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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주들-천아, 보송이, 다솜이..

목요일의 행복

2020. 7. 9. 목요일

목요일 아침이면 우리 아파트의 4층과 5층엔 활기가 넘친다.

바로 옆집의 은규는 오늘도 약간은 잠이 덜 깬 채 출근하는 엄마랑 아빠와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내 가슴에 안긴 채 출근하는 엄마랑, 또 아빠랑 뽀뽀를 하고 손까지 흔들었지만 은규는 조금은 더 자고 싶다는 듯 내 품을 파고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꼭 안은 채 30분이라도 누워 있고 싶었지만 약간 큰소리로 말했다.

"은규야! 원준이 형아랑 같이 안 갈 거야."

이 한 마디가 약이었다.

평소보다 아침도 잘 먹고 양치질도 잘 하고···

평소의 이 시간에 비하면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지난주 목요일 10분쯤 늦어 원준 형이랑 같이 가지 못한 게 약이 된 셈이다.

 

 08시 40분

은규와 함께 4층으로 내려갔다.

 "띵똥!"

초인종 소리와 거의 동시에 원준이와 세은이가 대문을 열고 나왔다.

지난 주에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다녀와서는 '혹시나···' 싶어 이번 주 몽땅 어린이집에 가지 않기로 한 세은이는 배웅하기 위해 나왔지만 손을 잡고 엘리베이트 타는 오빠들이 부러운지 엄마 손을 잡은 채 온몸을 비비 꼬며 재롱을 피워댔다.

무슨 얘기가 그리 많은지 손을 잡은 채 조잘대며 걸어가는 정원준과 송은규.

어슬렁어슬렁 그들을 따라가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늘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

오늘은 원준이와 은규가 학교 가는 날···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의 학사일정은 3월 초 등교와 함께 신학기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1월 말쯤부터 전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코로나19란 몹쓸 감염증으로 뒤죽박죽 완전 엉망이 되고 말았다.

봄방학과 정상 수업은 말할 것도 없고 졸업식과 입학식조차 제때, 제대로 할 수 없을 상황이라 한 달이상 연기된 시점에 최소 인원만 모여 졸업식을 치르고 입학식은 아예 온라인으로 했을 뿐 아니라 수업은 EBS방송 시청 또는 온라인으로 받아야 했으니 오죽했으랴. 그러던 중 5월 들어서는 국내의 코로나19 상황이 조금 진정되는 듯하면서 각급 학교의 등교일정이 잡혔으나 코로나19의 불길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시 활활거리기 시작했으니···

우여곡절 끝에 5월 말쯤부터 초등학생의 등교가 시작 되었다.

하지만 주 1회 등교.

초등 1학년인 은규는 매주 화요일.

초등 4학년인 원준이는 매주 목요일.

주 1회가 무슨 등교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그래도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은규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돌봄교실을 신청한 바람에 은규는 주 4일 등교, 원준이는 주 1회 등교다.

그래서 목요일이면 원준이와 은규가 함께 등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손을 꼭 잡은 채 재잘거리며 걷는 외손자들의 모습에 절로 배가 불러오는 것 같았다.

예전에 어른들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고 할 때 '먹지도 않는데 어떻게 배가 불러···' 거짓말을 한다 여기며 그 뜻을 몰랐었는데 이제는 내가 마음과 몸으로 그 말의 참뜻을 체험하고 있으니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싶었다.

하지만 다정하게 등교하는 두 놈의 모습은 이내 두려움을 불러냈다.

여름에 접어들면 사그라들줄 알았던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는커녕 수도권과 호남권을 중심으로 다시 창궐하고 있는데다 WHO에서조차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았다며 9월 제2의 대유행을 경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기록적인 코로나19 감염증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으니 큰 두려움이 몰려오는 기분이다.

게다가 최근 국내에서 확진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형이 지난 2,3월 대유행시 발견된 유형보다 감염력이 대여섯 배나 강력해 식당에서 한 자리 건너의 식탁에서 식사했음에도 전염이 되고, 헬스장에서는 몇 분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옆에서 운동했을 뿐인데도 전염이 되고, 야외라 괜찮으리라 여겼던 골프장에서도 동반자가 전염 되었다는 뉴스와  전국에서는 근 500개의 학교에서 등교수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뉴스, 가족 중 한 사람이 감염되어 온 가족을 감염자로 만들었다는 뉴스에 불안감이 줄어들기는커녕 서서히 목을 죄듯 나를 엄습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무탈하게 건강한 것은 내가 건강관리를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감염자 곁으로 가지 않고 감염자가 내 곁에 다가오지 않은 덕분임을 깨달았다. 원준이와 은규의 등교가 얼마나 큰 행복임을 깨달았다.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다.

활동 범위를 더 줄이고, 방역에 더 조심하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은규와 원준이의 주 1회 등교가 중단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겠다.

코로나19의 백신과 치료약이 제발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개발되길 두 손 모아 기도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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