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

효(孝)와 부모의 자애(慈愛)

 

 

요즘 우리 매스컴들은 중국에 있는 북한식당들의 소식을 전하느라 바쁘다.

최근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류경식당이란 북한 식당에서 근무하던 종업원들 중 13명이

집단으로 탈출해 동남아의 제3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귀순해 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의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회원국들이 이행함에 따라

중국 등 해외에서 영업하는 북한 식당에 손님들이 급감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급기야 이들의 식당에 종사하던 직원들이 집단으로 탈출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전혀 달라 보이지 않을 만큼 고급  운동화를 신고, 몸에 찰싹 달라붙는 청바지와

울긋불긋한 패딩점퍼 차림에 여행가방을 든 모습을 담은 사진이 방영된

이들의 뉴스는 무척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들의 탈북과 귀순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김정은 정권 붕괴의 조짐인가 싶었다.

이들의 행동이 작은 단초가 되어 남북통일이 하루라도  빨라졌으면 싶었다.

 

오호담당제(다섯 가구마다 1명의 선전원을 배치하여 간섭, 통제 및 감시)와 같은

                       철저한 상호 감시체계가 작동하는 북한 체제에선 혼자서의 탈출도 여간 어렵지 않을 텐데,

한두명도 아닌 13명이나 한꺼번에 탈출하다니…

게다가 그들은 당에 대한 충성도가 아주 높다는 당의 고급간부 자녀들이 아닌가.

북한의 해외 식당 근무는 가족과 당성은 물론 학력, 인물 등 모든 사항을 고려해 선발되는

최고의 직장이자, 당간부들이 꼽는 최고의 신부감이라던데…

딸들의 귀순소식을 접한 부모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

 

'효도(孝道)'를 생각해 본다.

후한(後漢) 때, 허신(許愼)이 저술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효(孝)는 노(老)자의 생략체와 자(子)자가 결합' 한 것으로,

 자식이 노인을 도와서 떠받든다는 뜻,

즉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효를 배웠다.

어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냈다는 등 수도 없이 많은 효자,

효부들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효자의 시묘살이 등을 들으면서, 학교에서도 효를 배우면서 자랐다.

효를 으뜸가는 덕목으로 삼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우리나라로 귀순한 북한의 이들 13명은 부모를 버렸다. 

아니, 단순히 버린 것이 아니라 사지로 몰아 넣은 셈이다.

당간부를 지내면서 지금까지 호의호식했던 그들의 부모는 곧 공개 처형이 되거나

아오지탄광과 같은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니까.

그럼 그들은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른 것일까?

 

문득, '부모의 자애(慈愛)'가 떠올랐다.

자식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느라 솥뚜껑처럼 변해버린 손을 가진 아버지.

온몸을 방패로 삼아 자식을 감싼 채 죽어가면서도 자식을 살리는 엄마.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버이.

이처럼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는 이가 

부모이고, 이런 부모의 마음을 '부모의 자애'란다.

 

'부모의 자애'가 '자식의 효'보다 훨씬 크고, 강하다고 하니

귀순자들의 부모들은 어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잘 갔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만은 자유를 만끽하며 행복하게 살아라."

알들이 부화하여 자랄 때까지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새끼들만 돌보다 죽음을 맞는, 죽어서도

새끼들의 먹이가 되고자 하는

가시고기처럼.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년의 시간여행  (0) 2016.05.09
여수 경도 1박 2일  (0) 2016.05.05
방심은 금물  (0) 2016.03.03
살다보니…  (0) 2016.02.29
"부탁해요, 엄마"가 종영하던 날  (0) 2016.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