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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주들-천아, 보송이, 다솜이..

행복 배달꾼 정원준

2020. 6. 26. 금요일

거실에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삐삐, 삐삐, 삐삐, 삐삐∼"

우리 집 도어 록(door lock)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의 시계 바늘은 7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옆 집에 사는 큰딸인가?', 아니면 '아래층에 사는 작은딸인가?'

'무슨 일이 있어 이렇게 일찍 친정에 오나?' 생각하고 있는데···

아래층에 사는 원준이가 잠옷차림으로 들어서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오늘 공부 지금 할래요." 

"············"

집사람도 놀랐나 보다.

안방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어쩜, 우리 원준이가 이래 이뿌노···"

오후쯤에나 행복을 가져오는 원준이가 오늘은 이른 아침에 배달한 셈이다.

 

원준이가 3학년 되기 전 봄방학이었던 작년 2월 중순부터 내게 와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벌써 1년 5개월이나 된 셈이다.

3학년이었던 작년에는 원준이랑 함께 교보문고에 가서 수학과 국어의 참고서 형식 문제집을 구입한 다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평일 하교 후엔 내 옆에서 스스로 공부하도록 했다. 한 20분 정도는 내가 준비하는 곱셈 등 계산 문제를 풀게 한 다음, 구입한 수학 문제집을 2∼3 페이지 풀게 한 후 제대로 풀었는지를 함께 정답 등을 체크한다. 그러고는 스스로 국어 문제집을 2페이지 정도 풀면 그날 우리 집에서의 공부는 끝이 나는데, 보통 2시간쯤 걸리고 있다.

덕분에 원준이가 3학년 때는 1,2학기 공히 수학 문제집은 2권씩, 국어 문제집은 1권씩을 뗐으니 아주 잘 했다 싶었는데, 올해도 원준이가 열심이라 다행이다. 올해는 코로나19란 몹쓸 놈 때문에 3,4월은 아예 등교를 못한 채 온라인 수업을 받다가 5월 하순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등교하면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고 있으니 여전히 제대로 된 공부는 어려운 지경이지만 원준이는 1학기 수학문제집을 2권이나 다 끝낸곤 그저께부터 「초등 4-2, 최상위 수학S」를 시작해 여간 대견스럽지 않았는데 오늘은 또 이렇게 아침일찍 공부하러 오다니···

그런데 요즘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수학의 수준이 우리 때와는 영 딴판이다.

5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다만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만 잘 하면 만사 OK였던 초등 수학.

그런데 지금 초등 4학년들이 배우는 수학의 수준만 해도 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원준이가 푼 문제집의 정답을 체크하면서 제대로 풀지 못한 것을 들여다보면 무슨 말인지 몰라 내가 어리둥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살짝 정답지를 들여다 보면 충분히 이해한 수가 있어 아직은 원준이를 가르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견딜 만하다만 어쩜 6학년, 늦어도 중학교 수학부터는 내 실력으론 가르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그래서 원준이가 중학생이 될 무렵엔 내가 먼저 수학 학원에 등록하리라 마음먹고 있지만···

 

내 책상을 차지한 정원준.

내가 프린트해 놓은 곱셈 등 문제지를 펼쳐 든 원준이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책상 앞에 앉은 원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원준아! 뭐 먹고 싶어?"라 묻곤 주방으로 향하는 집사람의 두 눈에서는 손자 사랑이 철철 넘치고 있었지만 집사람과 외손자를 번갈아 바라보는 내 가슴엔 이른 아침부터 형언하기 어려운 행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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