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금요일
오랜만에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겨울답지않게 포근한 날이었다.
뻥 뚫린 영동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도착한 강원도 횡성의 웰리힐리파크.
예전엔 성우리조트였는데…
배정받은 방은 스키장 전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13층39호, 방이 3개고 거실이 있다.
침대방은 나와 집사람 그리고 원준이. 방 하나는 은규가 엄마 아빠랑, 또 다른 방엔는 세은이가 엄마 아빠랑…
거실에서 내려다 보는 스키장, 낮은 슬로프에만 눈이 있을 뿐
산이랑 가파른 슬로프에는 눈이 전혀 없었다.
따뜻한 날씨와 며칠 전에 내린 비가 눈을 다 녹여버린 모양이다.
주말인 내일 찾아올 스키매니아들을 위해 곳곳에서 제설기가 눈을 뿜어내고 있었다.
멀리 제설기에서 눈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며 은규가 말했다.
"할아버지, 저기 연기가 나."
거실에서 바라보는 스키장의 전경이 무척 눈에 익다 싶었는데, 집사람이 말했다.
"아버님이랑 어머님 모시고 왔을 때 지냈던 그 방이네."
아! 그러고 보니 2011년 2월 설 연휴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가족 모두가 와서 지냈던 바로 그 방이었다.
스키장이랑 리조트가 처음이셨던 부모님은 모든 게 신기하다며 무척 좋아하셨는데…
그때 눈을 뿜어내는 제설기를 보시며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세상 참 좋아졌다. 눈도 저렇게 만드는구나."
불과 4년 전에는 아버지도 계시고, 어머니도 계셨는데…
아버지와 엄마는 돌아가시고, 은규와 세은이가 태어났으니
우리가족은 그때도, 지금도 9명, 변동 없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와 엄마가 더 그립지만 내색할 순 없고…
원준이와 은규를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이용객이라곤 집사람과 나 그리고 원준이와 은규 넷밖에 없었으니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물미끄럼틀도 작동하지 않았다.
온천탕과 어린이 풀장, 성인 풀장을 오가다 나왔다.
그런데 은규가 기침을 하고,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이 되자 은규의 컨디션은 더 나빠졌다.
감기가 심해졌다.
은규의 콜록거리는 기침소리가 들릴 때마다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아줄 때마다
'내 잘못이 커구나' 자책감에 마음이 짠해진다.
아직은 어린 손자를 수영장에 데려가면서 몸을 감쌀
큰 타올 한 장도 준비하지 못한 걸 보면….
아직 나는 부족함이 많은 할아버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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