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30.
갑오년 구월의 마지막 날.
금년 1월부터 매월 마지막 영업일에 모여서 정년으로 은행을 떠나는 친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우리 갑오생들의 정년퇴직을 자축하면서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우리 갑오회는 여느 달과 다름없이 본점 부근의 한 식당에 모였다.
그러나 지난 여덟 번의 모임에서 친구들의 정년퇴직을 축하했지만, 오늘은 바로 내가 주인공 중 한 사람이었다.
1974년 3월 2일.
바로 이날, 한일은행 본점 영업부에서 시작한 은행원 생활이 만 40년 7개월만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지난 24일엔 마지막 근무처인 영등포 사무실에서 송별식이 있었고, 26일엔 수석 부행장이 참석해 감사패와 기념품을 증정한 정년 퇴직자 오찬모임이 있었지만,구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의 점심모임이 마지막 행사인 셈이다.
모두의 건승을 기원하는 건배사와 여기저기서 술잔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고 지난날을 더듬어 본다. 한일은행 영업부를 첫 근무지로 해서 서소문지점, 압구정동지점, 역전지점, 대구지점, 포항지점, 화곡동지점, 서초중앙(법조타운)지점, 여신관리부, 용산(한강로)지점, 인계동지점, 수원지점, 신길중앙지점, 대구서문시장지점, 여신관리부, 중계동지점, 청량리중앙지점, 시흥동지점, 울산지점, 독산동지점 등 20 곳을 거치는 동안 까까머리가 막 자랐던 머리는 몇 가닥 남지 않은 반백으로 변해있지만, 지금의 나는 幸福으로 충만해 있다.
지난 날을 되돌아 보면 40여 년 동안 몸이 아파 결근한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일을 하긴 했지만, 가는 곳 마다 좋은 상사와 좋은 부하 직원들을 만났음은 물론 나의 노후까지 걱정해 주신 고객을 만나고, 나를 아들처럼 챙겨주시는 고객까지 만났으니 이 얼마나 큰 인복(人福)인가 싶다.
여러 은행들이 사라졌던 IMF 외환위기엔 내가 근무하던 한일은행도 상업은행, 평화은행과 합병을 하는 바람에 유능한 직원을 포함해 절반의 동료들이 은행을 떠나야 했지만, 운 좋게 살아남았던 내 또래들에게는 오히려 승진의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운이 좋았던 나 또한 그때 서문시장지점의 지점장이 되어 10년을 훨씬 넘는 세월 동안 6개 지점에서 지점장으로 근무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많은 세상살이지만, 나는 정말 행운아였다.
남 먼저 결혼을 한 덕분에 현직에 있으면서 두 딸을 모두 결혼을 시킨데다, 심신이 편안하고 시간의 여유가 무척 많았던 임금피크 기간에 태어 난 두 외손자를 맘껏 사랑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큰 福인가!
또 5년의 임금 피크 기간은 얼마나 해피했던가! 운동을 많이 할 수 있었음은 물론 현직에 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색소폰과 수필, 연필그림 등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까지 배울 수 있었으니….
오늘은 이런 행복을 주던 은행을 영원히 떠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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