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7. 목요일
"Bow, Good morning teacher."
선생님과 마주서서 함께 큰 목소리로 "Attention!" 구령을 외치며 힘차게 두 발을 모아 차렷 자세를 취한 은규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씩씩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돌아선 후 똑같은 자세로 "할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라며 인사한 뒤 노란색 승합차에 올라 차창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경비실 앞의 의자에 앉은 내 무릎 위 걸터앉아 오늘따라 유난히 살갑게 재롱을 피우다 등원하는 외손자를 보면서 이보다 더 큰 행복이 또 있을까 싶었다.
출근하는 아빠의 차에 태워져 잠든 채 3년 동안 등원하던 은규가 직장 어린이집을 수료하고는 올 3월부터 영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등원 수단이 아빠 차가 아닌 우리 아파트 입구로 데리러 오는 유치원의 승합차로 바뀌면서 편해지긴 했지만 픽업하러 오는 시간이 9시였다. 늦어도 8시 전에 출근해야 하는 사위와 딸은 아이를 우리 집에 데려다 놓고 출근할 수밖에 없게 되는 바람에 나의 소원(?)은 저절로 이루어졌다. 같은 아파트에서 은규네는 1층, 우리 집은 5층인데다 은규의 등원을 돕는 건 늘 내가 원했던 바라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된 것이다.
은규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아예 내 옆에 재우기도 하지만, 주로 잠든 채 아빠 품에 안겨서 우리 집에 올라와서는 쇼파에 눕혀진다. 이럴 때면 좀처럼 눈을 못 뜨는 은규가 얼마나 안쓰럽고 깨우기가 미안하던지….
처음 한동안은 차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등원 준비 시키는 게 꽤 힘들었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나는 요령이 늘고, 은규도 제법 적응을 잘하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덕분에 한 시간도 더 걸리던 아침밥 먹이는 시간이 30∼,40분으로 줄어들고,
과일이랑 유산균 등 챙겨 먹일 것 다 챙겨 먹인 다음 양치질과 얼굴을 깨끗이 닦인 후 선크림까지 발라주면 8시 50분.
등원 준비는 끝이 난 것 같지만….
한 숟가락의 밥이라도 더 먹이고 싶고, 한 조각의 과일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이 외할아버지 눈에 보이는 시계바늘은 째깍째깍 왜 그렇게 빨리 달음질치는지…, 아침마다 늘 '10분, 아니 5분만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등원 승합차가 도착하는 9시까지는 이제 10분 남았다,
하지만 아직 남은 한 가지…
변기에 앉아 내 목을 꼭 끌어안은 채 용을 쓰는 은규의 모습은 내 아침 행복의 하이라이트.
은규와 아침마다 1시간 30분 남짓 나누는 사랑과 행복.
나는 잘 먹고 한창 자라야 할 나이의 외손자를 잘 챙겨 먹일 수 있어 좋고,
아침을 거른 채 어린이집에 도착해서는 간식으로 식사를 대신했던 은규는 든든하게 먹을 수 있어 좋고,
내 딸과 사위는 자신들 못잖게 은규를 사랑하고 살뜰히 돌볼 내게 아이를 맡기니 마음 편하게 출근할 수 있어 좋고,
은규의 먹을거리를 준비해 두고 예전과 똑같이 아침 일찍 헬스장에 가는 집사람은 열심히 운동할 수 있어 좋으니…
이 시간의 행복이 어찌 나 혼자만의 행복이랴.
은규를 보낸 후 헬스장으로 향할 때면
아침마다의 행복이 내 발걸음을 새털처럼 가볍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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