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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주들-천아, 보송이, 다솜이..

할아버지의 사랑 회초리

 

2020. 8. 20. 목요일

 

막 올라온 원준이를 공부방으로 불러서는 꼭 안아주면서 물었다.

“원준아, 할아버지가 원준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그러자 원준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잖아요.”

나는 원준이의 대답에 맞장구를 치고는 함께 침대에 누워 내 팔을 베개로 내어주며 이야기를 꺼냈다. 원준이 네가 태어났을 때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했던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지금의 네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지 등을 먼저 들려주었다. 그러고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예쁜 자식에게 매 하나 더 주고 미운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준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등의 속담과 사람을 속이는 짓이랑 거짓말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지를 들려주면서 원준이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손자인지, 원준이가 있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들려주었다. 그리고 원준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지를 말하면서 등을 토닥거리자 이번에는 원준이가 나를 꼭 끌어안았다.

이때다 싶어 물었다.

“원준아, 어제 공부하면서 혹시 할아버지 속인 것 없어?”

그러자 원준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없어요. 제가 왜 할아버지를 속여요.”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원준이에게 내밀었다.

 

약 1년 6개월 전, 곧 초등 3학년이 될 원준이는 봄방학에 들어가면서 봄방학 동안 내가 공부를 돌봐주기로 함에 따라 매일 두세 시간쯤은 우리 집으로 올라와서 공부를 했다. 수학을 중심으로 했지만 국어 등 다른 과목의 문제집도 풀곤 했었는데 할아버지랑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며 좋아했다. 하기야 언제든지 오기만 하면 두 팔 벌려 반기지, 맨날 맛난 간식 챙겨주지, 때때론 외식까지 데려고 다닌 데다 공부 후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은규랑 세은이 등 동생들과 마음껏 놀 수 있었으니 싫어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나와 정원준의 행복한 공존(?).

원준이가 3학년이었던 지난 한 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친 후 내게 와서 했으면서도 19 구단을 다 외웠을 뿐 아니라 1,2학기 각각 수학 공부에선 두 권의 문제집을 풀고 국어, 사회, 과학의 문제집도 한 권씩 끝냈다. 나도 뿌듯했지만 원준이 자신도 무척 뿌듯해하는 것 같아 참 좋았다.

그런데 올해 들어 많은 변수가 생겼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2월 하순부터 모든 학교의 교문이 굳게 닫힘에 따라 선생님과 마주 보며 받았던 수업은 비대면(非對面)인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었다. 4학년이 된 지 두 달이 지난 5월 중순이 되어서야 주 1회 등교로 조금은 완화되면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온라인 수업이 학교 수업인 셈이다. 그래서 원준이는 오전에는 자신의 집에서 e-학습터를 통해 온라인 수업을 들은 다음 점심식사 후 1시 30분쯤 바로 위층인 우리 집으로 올라온다. 가끔 일찍 올라와서 나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지만… 덕분에 1학기에는 수학문제지를 두 권이랑 국어 문제지 한 권을 마칠 수 있었다.

어제도 그랬다.

점심식사 후 1시 30분쯤 올라온 원준이는 30분쯤 놀다 2시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하는 것처럼 하게 했다.

곱셈을 보다 쉽고 빠르게 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내가 준비한 문제지 한 장과 최상위 수학 풀이 문제지 두 장, 국어 문제풀이 한 장을 내주면서 말했다.

“원준아, 풀다가 이해 안 되거나. 모르는 문제 있으면 할아버지한테 말해, 같이 풀자.”

그런데 어제 따라 원준이는 곱셈 문제를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못 들은 체했다.

두 시간쯤 지나 원준이는 다 했다며 거실로 나와서는 은규랑 한참을 놀다 내려갔다.

한 시간쯤 후.

원준이가 공부하고 간 것을 살피던 나는 깜짝 놀랐다,

수학 문제풀이랑 국어 문제풀이는 제대로 했는데 곱셈 문제풀이는 엉망이었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잘했었는데…, 어쩌다 한 문제쯤 잘못 계산한 게 나오기도 했었지만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20문제 중 제대로 계산한 게 하나도 없었다. 정답과 비슷한 숫자조차 하나 없었다.

계산을 해서 적은 게 아니라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숫자를 적은 게 틀림없었다.

 

내가 내민 곱셈 문제 종이를 본 원준이는 흠칫했다.

원준이를 다시 껴안으며 말했다.

“원준아, 할아버지를 속이려 하면 어떡해.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말을 해야지.”

그러고는 내가 맨날 곱셈 문제를 풀게 하는 이유를 설명한 다음 거짓말과 사람을 속이는 게 얼마나 나쁜지 그리고 거짓말과 속임수를 일삼는 사람들의 장래가 어떤지를 한번 더 들려주었더니 원준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하지만 나는,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말하곤 아래 셋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첫째, 원준이의 잘못을 엄마와 아빠에게 알려 엄마 아빠로부터 혼을 내도록 할까?

둘째, 한 달 동안 할아버지의 핸드폰을 절대 만지지 못한다.

셋째,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으로 제법 세게 종아리 5대를 맞는다.

 

원준이는 셋 중 종아리 회초리를 택했다.

평소 쥐어박는 흉내만 내어도 움츠리는 놈이 맞겠단다.

등짝 한 대만 때려도 아프다 난리를 치며 달아나는 놈이 5대나 맞겠단다.

나는 얼마나 세게 때릴 것인지를 말하곤 할아버지와 아빠의 초등학생 시절부터 군대 생활까지 흔했던 체벌을 들려준 후 사나이는 잘못이 있으면 당당하게 맞을 줄 알아야 되고, 회초리의 아픔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그러한 잘못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아야 된다고 했더니 원준이는 말없이 내 앞에 서서 종아리를 모았다.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다섯 대”

회초리가 닿을 때마다 종아리에 푸른 줄이 하나씩 늘어났지만 원준이는 아픔을 잘 참고 있었다.

다시 한번 더 꼭 껴안은 채 등을 토닥이며 “원준아, 많이 아팠지? 우리 원준이는 종아리가 아팠지만 할아버지는 마음이 너무너무 아팠단다,” 했더니 원준이는 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종아리에 생긴 푸르죽죽한 자국에 물파스를 발라주자 “내일 올게요,” 말하곤 일어섰다.

꾸뻑 인사를 한 후 대문 쪽으로 걷는 원준이의 절룩거리는 걸음에 막 생긴 내 마음의 멍은 더 짙어지고···

'괜히 회초리를 들었나?.'

반나절도 못 되어 나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원준이 종아리의 멍을 살피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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