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2. 토요일
오늘 10시에 발표될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0명 넘을 것 같다는 Daum 뉴스의 기사를 읽고는 등산화를 졸라맸다.
산행에 나설 때마다 들리곤 하는 분식집에서 김밥 세 줄을 사서는 배낭에 넣고 신분당선 지하철 시민의숲역으로···
신분당선, 3호선, 5호선 지하철 모두의 아침은 꽤나 한산했다.
7명이 앉는 좌석마다 두세 명의 승객만이 하나같이 KF94 마스크를 착용한 채 거리두기를 한 듯 듬성등성 앉아 있었다.
결코 밝아 보이지 않은 그들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들도 나의 우울한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불과 사나흘 전에 500명 대를 돌파한 확진자의 수가 어제는 900명을 넘어선다 싶더니 오늘은 1,000명 벽마저 위태롭다는 암울한 뉴스에 막연한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지난 11월 중순부터 시작된 코로나 19의 3차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상향됨에 따라 모든 모임이 취소되었다. 이 덕택(?)에 한 달이 넘도록 사람이 많은 곳엔 얼씬도 하지 않은 채 토요일 또는 일요일에 나홀로 산행으로 청계산 등 인근의 산을 오르면서 건강을 관리하지만 평일 오전에는 혼자 양재천 변을 걷는 등 나홀로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엔 원준이와 은규의 공부를 돌보면서 집에만 콕 박혀서 지내는데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주변까지 스멀스멀 기어오는 듯해 두려움을 떨칠 수 없으니···
오금역에서 갈아 탄 5호선 지하철이 도착한 개롱역.
개찰구를 빠져나와 출구로 걷던 중 내 앞 쪽에서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너무 눈에 익어 불렀다.
"사돈"
역시 사돈이었다.
은규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이신 중곡동 사돈부부였다.
1번출구에서 9시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나와 같은 지하철을 탔었던 모양이다.
개롱역 1번 출구로 나와서는 함께 성내천 변을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중곡동 사돈부부의 서울둘레길 마지막날.
보름 전쯤이었다. 김장을 도울 겸 중곡동 시댁에 다녀온 은규 어미에게 시어른들의 서울둘레길의 일정을 물었더니 거의 끝나간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사돈께 전화를 했다. 지난 주말에 우면산 코스를 걸어 양재 시민의 숲에서 끝낸 뒤 곧장 집으로 갔다면서 이제 한 코스만 더 걸으면 '완주'라고 하시길래 마지막 코스엔 나도 함께 걷기로 했던 것이다.
사실 사돈부부의 서울둘레길 도전은 내가 만든 셈이다.
중곡동 사돈부부 두 분 모두가 평소 산행과 트레킹을 즐기시는데다, 바깥 사돈께서는 내가 2017년 10월 속초를 출발해 부산역까지의 520km 동해안 해파랑길 홀로 걷기에 도전했을 때 부산까지 내려오셔서 마지막 코스(기장-부산역)를 함께 걸었다. 그리고 내가 지난 여름날 서울둘레길을 10구간으로 나누어 나홀로 걷던 중 아홉 번째 구간이었던 서울둘레길 용마· 아차산 코스(화랑대역-광나루역)를 걸었던 날엔 두 분 모두가 동행해 내 발걸음은 한결 가볍게 만들어 주셨으니 오늘 나의 동행은 어쩜 그 두 번의 동행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품앗이 걸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용마 아차산 코스의 동행과 내가 드린 서울둘레길의 지도, 스탬프 날인 용지가 두 분을 서울둘레길로 이끌지 않았나 싶었다.
성내천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걷기 전에 따끈한 커피로 몸을 녹이기로···
성내천과 장지천, 탄천을 걸어 광평교 입구 부스에서 스탬프를 찍는 바깥사돈
수서역 대모산 입구에서 마지막 스템프를 찍은 중곡동 사돈부부
대모산 중턱에서 김밥으로 간단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상향되면서 손발이 묶인 산속 운동기구들
코로나로 울적해진 마음들을 달래주기 위해 내려앉았나 보다.
소복소복 쌓인 낙엽과 모두를 내려 놓은 나목은 산길을 걷는 내내 보는 이의 마음을 아늑하게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여유롭게 산길을 걷는 사돈 내외분의 모습은 부러울 만큼 보기 좋았다.
그래서인지 9월부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양재천 변에서 만 보씩 걷고 있는 집사람을 떠올리곤
내년 봄이면 안사돈처럼 험한 산길도 잘 걸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코로나가 사라진 2021년,
햇볕 좋은 가을 어느 날엔 청계산을 오르고 서울둘레길과 동해안 해파랑길을 걸을 때
나와 나란히 걷고 있을 집사람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파란 하늘, 빨간 산수유 그리고 이들처럼 말끔해진 내 마음
양재시민의 숲에 위치한 서울둘레길 인증센터에서 완주 인증증을 받아 든 사돈 내외분
코로나 19가 일상을 앗아간 날들이지만
자식을 나눈 사돈지간이 근 6시간 동안 함께 걸으면서
아들딸을 이야기하고 손자사랑을 듬뿍 나눈 덕분일까?
코로나 19가 뿜어낸 우울함과 산길이 준 피로감은
눈 녹듯 말끔히 사라진 지 오래
그저 즐겁고 행복했다.
사돈부부의 둘레길 완주를 축하할 겸 은규네까지 다 불러 맛집에서 저녁 식사를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코로나 감염증이 창궐하고 있으니 오늘은 음식점으로 가지 말고 몇 가지 요리를 배달시켜서
은규네에서 먹자는 바깥사돈의 의견에 따라 족발 하나를 산 다음 은규네로 가서는 식사 전에
시원한 막걸리로 서울둘레길 완주를 축하하면서 다음에 함께할 트래킹 코스를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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