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
비행기에 오르면서 집사람이 중얼거리 듯 혼자 말했다.
'하긴, 해마다 명절이 되면 몸보다 마음이 더 바빠져야 했던 집사람이었으니…'
장남인 형님의 제안으로 작년부터 양력설을 쇠는 덕분에
올해는 설을 코앞에 두고 여행을 떠났다.
두 달만 있으면 맞을 집사람의 회갑을 기념하고
올 여름 은규와 세은이까지 데려고 갈 우리 가족여행의 사전답사 겸.
두 시간만에 도착한 오키나와
'일본의 하와이'라 불리는, 류큐 제도에서 가장 큰 섬
해안에는 산호초가 발달했고, 감청색 바다와 흰 모래밭.
메이지 시대 전까지는 반독립적인 왕국.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조금은 더 큰 섬.
다랑어(참치)잡이와 설탕, 파인애플이 주업인 섬.
1945년 4월 미군의 상륙작전으로 시작된 3개월 간의 전투.
지금도 우리나라의 유사시에 출격하는 미군 비행기가 있는 곳
겨울철이면 우리나라 프로 야구팀이 추위를 피해 전지훈련 가는 곳.
그런데, 오키나와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흘내내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돌아다녔던
만좌모, 파인애플파크, 해양기념공원, 츄라우미 수족관, 평화기념공원,
아메리칸 빌리지, 슈리성, 오키나와 월드의 옥천동굴, 에이샤 공연 등등…
가을 같은 날씨에 비까지 내려 비록 바닷물에 발을 담그 보지 못한 여행이었지만
손주들을 데려갈 가족여행의 사전답사 여행이라 좋았다.
어느덧 함께한 지 삼십수 년이 넘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이 된
집사람과 떠난 오붓한 여행이라서 더 좋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여행이었지만
참 좋았다.
18세기 류큐왕 쇼케이가 "萬人이 앉아도 족한 벌판"이라고
감탄했던 것이 유래가 된 벌판 만좌모의 코끼리 바위와 해변
에메랄드빛 바다 보트 안에 앉아 맑은 바다 속을 보며
다양한 불고기와 산호들을 볼 수 있었던 그라스보트 탑승
파인애플 테마파크에서
1975년 오키나와 국제해양박람회가 열렸던
오키나와 해양기념공원과 일본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츄라우미 수족관
제2차 세계대전 중 1945년 4월 미군이 상륙해 90일간 벌인 오키나와 최종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12만여 명의 영혼을 달래고 그들의 이름을 새긴 비석들이 있는 평화기념공원.
이 공원 한 켠엔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에 징용 당해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 당한 한국인 혼령을 덜래기 위해 세운 위령탑의 공원이 따로 있는데
그곳에는 半球 형태의 커다란 돌무덤이 있다.
이 돌무덤의 둘레는 우리나라 전국 8도에서 가져간 돌들을 이용했단다.
기기묘묘한 종유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옥천동굴
14세기 무렵 창건된 후, 1406년에 쇼핫시가 류큐 왕국을 지배하여 거성한 이래
1879년 최후의 국왕이었던 쇼타이가 일본 메이지 정부에 내어 줄 때까지 약 500년간
류큐 왕국의 정치, 외교, 문화의 중심지였던 슈리성
기적의 1마일로 알려진 국제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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