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11. 목요일.
1974년 한일은행에 같이 들어갔던 입행동기들과 송년모임을 한 날이었다.
우리은행 본점과 가까운 명동역 부근에 있는 한 음식점.
40년 전 은행에 입행할 때는 70명도 넘었다.
그런데 새로운 은행이 생길 때마다 새 은행으로 옮긴 친구들도 있었지만,
중간중간 퇴직하는 친구가 적지 않았고, IMF 환란을 전후해서는 더 많은 친구들이 은행을 떠났다.
한일은행이 상업은행과 합병해 우리은행이 되었을 때 남은 동기들은 스무여 명이었는데
이 중 절반이상이 만 55세가 된 수 년 전 명퇴를 했거나, 나처럼 최근 만60세에 정년퇴직을 했으니
이제 남은 친구들은 채 10명도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갑오년 송년모임에는 아직 정년이 되지 않은 동기들은 물론
먼저 은행을 떠난 친구들까지 모였으니, 모두 열다섯 명이었다.
40여 년 전 , 신입 행원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는데,
친구들의 뒤쪽 벽에서 붙은 포스터에서 낯익은 글자가 내 눈길을 끌었다.
술집 벽에 붙어 있는 소주 광고 포스트에【우리은행】이란 커다란 글자가 있고,
그 아래에 "여러분 환영합니다."라고 적혀있지 않은가.
참 재미있다 여기며, 옆 친구의 빈 술잔에 술을 따르기 위해 소주병을 들었는데…,
소주병의 상표가 익숙한 「처음처럼」이 아니라, 「우리처럼」이 아닌가!
이런 소주도 있었나 싶었다.
술병의 상표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우리은행 여러분 화이팅"이란 문구까지….
대단한 상술이구나 싶었다.
정말 경쟁이 치열한 사회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였을까?
평소보다 몇 잔은 더 마신 것 같았다.
기분도 좋았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총무가 기념사진을 찍자며 우리은행 포스터 앞에 모이라고 하자
한 친구가 웃으면서 우리은행이 적힌 포스트를 배경으로 사진찍기는 싫다며 말했다.
"야, 난 우리은행 직원이 아니야, 한일은행 직원이었지…"
그랬다. 이제는 영영 사라진 이름이지만 우리 가슴에서는 영영 잊혀지지 않을 이름.
기왕이면 오늘 같은 날만이라도 우리 모두가 입행할 때의 명칭이었던 "한일은행"의
【한일】이란 글자가 적혀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생전에 다시는 맞지 못할 갑오년을 아쉬워하면서 40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인
갑오년의 송년모임은 한창 꿈을 키워가던 우리들의 젊은 날 추억을 몽땅 간직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한일은행이 무척 그리웠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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