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6. 금요일
원준 어미가 일하러 갔단다.
생판 모르는 요식업에 뛰어든 원준 어미가 '까르보마마'를 창업한 지 벌써 7여 년.
우리집에서 불과 30여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의 골목상가에 열 평 남짓한 작은 스파게티 전문점이라 한두 해쯤 하다 말테지 했었는데, 어느새 시민의 숲 일대에서는 맛집으로 소문이 난 덕분에 요즘은 붐비는 날이 꽤 많아졌단다.
초등 2학년인 원준과 4살 짜리 세은이를 키우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느라 늘 바빠서 가게를 주로 직원들에게 맡겨놓고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주로 직원이 쉬는 날, 또는 무척 바쁜 날) 출근하곤 하더니 오늘은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는 한 직원이 하루 쉬기 때문에 출근한 날이다.
오후 4시 30분.
15분만 있으면 은규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라 서둘러 세은이를 데리러 서초한별어린이집으로 갔다.
어린이집 내선전화로 픽업하러 온 내용을 알리자 잠시 뒤 선생님과 손을 맞잡은 세은이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띤 채 계단을 내려오더니 "할아버지" 하면서 내 품에 뛰어들었다.
엄마는 일하러 갔으니 할아버지가 올 줄 알았다면서…
곧장 우리집 앞으로 와서는 햇볕 바른 곳에서 세은이와 오손도손 어린이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5분쯤 흘렀을까? 은규를 태운 노란색의 유치원 버스가 도착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이 시간이면 나타나는 이 노란 버스에서 내리는 은규.
지난달 어린이집을 졸업한 뒤 3월부터는 곧장 영어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아직 적응이 덜 되었을 터.
어린이집에서는 매일 자는 낮잠시간이 유치원에서는 아예 없어진데다, 주로 놀이를 위주로 시간표를 짜는 어린이집과는 달리 영어유치원에서는 영어놀이를 중심으로 영어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니 갓 입학한 아이들은 금방 적응하기는 어려울 듯. 그래서일까 하원 버스를 타고 오는 은규는 늘 피로가 덜 풀린 듯했으니…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동승한 선생님이 차문을 열자 좌석에 앉아있던 은규는 내 옆에 서 있는 세은이를 보더니 눈빛이 달라졌다.
부리나케 안전벨트를 풀더니 차를 내려오는데 그 발걸음이 얼마나 씩씩하던지…
그러고는 차 문 앞에 선생님과 마주서서 매일 그러하듯 인사를 했다.
"Attention! Thank you, teacher."
평소엔 바로 옆에 서 있는 내 귀에 살짝 들릴 만큼 조용한 목소리였는데…
오늘은 얼마나 우렁차고 찌렁찌렁했던지 5층에서 창문을 열고 내려다 보던 집사람도 다 들었단다.
이종사촌 동생 세은이를 만나니 이렇게 신이 나고 좋았던 모양이다.
세은이와 은규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우리집은 놀이터로 변했다.
집사람이 군고구마와 우유잔을 들고 따라다니지만 요놈들은 먹는 것은 안중에 없는 듯 뛰어다니기 바빴다.
잠시 뒤 5시가 조금 넘자 "띵똥 띵똥" 초인종이 울리고 원준이가 들어왔다.
원준이는 6시부터 축구 수업이 있어 간식을 먹은 다음 5시 45분쯤 축구장으로 가면 된단다.
하긴 겨울 동안에는 실내에서 축구를 해야 했지만, 이제는 날씨가 풀려 우리집 바로 앞 근린공원 안에 있는 인조잔디 축구장에서 축구 수업을 하고 있으니 오늘은 원준이가 축구하러 갈 때 은규랑 세은이를 데리고 나가 축구장이랑 놀이터에서 놀다 와야 겠다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오늘도 온 집 안을 놀이터로 만들어 신나게 노는 셋 놈에게 집사람이 간식거리를 챙겨 먹이느라 정신 없어 할 때, 시계바늘은 5시 45분을 가리키고 원준이는 축구화를 신는다.
나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은규야, 세은아 우리도 축구장 가서 축구하자."
그런데 은규와 세은이는 싫다고 한다. 집에서 놀겠단다.
거실과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장난감에서 잠시도 눈과 손을 떼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마지막 카드를 내놓아야 했다.
"그럼 은규랑 세은이는 집에서 놀아라. 할아버지는 원준이랑 축구장 갈 테니…"
그러자 은규랑 놀던 세은이가 갑자기 자기도 오빠따라 축구장에 가겠다며 일어섰다.
은규가 말리지만 세은이는 못 들은 채 현관으로 따라나왔다.
갑자기 은규가 소리내어 울며 소리쳤다.
"세은아 가지 말고, 나랑 놀아줘, 나랑 놀아 줘."
내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은규의 절규였다.
은규가 두 살 아래의 이종사촌 동생 세은이에게 하는 애절한 부탁이었다.
순간 전기가 통한 듯 내 가슴은 찡하고 먹먹했다.
'이렇게 같이 놀고 싶어하는데…'
신발을 신고 있는 세은이에게는 비타민 과자를 쥐어주면서 다시 집에서 은규오빠랑 놀도록 달래야 했다.
다시 모든 공룡 장난감을 내놓고 신나게 노는 은규와 세은이.
꼭 남매처럼 정답게 보였다.
잘 놀고 있는 은규에게 세은이를 자전거 뒤에 태워 운전할 수 있냐고 부추겨 밖으로…
지난 가을까지만 해도 자전거를 무서워하며 타지 않으려던 은규였지만 며칠 전 태웠을 때 곧잘 타더니 오늘은 세은이를 뒤에 태우고도 제법 달리기까지 했다. 참 많이 컸다 싶었다.
축구장에서 원준이 형아 응원도 하고, 축구놀이도 하고, 놀이터에서도 갖가지 기구를 타며 신나게 놀았다.
세은이를 뒤에 태우고 운전하느라 신이나서 깔깔깔 웃어대는 은규가 얼마나 멋있고 사랑스럽던지…
이종사촌 은규 오빠가 운전하는 자전거의 뒤에 타고서 좋아라 하던 세은이도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던지…
혼자서 놀 때보다 둘이 놀 때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
세은이는 원준이랑 남매이니 좋은데, 은규에게도 동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육십 대 중반인 우리 세대만 해도, 자식 많은 것이 多福 중 하나라 했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단다.
육아 때문에 엄마가 직장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제대로 교육을 시키려면 감당키 버거울 만큼의 비용이 필요하단다. 게다가 사회, 학교, 가정, 환경 할 것 없이 도처에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다 입시경쟁, 취업경쟁에 생존 경쟁까지 치열한 사회가 되고 말았으니 이를 어쩌랴.
예전의 열 자식 키우기보다 지금 한 자식 키우는 게 훨씬 더 힘들다며 앞으론 한 명의 자식도 많다는 젊은이들이 있을 뿐 아니라, 이 때문에 아예 결혼조차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니,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