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 금요일
첫날.
우리 가족을 실은 2대의 승용차가 2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경기도 가평군 한 외딴 곳.
양재동에서 58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아 평소라면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세 시간이나 걸려 오후 2시경에 도착했다. 도중에 점심식사를 하느라 30분쯤 식당에 머물긴 했지만 '우한폐렴'이란 별칭을 가진 '코로나19'가 세상을 뒤집어 놓는 바람에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사회적 거리두기'란 게 생겨서는 두 달이 넘도록 사람들의 발을 묶었다가 최근에야 그 묶음이 조금은 느슨해진데다 부처님 오신 날이었던 그제부터 많게는 6일 간의 황금연휴가 시작되어 서울을 벗어나려는 차들이 길을 메운 탓에 오늘은 두 시간 더 걸린 것이다.
별빛누리캠프
열흘 전쯤이었던가?
가족 캠핑 한번 가자던 원준 아빠가 예약했다기에 어떤 곳인지 궁금했었는데…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조종천변에 자리 잡아 조용하면서도 좋은 경치의 산과 물을 안고 있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텐트 설치 등의 번거로움이 없는 글램핑 캠프라 더 좋았다. 밤 추위를 싫어하는 집사람은 캠핑이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는 침낭까지 챙겨 갔었는데 가서 보니 헛수고였다. 멋진 텐트 속엔 냉장고와 몇 가지의 가전제품뿐 아니라 넓은 침상에는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온수 매트까지 깔려 있었다. 부엌을 옮겨 놓은 것처럼 모든 주방기구들도 완비되어 있어 마치 고급 콘도의 껍데기만 천막으로 바꾼 듯했다.
마주 보고 앉은 텐트 2개 동.
한 텐트는 우리 부부와 세 외손주의 집.
나머지 텐트는 은규 어미인 큰딸 부부와 세은이 어미인 작은딸 부부의 집.
우리 아기들이 제일 신났다. 도착하자마자 세 놈은 물 만난 물고기마냥 강가를 휘젓기 시작했다.
저마다 좀 큰 바위 하나씩을 차지해서는 자신의 기지라면서 내가 다가가면 암호를 대라며 출입금지란다.
바깥 나들이에 이처럼 신명 난 놈들이 두 달 넘도록 발이 꽁꽁 묶여 학교조차 못 가고 있으니 너무 안쓰러웠다.
나와 집사람은 아이들과 한참을 놀다 짬만 나면 발바닥을 지압할 겸 맨발로 강변을 걸었다. 모래의 부드러움과 발바닥을 찌르는 자갈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며 걷고 또 걸었다. 적어도 수천 보는 걸었을 게다. 발바닥이 후꾼한 게 지압을 제대로 받은 기분이었다. 4월 중순부터 한 자리 수를 넘나들고 있는 코로나19 감염증 확진자의 발생이 내일부터는 0으로 고정되어 잃어버린 우리 일상이 하루빨리 예전의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빌며 걸었다. 학교에 가는 우리 원준이와 은규의 책가방 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내 소망이 하늘에 닿길 바라며 중얼거리면서 걸었다.
2020. 5. 2. 토요일
둘쨋날.
가평의 아침 공기는 상쾌하다 못해 달았다.
조종천의 맑은 공기는 간밤에 마셨던 술을 보약으로 만들고 고스톱으로 짧아진 밤을 숙면으로 채우게 했다.
신선하고 달콤한 공기를 가슴 가득 더 채우고 싶었다.
이슬일까, 이슬비일까?
안개일까, 안개비일까?
축령산 '잣향기 푸른숲'에는 옷을 쉬이 젖시지 못 하는, 쉬이 몸으로 느낄 수도 없는 게 내리고 있었다.
뭔가에 덮혀 잣향기를 더 많이 머금은 듯 축령산의 공기는 더 신선하고 더 달콤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잣나무 사이를 걷는 우리 가족 9명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원준, 은규, 세은이가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재미나게 노는 모습에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나들이였지만 즐거웠다. 어제와 오늘의 즐거움과 행복이 '코로나19'가 삼켜버린 원준네의 홍콩 크루즈여행과 은규네의 지중해 크루즈여행을 조금이나마 보상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손자들과 잘 쉰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詩까지 한 수 건졌으니 더할 나위 없는 나들이였다.
… 날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큼 행복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애쓰리라 마음먹었다.
기도
돌담/이석도
돌담 아래 올망졸망
금낭화가 연등을 내달았다.
남 아픔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인간들이 제발
어리석음에서 깨어나기를 빌고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인 줄 모르고
함부로 자연을 해치고 있는 인간들이
마지막일지 모를 이번 경고로
잘못을 깨닫길 빌던
금낭화
고개를 저으며
천지신명님께
애원한다.
자연 훼손의 과보
코로나19로부터 인간들을
구출해 주세요.
이번 한 번만 더
(2020.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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