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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진해 육군대학

 

 

  요즘 프로야구계는 新生 9구단인 NC다이노스의 전용 야구장 신축문제로 야단이다. 창원, 마산, 진해가 통합한 창원시가 경남도청 이전등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구단과 야구팬의 희망에 反하여 진해의 옛 육군대학 부지에 야구장을 신축하겠다고 공식발표가 하자,  KBO(한국프로야구위원회)와  NC다이노스구단은 물론 야구팬들까지 반발한다. 구단의 연고권 이전 이야기도 나오고 신생구단에서 야구장 신축을 약속하면서 담보금조로 예치한 100억원이 날라가니 어쩌니 하면서 시끄럽다. 

이런 야구계의 시끄러움에 자주 등장하는 "진해 육군대학"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타임머신이 다가와 나를 싣고 과거로 옛날로 빛의 속도로 날고 있다.  몸뚱아리는 남겨두고, 머리만 싣고서... 

 

 

  1975년 3월 봄날, 한일은행에 근무하다 휴직원을 내고 고향에 내려가 3월 20일 밤 고향집에서 친구들과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신 기억, 난생 처음 아버지의 등에 오르고 목말을 타는 주사(酒邪) 비슷한 행동,  3월21일 고향 친구 몇명과 함께 도착한 대구 성서 50사단,  부대앞 이발소에서 장발머리를 빡빡머리로 밀었던 기억, 높은 포복 낮은 포복을 빡빡 기며 논에 고인 물을 마시던 5주간의 훈련병 시절, 차리리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던 신병훈련을 마치고 다른 신병과 둘이서 열차를 타고, 군용트럭을 타고 도착했던 진해 육군대학의 정문, 

 

  육군대학 중대본부에서 전입신고를 마치고 배치받은 부서는 소비조합이다.  50사에서 같이 배속받아 간 신병은 요리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장교식당으로 배치되었다. 다른 훈련소를 거쳐 같은 날 배속받은 다른 전입동기 3명중 한명은 다방, 한명은 참모장 딱가리(당번), 또 한명은 경비소대로 떨어졌다. 당시 육군대학은 영관급의 2년제 교육기관이라 사병은 백명 남짓한데 반해 장교들은 이백명이 넘었다. 교육받으러 오는 장교들 거의 모두가 가족들과 같이 영내 아파트 또는 관사에서 살림을 하기에 때문에 사병용 PX는 중대본부에 따로 있고, 장교가족을 위한 마트가 소비조합이고, 주 고객은 영관장교의 부인들이다. 맥주, 설탕등 군용 면세품과 담배는 물론 웬만한 생필품은 다 팔았다. 배달전담 방위병이 배치되어 배달도 했다. 소비조합에는 마산출신인 2명의 선임병이 있었다. 그리고 소비조합장은 중사였다. 본부중대 소속으로 내무반에 관물대(사물함)만 비치하고 내무생활은 열외였다. 식사는 졸병인 내가 식사때마다 사병식당에서 배식을 받아와 선임병과 함께 소비조합에서 먹는다. 식사후 물이 없으면 작은 맥주병을 따주며 마시란다. 맥주는 면세품이라 한병에 70원이다. 내무반에 가지 않지만 소비조합에는 잠자는 방이 없다. 가게 안쪽 바닥에 뜯지않은 라면박스 7개를 나란히 붙힌다음 모포를 깔고 그 위에 베게로 3kg짜리 설탕 1봉을 놓으면 딱 침상이다. 새벽에는 두 선임병이 자전거를 몰고 우유배달을 나간다. 모두 병 우유다. 장교관사와 아파트에 우유를 배달하고 전날의 우유병을 수거하는 일이다. 자전거를 못 타는 나는 소비조합 청소를 한 다음 아침식사를 타와야 한다.  어느날 밤부터 가끔 선임병이 일을 맡긴다. 3kg 설탕이 가득 든 박스 몇개를 주면서 설탕 비닐봉지에 달라붙어 있는 "면세품" 표시 스티커를 표나지 않게 떼내라는 것이다. 물을 묻혀 비비며 뜯는데도 쉽게 떼어지지 않는 힘든 작업이다. 작업이 있은 다음 날이면 정문출입이 자유로운 선임병이 설탕을 싣고 나간다. 한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선임병이 나를 부르더니 외박증 내밀면서 고향 부모님께 한번 다녀 오란다. 진해에서 청도가는 길...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하는데 선임병이 돈을 꺼내주며 택시타고 가란다. 입대후 첫 외박을 진해에서 고향 청도까지 택시타고 간 마이가리 일등병. 그땐 정말 엄마가 맨발로 맞아주신다. 소비조합이 들어 있는 건물의 반대편 끝에 있는 장교식당, 장교식당에 있는 50사 훈련동기 홍경표가 밤만되면 나를 불러 맛있는 걸 건네준다, 때로는 술까지 들고와 전시용 비행기 아래서 한잔씩 나눠 마신다. 몇달 후 소속 내무반이 본부중대에서 경비소대로 바뀐다. 관물함만 경비소대 내무반으로 옮기고 전과 같이 가게에서 생활하는데 어느날 내부반 고참이 나를 호출한다. 

내무반에 오지않는 건방진 놈이라며 침상에 걸치게 하고 빳따를 친다. 빳다를 다 맞고 일어났더니 그때부터는 얼굴과 가슴, 옆구리에 주먹질이 계속된다.그렇게 많이 맞으면서 때리는 고참을 보니 가슴에 "김○○"이란 명찰이 달려 있다. 정말 많이 맞았다. 억울했다. 소비조합에 내려오니 조합장 김중사가 내 얼굴이 왜 그렇냐고 묻는다. 자꾸 묻길래 내무반에 불려가 맞은 내용을 이야기 했더니 누가 때리더냐고 물어 "김○○"상병"이라고 답했다. 다음날 내무반에 또 불려갔더니 어제 경비소대 내무반에서 김중사가 죄없는 김○○상병을 박살내고 갔다며 또 침상에 걸치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날 나를 때린 고참은 김○○이 아니다. 다만 나를 때린 상고참이 그때 윗옷을 다리미질 맡긴터라 김○○ 병상의 윗옷을 입었을 뿐인데 김중사가 와서 김○○상병을 찾더니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단다. 다른 고참이 김○○ 명찰이 달린 옷을 입고 나를 때렸으니 나는 김○○ 인줄 알았는데... 옷을 빌려주기만 하고 나를 때리지 않은 진짜 김○○상병이 맞았으니... 이날 빳따에는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어느날 중령인 인사과장이 나를 부른다. 김종기 중령... 거수경례를 하고 앞에 섰더니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큰목소리로 "없습니다" 복창하고 서 있으니 친절히 몇가지를 묻고는 자기는 내 고등학교의 14년 선배이란다. 앞으로 외출, 외박이 필요하거나 힘들면 이야기 하라는 고마운 선배님...  

 

  소비조합 6개월 근무후 교무처 교재과로 자리를 옮긴다. 과장은 육사14기 중령이신데 매우 어지신 분이고 주임상사 한명이 있고, 제대를 6개월가량 남겨둔 고참이 있다. 하는 일은 교재발간과 정밀지도 관리 배부등 학생장교의 교육재료를 준비하는 부서다. 주임상사와 함께 트럭을 타고 부산에 종이수령을 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선임병이 제대하고 내가 선임병이 되어 조수를 받으니 할 일이 없다. 할일없는 날에는 사역이다. 연병장에 나가 잔디에 잡초를 뽑던 일, 연병장에서 과장님이나 처장님이 골프연습하면 골프공 주워주던 일, 겨울철 축구 국가대표팀이 육군대학 잔디연병장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 보던 기억,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때 전방투입된다는 풍문에 걱정많았던 기억, 파견나온 마이크로 통신실에서 고향의 부모님과 직통전화를 했던 기억, 병장때 조종식과 외출을나가 버스를 타고 마산 자유무역수출단지를 지나면서 무리지어 지나가는 여공들에게 주소를 적은 쪽지뭉치를 버스창밖으로 뿌리면 편지가 오고, 면회까지 오던 추억. 면회온 여공의 자취집까지 따라가 라면을 얻어 먹다 손등을 데였던 아름다운 추억, 장복터널을 지날때마다 검문차 올라오는 해병헌병은 육군을 본체만체 하는데도 쫄렸던 기억, 장교식당에 있는 친구를 위한 연애편지 대필, 39사단에서의 유격훈련, 의령 함안으로 김장사역 나갔던 추억, 주임상사따라 분재재료를 캐러 의령지역 산을 헤맸던 기억, 육군대학 별장이었던 장복산 도불장의 아름다운 계곡, 벚꽃이 만발하여 군항제가 열리면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육군대학에 벚꽃 구경오는 아가씨를 꼬셔보려 용썼던 기억, 비바람에 떨어져 아스팔트에 달라붙은 벚꽃닢청소의 고달픔. 별이 50개정도 뜨는 행사가 있으면 으례히 아스팔트 도로를 물청소했던 기억. 내 이름이 쓰인 우편봉투의 내용이 "이름도 성도 모르는 이석도 군인아저씨께..."로 시작되는 우리교무처 졸병 엄철수의 고향 여자친구 편지를 받고 황당했던 기억,  제주출신 전입동기 김경은 소개로 시작한 제주 애월 처녀와의 펜팔,  전입동기들이 합심해 군기잡는 중고참들에게 대들다 상고참에게 더 박살난 기억....

 

  1977년 12월 24일, 육군병장 계급장 대신 향토예비군 마크가 붙은 얼룩무늬 예비군복을 입고 육군대학을 졸업(제대)하고 정문을 나서면서 비로소 민간인이 되었다. 남자들의 군대생활을 황금같이 아까운 3년을 썩히는 시간이라는 사람도 없지않지만, 되려 내게는 心身을 살찌운 기간이었다. 

1978년 봄 한일은행 서소문지점에 복직해 근무하는데 어떤 아가씨가 나를 찾아왔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제주도 애월 김○○란다. 전입동기 김경은의 소개로 편지를 주고 받았던 그녀, 목포교대를 졸업했고 향내나는 내용을 예쁜필체로 썼던 여인이라 꼭 만나고 싶어었는데... 짙게 화장한 얼굴이 영∼,

1983년 역전지점에 근무할 때다. 어느날 창구에 남자 손님이 왔는데, 서로 쳐다보며 "어,어,어∼ 안면이 많다." 면서 누구인지는 모른다. 서로 출신학교를 대며 묻는데 같은게 하나도 없다. 내가 "그렇다면 혹시 육군대학?" 이라는 질문에 자기는 육군대학 마이크로 통신실에 파견근무를 했단다. 고향에 직통전화를 걸기위해 자주 들락거렸던 사무실...

 

  같은 날 전역한 전역동기는 6명이다. 그중 5명은모임을 만들어 자녀 결혼식뿐 아니라 가끔 만나 군대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해 대구 동화사 모임에서 내가 "우리 언제 같이 진해 육대에 한번 가자."고 제안했더니 육군대학이 벌써 대전으로 옮겼단다. 제대후에도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장교식당에서 일류요리사가 되어 전역한 50사단 출신 동기는 제대후 청주에서 큰공장의 사내식당을 운영하면서 군대 동기모임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던 중 약4년 전  한동안 통 연락이 안되더니 어느날 건 핸드폰을 여인이 받는다. "홍경표 전화가 아닙니까?  나는 군대친구입니다."라고 했더니 한참동안 말이없더니 집사람이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친구는 한달전 밤새 갑자기 죽었단다. 너무 황당해 아무데도 연락을 못했단다. 이 친구가 떠나고는 유명무실해진 우리 군대동기 모임. 수년 서로 연락조차 없이 지냈는데 지난 연말 한통의 전화가 왔다. 경비소대에 근무했던 전입동기 최창기의 전화다, 제대후 미군함을 타며 6개월에 한번씩 상륙하는데 이번에 들어왔다며... 한 동안 국내에 있을건데, 군대친구들 한번 뭉치자고 하기에 대구서 사업하는 조종식과 상의해 꽃피는 봄날에 군대동기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로 했다. 아마 이번에 만나면 할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다. 먼저 간 경표이야기도 많겠고, 그간 못다한 군대생활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을텐데  NC다이노스 전용 야구장 신축이야기까지 더해졌으니... 기왕이면 벚꽃 만발하는 진해 군항제에서의 만남이라면 더 좋겠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많이 달라지긴 했겠지만,

진해는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해군항이라 당시에는 창원쪽에서

넘어 가려면 장복터널을 지나 10리 벚꽃길을 통과하는 길이  유일했는데...

NC다이노스 전용 야구장을 진해 육군대학 부지에 신축하겠다는

창원시의 공식입장에 반발하는 구단과 야구팬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육군대학 잔디연병장)

 

 (코스모스 활짝 핀 어느날 육군대내학)

 

 

 (육군대학내 호수)

 

 (육군대학 내 동상에서 동기들과...)

 

 (교무처 사병들... 왼쪽이 고향 여자친구를 소개한 엄철수 일병)

 

 

  (벚꼭 만발한 육군대학내 중앙로, 가운데가 장교식당 홍경표)

 

 (연병장 옆 전시용 비행기)

 

 (육군대학 중앙로, 오른쪽은 제주출신 동기)

 

 

-제대할 때 동료들이 답한 앙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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