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 목요일
은규가 드디어 첫 등교를 했다.
지난 3월 2일에 입학식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작년 말 중국의 우한 지역에서 발생했다 해서 ‘우한폐렴’이란 별칭을 가진 ‘코로나19’란 전염병이 온 세상을 뒤죽박죽 쑥대밭으로 만든 탓에 등교가 3개월이나 늦춰진 것이다. 새 친구들을 사귀어 교실과 운동장에서 한창 뛰놀아야 할 어린이들이 학교는커녕 놀이터조차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현실이 속상했었는데···. 온라인으로 입학식을 하고, EBS방송으로 공부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웠었는데···. 5월에 들어서자 확진자 숫자가 상당히 줄어들면서 사태가 좀 진정 되는 듯하고, 또 학생들의 등교 일정이 발표되길래 참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런데 5월 중순경부터 또 다시 확진자수가 급증하는 바람에 아이들의 등교는 다시 늦추어지고, 초등학생의 등교일은 일주일에 단 하루로 결정되었으니···.
초등학교 1학년들의 첫 등교일은 사실 지난주 수요일 또는 목요일이었다.
출석번호가 1,3,5처럼 홀수인 학생은 수요일, 2,4,6처럼 짝수인 아이는 목요일.
출석번호를 10번으로 통보 받았으니 은규의 첫 등교일은 지난 목요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은규는 등교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은규에겐 오늘이 첫 등교인 셈이다.
사물함에 넣어 둘 물품들이 들어 있어 꽤 묵직한 가방을 멘 채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은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풀 꺾이나 싶던 코로나19 감염증이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시 확산되고 있어 두려움이 생기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 음력설을 전후해 우리나라에 전파된 코로나19.
초기엔 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과 그들의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발생하는 듯하고, 또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등 몇 년에 한 번씩 겪는 전염병처럼 생각되어 저렇게 반짝하다 말겠지 싶었다.
그런데
지난 2월 중순경의 일이다.
고향에 계시던 숙모께서 돌아가셔서 대구에 사는 누이들을 만나 함께 고향의 한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한 이틀쯤 지났을까?
온 매스컴이 난리였다,
온통 코로나19 감염증 확진자가 강풍 속의 들불처럼 전국에서 급증한다는 뉴스였다.
그런데 감염증 확진자의 진원지는 바로 ‘신천지’란 종교단체의 대구에 있는 한 교회와 내 고향 청도에 있는 어떤 장례식장이란다. 게다가 ‘신천지’란 종교단체의 교주가 청도 출신이며, 청도의 한 병원에서 감염증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했는데 그 원인을 그 무렵 그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신천지’ 교주의 친형 장례식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 장례식의 문상객들 중에 코로나19에 감염된 신천지교도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다녀온 장례식장이 감염증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병원과 그 장례식장로부터 약 2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기에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청도와 대구를 다녀온 나는 마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보다 하루 먼저 문상을 다녀온 고종사촌들도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2주 동안 바깥나들이는커녕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마냥 전전긍긍하면서 죽은 듯이 두려움에 갇혀 지냈다고 하니 그 무렵 청도나 대구를 다녀온 사람들의 심적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긴 한 아파트의 같은 층에서 이웃으로 사는 아빠가 대구와 청도에 다녀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도 S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하는 은규 어미는 바로 2주간의 재택근무에 들어가야 했으니···.
학교, 유치원, 헬스장, 운동장 등 공공시설의 무기한 폐쇄뿐 아니라 수시로 양재천의 산책로까지 폐쇄되었던 최악의 3월과 4월이 지나고 5월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좀 나아지는 듯 보였다. 감염증 확진자가 한 자리 수로 줄어들자 우리들의 일상을 확 바꿔버린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다소 완화되었다. 신학기 들어 꽁꽁 닫혔던 초.중.고등학교 교문이 순차적으로 열린다는 뉴스가 나오자 드디어 악몽은 걷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5월 초의 황금연휴가 끝나고 며칠 되지 않아 다시 시작된 감염증 확산.
이태원에 있는 한 클럽에 출입했던 젊은이들이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이곳저곳을 방문한 탓에 부천 돌잔치, 과외선생 등등 ···, 쥐들이 새끼를 치듯 2차, 3차··· N차 감염증 확진자가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서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
몇 달이나 갇혀 지내야 했던 젊은이들이 황금연휴에 마음을 너무 풀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금방 괜찮아질 테지 여기며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5월 둘째 일요일이었다.
친구들과 관악산 산행을 마치고 집에 왔더니 유부초밥이 있었다.
은규 아비가 만들었다는데 아주 맛있었다.
한참 유부초밥을 먹고 있는데 은규 어미가 말했다.
“아빠, 은규 아빠네 회사 직원 1명도 코로나19 확진 받았대. 이태원 클럽 다녀왔나 봐.”
“그래? 직원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 더구나 회사가 이태원과 가까운 용산이잖아”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은규 아비가 다니는 회사의 직원이란 말에도 ‘안됐다’는 생각 외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월요일 아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은규 어미가 와서 하는 말했다.
“은규 아빠 오늘부터 자가 격리래요”
그러면서 은규 아빠가 근무하는 L그룹 계열사 인사팀으로부터 받은 문자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확진자는 은규 아비가 모르는 직원이란다. 그렇지만 인사팀에서 말하길, 10층에 근무하는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했더니 확진 전에 9층의 화장실을 몇 번 이용한 사실이 밝혀져 은규 아비를 비롯해 9층 근무자 전원에게 자가격리 및 재택근무를 명했단다.
갑자기 두려움과 걱정이 엄습해왔다.
바로 옆에 살면서 한 집처럼 오가는데···
몇 시간 전에도 은규 아비가 만든 유부초밥을 먹었는데···
적잖은 운동으로 체력과 건강을 관리하면서 열심히 면역력을 키우고 있는 나야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을 자신도 있고, 설령 코로나19에 걸린다 해도 충분히 이겨낼 자신이 있었지만 집사람이랑 딸들, 더구나 한창 잘 자라고 있는 원준, 은규, 세은이는 어쩌라고···, 양재동의 맛집으로 소문난 원준네의 까르보마마는 또 어쩌라고···,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코로나19 검진과 동시에 들어간 은규 아비의 자가격리.
대문 밖 외출은 고사하고 가족들과 식사조차 함께 해서는 안 되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힘들던데···
다행히 악몽은 지나갔다.
두 차례나 받은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 은규 아비는 평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어수선해지기 시작한 2월부터 원준, 은규, 세은 등 세 외손주들이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잘 자라고 있어 정말 대견하고 고마웠는데 하필이면, 하필이면 우리 은규가 5월 28일의 첫 등교를 며칠 앞두고 기침을 시작했으니···
열은 없었지만 기침하는 게 걱정되어 다음날 바로 소아과에 데려갔더니 목감기였다.
처방에 따라 약을 먹였지만 감기는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등교일은 다가오고 기침은 여전하고…
등교일 하루 전, 5월 27일(수) 다시 소아과로 데려갔다.
은규를 진료하는 의사선생님께 등교해도 괜찮을는지 여쭈었더니 기관지염을 수반한 목감기라 기침을 한다며 등교해도 괜찮을 것 같다면서 학교제출용 진료확인서까지 작성해 주셨다.
등교일 5월 28일 아침이 밝았다.
그러나 은규 어미는 등교대신 코로나19 검진을 택했다.
엄마와 함께 뒷자리에 앉은 은규가 늠름해 보였지만 안쓰럽고 미안했다.
조금만 더 잘 보살폈더라면 오늘 학교에 갔을 텐데···
10분도 안 걸려 도착한 내곡동의 서울시 어린이병원.
10분도 안 되어 끝난 코로나19 검진.
一日如三秋
다음날
오전 9시 37분
어린이병원으로부터 문자가 들어왔다며 은규 어미가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코로나19 검사결과’
‘음성(이상없음) 판정’
예상한 결과,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주말부터 기침도 잦아들었다.
주말을 보내고 맞은 6월의 첫날이자 월요일.
하룻밤만 보내면 은규의 첫 등교일.
그런데 회사에서 퇴근한 은규 아비가 또 걱정스런 소식을 내놓았다.
자기 팀과 바로 이웃인 팀에서 근무하는 한 여직원이 그날 근무 중에 코로나19 유증상이 있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며 일단 그 여직원의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같은 층 근무자들의 출근이 보류되었단다. 검사결과 양성으로 감염병 확진자가 되면 또 다시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된단다. 하긴 지난번에는 위의 층에 근무하는 확진자가 아래층의 화장실을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아래층 직원 모두가 2주간의 자가격리에 들어갔었는데 같은 층에 근무하고 바로 이웃 팀의 직원이라면 달리 방법이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한 번도 힘든 자가격리를 또 다시 해야 한다면···
너무 안쓰러웠다.
은규가 등교한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우리 집 대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은규 엄마 아빠의 큰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검사 받은 여직원, 음성이래요. 그래서 지금 출근합니다.”
은규 아빠의 웃음 묻은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코로나19의 불.
제발 이젠 정말, 불씨도 남기지 말고 영영 사라졌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뭔지도 몰랐던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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