청계산 산신령님께 發願한다.

첫 바퀴 돌 때는 정원준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둘째 바퀴 돌 때는 송은규의 건강과 행복을,

그리고 마지막 바퀴 때는 정세은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지금까지는 혼자서 산행할 땐 기껏해야 한두 줄의 김밥만을 준비했었는데 

오늘은 깁밥에 집사람이 챙겨 준 컵라면과 따끈한 커피까지 있었으니 성찬이 따로 없었다.

차갑게 식은 김밥만 먹었던 山에서 후루루 마시듯 먹는 따끈따끈한 컵라면이 얼마나 맛나던지···

정말 완전 별미였다. 山에서 내려가면 당장 컵라면부터 한 박스 사야겠다 싶었다.

 

솔향 가득한 청계산 소나무숲

 

5시간, 12km의 청계산 눈 산행.

속옷이 흠뻑 젖었을 만큼 평소보다 체력 소모는 훨씬 더 많았지만

모락모락 김이 오른는 컵라면과 따끈따끈한 커피에 담긴 

아내의 사랑을 마시고, 뽀드득뽀드득 하얀 눈 밟는

소리 들으며 걷는 산행은 코로나 19가 주는

두려움과 답답함을 싹 잊게 하는

보약이자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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