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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남도여행(3)

2014.11.13.(목요일)

창밖에는 어슴푸레 거금도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서둘러 해안길을 따라 차를 몰고 나로도 우주센터로 향했다. 집사람은 고흥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소록도와 거금도를 어제 돌아본데 이어 오늘은 나로도까지 달리고 있으니 마냥 즐거워했다. 나로도로 가던 중 포두면을 지날 때 안동마을이란 안내판이 보이자 이곳 포두로 시집간 세째 언니가 살았던 집이 이 부근 어디라고 하면서, 삼십 수년 전 아장아장 걷는 쌍둥이 딸 보라와 세라를 데리고 언니집에 갔다가 한밤중에 세라가 고열이 났지만 인근에 병원이 없어 집에서 간호하느라 눈물 콧물을 다 뺐다는 이야기 등 옛이야기를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꼬불꼬불한 길은 꽤 오래 달려서야 도착한 나로도.

인공위성 발사장면을 TV로 보면서 생각했던 것 만큼 볼거리는 많지 않았다.

더구나 이른 시간이라 우주과학관은 문도 열지 않았고, 해변에서 가을 바다를 바라보면서 잠시 낭만에 젖었을 뿐이었다.

 

나로도항을 찾았다.

어제는 종호형님이 잘 아는 녹동항의 건어물 집에서 멸치, 미역, 김, 다시마 등을 샀더니 생선을 엄청 좋아하는 보라와 세라가 눈에 밟혀 꾸덕꾸덕 말린 생선들을 살 작정이었다. 바닷가에 바로 붙어 있는 생선 공판장이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몇 몇 아주머니들이 고기들을 손질하고 있을 뿐,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없이 아주 한가했다.

어제 풍랑 주의보가 내려 어선들이 조업을 나가지 못한 탓에 오늘은 경매할 생선이 없단다.

찾는 생선을 이야기하자 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이웃에 있는 건어물 가게로 데려 갔다.

자신이 운영하는 건어물 가게란다.

집사람이 서울로 가져 갈거라면서 서대, 양태 등 말린 생선을 사자 멀리서 왔다며 우리가 산 만큼의 생선을 덤으로 얹어주었다.

나로도항에서 별미였던 갈치조림으로 아침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포두 농협에서 동서를 잠시 만나 안부만 전하고는 고흥을 떠났다.

 

이제 순천으로 가서 순천만 갈대밭과 낙안읍성을 보는 일정만 남았다.

하지만 시간은 오전 10시를 넘고 있었다.

순천만과 낙안읍성을 들렀다 서울에 간다면 아무리 빨라도 저녁 9시는 넘을 것 같았다.

저녁 9시가 넘으면 은규는 틀림없이 잠들었을 테고, 어쩌면 원준이도 잠들 시간.

사흘째나 못보고 있는데···

나는 슬며시 집사람에게 물었다.

"이번 남도여행 어땠어?"

"너무너무 좋았어요. 당신 덕분에 엄마 아부지 산소에 성묘도 하고, 꼭 한 번은 가고보 싶었던 소록도뿐 아니라 내 고향이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까지 두루두루 다녔으니···,  정말 고마워요."

"그래? 이제 순천만이랑 낙안읍성만 남았는데, 이 두 곳은 다음에 또 내려올 구실로 삼기 위해 남겨두는 건 어때?"

"여보, 핑계 대지 마세요. 은규랑 원준이가 보고 싶어 그러는 줄 모를까 봐?"

"우째 알았어? 이틀이나 못 봤더니, 엄청 보고싶네. 순천 들렀다 가면 너무 늦을 것 같고···"

"괜찮아요. 바로 올라가요. 당신이 날 위해 사흘이나 애썼는데, 나도 그쯤은···, 실은 나도 아기들이 보고 싶고."

 

돌아오는 길에서는 달리는 차보다 마음이 더 급했지만, 내 딸들이 좋아하는 건어물을 듬뿍 싣고 달려서일까?

승용차는도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듯 잘도 달렸다.

5시 쯤, 집에 도착했다는 카톡을 날리자 금방 보라가 왔다.

엄마 품에 안겨서 온 은규는 나를 보자마자 안아 달라고 두 팔을 벌리고, 엄마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야단이었다.

곧, 원준이도 어린이집 가방을 맨 채 엄마랑 함께 들어서고···

 

참, 즐거운 여행이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35년 전의 결혼을 추억하면서 집사람의 고향을 찾았던 남도여행.

우리 부부의 사랑을 한 겹  도탑게 한 사랑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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