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경북 경주시 황성동 일대에는 아파트 개발사업이 한창일 것 같다.
머지않아 완공이 될 테고, 그러면 그 벽면엔 『e 편한세상』이란 로고가 붙어 빛을 발할 텐데….
그런데 이 아파트 개발사업의 당초 시행사는 '(주)빌프라이드'라는 업체였다.
2007년 2월 (주)빌프라이드는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대림산업(주)를 시공사로 선정해 이 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사업부지를 땅주인들로 부터 매입하게 된다. 그러나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시행사는 자금력이 없기에 토지대금 등의 자금을 금융권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이용해야했다. 하지만 신용등급 또한 형편없는 시행사인지라 단독으로는 대출을 받을 수 없어 시공사 대림산업에 연대보증 입보를 요청하게 되고, 신용도가 국내 최고 등급인 대림산업(주)의 연대보증하에 거액의 개발금융을 받게 되는데, 이때 대림산업은 시행사 빌프라이드의 사업부지 모두에 대해 매매예약 가등기를 했다. (대림산업이 매매예약 가등기를 한 이유는 후일 시행사가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연대보증한 대출을 채무자인 시행사가 상환치 못해 연대보증인이 대신 갚게 된다면 빚 대신 사업부지를 넘겨받아 개발사업을 직접할 목적이었다고 함.)
그러나 신라의 천년 수도인 경주에서의 개발사업이라 문화재 발굴의 지연은 물론 부동산경기 침체와 자금 부족 등으로 사업이 계속 지체되면서 시행사는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고, 결국 2010년 5월 24일 대림산업(주)는 자신이 연대보증했던 시행사 빌프라이드의 PF대출을 대신 갚았다.(이를 대위변제라 함). 이때 대림산업이 대위변제한 금액은 548억원이므로, 대림산업은 시행사 빌프라이드에게 받을 채권, 즉 구상금 채권 548억원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대림산업은 연대보증하면서 가등기한 사업부지를 넘겨받아 개발사업을 직접하는 대신 사업부지를 다른 회사로 넘겼다. 즉 사업부지에 대한 매매예약 가등기권을 2013년 12월 23일에 대구지역 건설사인 (주)OOO종합건설로 양도하는 「가등기권자의 지위 양도양수계약서」를 체결했는데, 이 계약서에는 당초 가등기권자인 대림산업(주), 가등기권 양수자인 (주)OOO종합건설, 부동산 소유자인 (주)빌프라이드의 대표자들이 서명을 했다. 전체 사업부지에 대한 가등기권을 넘기는 양도금액은 300억원이었다.
대림산업은 548억원이 투입된 개발사업의 사업부지를 300억원에 넘긴 꼴이니, 248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한편, 이 사업부지의 가등기권을 양수해 소유권까지 취득한 다음, 대림산업(주)를 시공사로 해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OOO종합건설의 황성동 아파트 개발사업은 한 큐에 분양이 완료되었음은 물론이고, 이 아파트에는 지금도 적잖은 프리미엄이 붙었을 만큼 대박이 났다고 한다.
대림산업, OOO종합건설, 빌프라이드 3사가 합의하고 서명한 「가등기권자의 지위 양도양수계약서」를 보면, 양도대금 조항에서 양도금액을 300억원으로 했고, 양도금액은 대림산업에서 수령하는 걸로 했다. 또 다른 한 조항에서는 OOO종합건설과 빌프라이드 간에 이 부동산의 매매대금을 가등기권 양도금액인 300억원으로 하는 부동산매매계약을 체결토록 강제하는 문구가 있고, 3사는 모두 동의하였다. 즉 매수자 OOO종합건설은 대림산업에 지급하는 양도대금 300억원으로 부동산 매매대금 300억원을 상계함으로서 매도자 빌프라이드에게 달리 지급할 매매대금은 없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거래는 끝이 난 것처럼 보였다.
대림산업은 548억원이나 투입된 사업을 300억원밖에 회수하지 못해 빌프라이드로부터 나머지 248억원을 회수하여야 하나, 사무실조차 없이 파산상태에 빠진 빌프라이드로부터 회수할 수 있는 자금은 전혀 없으므로 향후 결손처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반면 OOO종합건설은 분양이 잘되어 대박이 났고, 당초 시행사 빌프라이드는 이 사업부지가 548억원이상으로 처분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차피 사업부지를 제외하고는 일전 한 푼 없으니 얼마에 팔리던 상관이 없다. 100억에 팔리면 100억 주면 되고, 500억에 팔리면 500억 주고 손들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다른 이야기가 들렸다.
이 사업부지의 실제 거래가는 345억원이란다.
황성동 사업부지와 관련된 한 소송의 판결문을 보면, OOO종합건설는 300억원을 제외한 매매대금을 대림산업의 동의를 받고 빌프라이드에게 지급했다고 되어있다. 또 모든 계약에 참여했던 빌프라이드의 현재 대표이사가 실토한 말에 따르면 양도대금 및 매매대금 300억원은 대림산업에서 받아가고, 자신의 회사인 (주)빌프라이드가 OOO종합건설사로부터 별도로 받은 돈은 45억원이란다.
참 이상하다.
상장 대기업의 경영자 또는 임직원이라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은 최소화하는 것이 맡은 소임이고, 기업의 가치와 주주의 가치를 극대화 하는 것이 의무라는 걸 모르지는 앟을 것이다.
그런데 왜, 대림산업은 548억원이나 투입한 사업을 직접사업으로 전환하지 않고 처분함으로서 248억원의 손실을 자초했을까? 조그만 시행사가 분양해 대박내는 사업이니 대림산업에서 'e편한세상'란 자사 브랜드로 아파트를 직접 지어 분양까지 했다면 틀림없이 손실을 훨씬 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개발사업을 직접하기가 불가능한 사유가 있어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이상하다. 그렇다면 548억원이나 투입한 사업을 왜 공개입찰 등으로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덜렁 수의계약을 통해 처분했을까?
그것도 투자금의 절반을 겨우 넘는 300억원에….
또, 대림산업은 이 사업부지의 실제 매매대금이 345억원임을 알면서도 「가등기권자의 지위양도양수계약서」에서 OOO종합건설과 빌프라이드 간 매매대금을 300억원으로 하는 매매계약서를 작성토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구상금채권이 548억원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매매대금 345억원 중 300억원만 회수하고는 45억원은 빌프라이드에게 지급케 이유는 무엇일까? 대림산업의 직원이라면 채무자 빌프라이드가 파산상태이므로 전국을 샅샅히 뒤져 한 푼이라도 더 받도록 애를 써야하는 게 소임일 텐데, 받아내기는커녕 되려 그들 손에 45억원이나 되는 큰 돈을 쥐어줌으로써 자신들이 근무하는, 자신에게 급여를 주는 회사에 45억원의 손실을 가중시키다니….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해야할 임직원들이 이런 역행을 하다니…,
타인(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회사)에게 손해를 입히면 업무상배임죄가 된다는 걸 몰랐을까?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왜 이렇게 했을까?
실무자들이 개인들의 욕심을 챙기려 했을까?
무슨 뒷거래라도 했을까?
온갖 의구심이 다 들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상장 대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인데, 설마….
얼마전 대림산업의 명예회장께서 전 재산인 수천 억원을 통일나눔기금으로 기부하셨다던데, 혹시 이런 명예예장의 고귀한 정신이 평소 아래 직원들에까지 영향을 미쳐 파산상태에 빠져 수 년 동안 불쌍하게 살아온 시행사 빌프라이드 직원들을 위한 선행이었을까?
자기 직장에 큰 손실을 입히고, 처벌받을 위험까지 무릅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