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30.
사나흘째 계속되고 있는 혹한 날씨 속의 일요일.
일기예보는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오늘도 영하 12도란다.
올겨울 처음으로 스포츠용 내의를 꺼내 입고 제일 두꺼운 등산바지에 두툼한 방한 웃도리까지 걸친 다음 눈만 보이도록 완전무장을 하고는 따끈한 물을 담은 보온병을 꽂은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더니 이젠 눈밭에 굴러도 괜찮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선바위역에서 환승한 지하철 4호선.
두 정거장만 타고 가면 되는 지하철이 금방 도착했다 그런데 승객이 무척 많았다.
오늘처럼 추운 날씨에… ?
일요일 아침인데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하지만 의문은 금새 풀렸다.
지하철이 첫 번째 정거장인 경마공원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대부분의 승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갔다.
이 혹한의 날씨에도 경마가 열리고 이들 모두가 경마장에 가는 것 같았다.
'이들 중 몇이나 일확천금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하철은 대공원역에 도착하고…
대공원역 2번출구 안쪽 통로에 반가운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하나같이 나처럼 중무장 차림있었다.
오늘은 고교동기생들의 등산모임인 '이륙산악회'의 2018년 송년 산행이 있는 날.
2018년 들어 25번 째의 산행이다.
아니 베트남 판시판 산행까지 합치면 스물여섯번 째의 산행이었다.
참석자는 김귀동 산악대장, 이풍규 부대장, 김석진, 김영문, 박삼수, 이종성, 이풍규, 이홍희 그리고 나,
산행 참석을 약속했던 8명 모두가 모이고 10시 정각이 되자 출발∼
과천 대공원을 통과해 청계산으로 Go Go∼
꽁꽁 얼어붙은 호수를 지나 동물원을 끼고 돌아 한참을 걸어서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내게는 모든 게 낯설었다.
친구들은 이 코스의 청계산 산행이 올 초에 이어 두 번째라는데 내게는 처음 걷는 코스였다.
여러 모임에서도 올랐던 청계산이고, 또 집에서 아주 가까운 산이라서 가족과 함께 또는 혼자서도 오르곤 하는 산이 청계산이지만 모두 원터골이 아니면 옛골에서 시작해 매봉, 이수봉에 올랐기에 대공원 코스로 오를 일이 없었던 것이었다.
대공원을 지나 매봉과 이수봉을 거쳐 옛골로 하산하는 코스.
한 시간쯤을 오르자 워낙 두텁게 입어서 그런지 온몸에 땀이 솟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바깥 공기는 얼마나 차갑던지 두꺼운 장갑을 꼈는데도 손가락 끝이 시려서 스틱을 잡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몇 구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등산로는 완만한 경사여서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잠시 잠시 쉬면서 각자가 마련해 온 간식거리를 나눠 출출함을 달래면서 걸었던 겨울 산행.
무성했던 나뭇잎들이 소임을 마친 후 다 떠난 裸木의 모습에서 인생을 생각하고, 차가운 공기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공기의 신선함을 콧속에 넣고 은은한 겨울철 솔향을 가슴에 담으며 시나브로 걷는 한겨울의 산행은 또다른 별미였다.
대공원역 2번 출구 통로에서 영문 친구가 준비해 온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친구를 기다리는 이륙산악회원들
꽁꽁 얼어붙은 대공원 호수
대공원의 원숭이들은 오늘의 한파도 춥지 않은지 발가벗은 몸으로
바위를 오르내리면서 완전무장한 채 산행에 나선 우리 일행이 불쌍한 듯 힐끗거렸다.
동물원을 지나 청계산 입구에서 가볍게 몸을 푼 뒤 돌격 앞으로…
누가 쌓았을까?
저렇게 뾰쪽한 조각돌 끝에 돌을 쌓은 사람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선 채로 출출함을 간식으로 채우고, 따끈한 물로 몸을 녹이는 친구들
여기가 매봉이란다.
"매봉이라니? 매봉에는 표시석이 큰 바위인데, 언제 비석으로 바뀌었나?"
"아니, 청계산에는 매봉이 두 개야, 여기는 청계산 과천 매봉"
그러고 보니 달랐다. 청계산 정상부근에 있는 매봉의 고도는 해발 582.5m인데 반해
이곳 매봉 표시석에 적힌 고도는 해발 369.3m였으니…
치열한 경쟁은 인간세계 또는 야생 동물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 않은 모양이다.
청계산에는 참나무와의 경쟁에서 밀린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이처럼 출임을 금한 곳도 있었으니…
우리나라 백성들이 오늘날의 극심한 혼란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듯
청계산의 소나무도 요즘 어려움에 처한 모양이다. 조금 전에는 참나무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어
보호해야 한다는 안내판이 보이고, 또 재선충에 병들어 고사해 방재처리한 소나무 무덤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등산로 양옆에 즐비하게 서 있는 소나무들이 하나같이 아기 손바닥만한 명찰 같은 것을 달고
있기에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더니 글쎄…
재선충병을 예방하는 주사를 놓았다는 표시였다.
그래, 이렇게라도 해서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대표 樹種인 소나무가 우리 곁에 오래오래 있어야지…
차가운 공기 덕분일까,
더 없이 맑고 파란 하늘이 우리의 피로를 덜어 주었다.
망경대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망경대 안내판으로 달래고…
드디어 해발 545m의 이수봉에 도착
이제는 하산이다.
옛골의 최고 맛집 '옛골토성'에서 下山酒를 즐기는 이륙산악회원들.
무술년 한 해를 무탈하게 보냈음에 감사하고, 황금돼지해 2019년에는 우리 모두,
아니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만사형통하고 건강하길, 그리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건배.
술은 이름 그대로 술이 되어 막힘 없이 친구들의 목구멍을 술술 넘어갔으니
친구들의 己亥年 萬事도 아무런 막힘 없이 술술 풀릴지 않을까 싶었다.
과천시를 출발해 의왕시, 성남시, 서울특별시 등 4시간 반 동안
4개의 市를 드나들면서 10.7km를 걸었던 송년 산행도 좋았지만
술잔의 주고받으며 쌓은 우정에 감동한 하늘이 보너스를 내렸을까?
아니면 영하 12도의 추위도 우리 우정의 열기에 기세를 잃었을까?
음식점을 나설 무렵의 날씨와 기분은 어느 봄날의 행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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