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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방

달리면서 배운다.

 

 

 

 

 

 

2014. 1. 14. 화요일

지난 화요일이 첫 수업이었지만,

회원소개와 교수님께서 수업방안, 교정부호 등을 이야기하느라

개별 작품에 대한 합평(合評)이 없었으니

오늘 수업이 본격적인 수업인 셈이었다.

다른 회원 작품의 합평에 이어

나의 27번째 작품인 「달리면서 배운다」에 대한

회원들의 합평과 교수님의 총평이 있었는데….

한 회원은 내 작품의 특징이라며

너무 세세히 설명하는 것 같아 깔끔하지 못하다고 했다.

또, 제목이 한 문장으로 되어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냥 '마라톤'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했다. 

실은 나도 처음에는 제목을 '마라톤'으로 했다가 문장으로 바꾼 것인데...

 

교수님의 총평에서는

"내용의 전개는 순탄하고 좋다."

"제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문장으로 할 수 있다."

"후반부의 '더불어 사는 삶' 부분이 너무 급하게 연결되었으니 사전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결말을 조금 더 의미있게 고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런 모든 평들을 참고해 아래와 같이 퇴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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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초고, 2013.12.17.]

      [퇴고, 2014. 1. 17]

달리면서 배운다

이 석 도

간밤에 돌풍과 천둥 번개를 섞어 요란하게 비를 쏟아대던 하늘은 말끔해졌다. 새벽바람이 조금 불기는 했지만, 한결 누그러진 날씨라 공원을 걷다말고 한강변을 달렸다.

잠실 선착장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노란 풍선을 등에 매단 사람을 따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강변 산책로를 달려오고 있었다. 눈만 빼꼼히 내놓은 내 모습과 달리 그들은 팬티 바람에 얇은 티셔츠를 입고, 가슴에는 번호표를 달고 있었다. 「손기정 평화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마라토너들이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페이스메이커의 구령에 따라 함께 달렸다.

2008년 봄, 풀코스를 뛰다가 중간에 포기했던「서울 동아마라톤」이 생각났다. 나는 그 이전에 네 번의 풀코스를 완주했었다. 뛸 때마다 30여 km쯤부터는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어, 뒤따라오는 회송버스-달리기를 포기하는 마라토너를 태우는 버스-를 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치솟았다. 그러나 중간에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와 완주의 성취감을 생각하면서 타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곤 했었다. 다리가 아파 쩔뚝거릴 때는 ‘다시는 풀코스를 뛰지 말아야지’ 다짐하다가도 먼발치로 골인 장소가 있는 운동장이 보이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몇 사람을 추월하면서까지 결승점을 향해 달리곤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결승점을 10km쯤 남겨두고 그만 회송버스를 타고 말았다. 버스를 타고는 이내 후회를 했다. 그렇지만 내리지 못했고, 그 이후로는 풀코스를 달리지 못했다.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지루함을 잊은 채, 마라토너들과 함께 달리는 동안 어느새 양재천변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조금씩 처지고 있었다. 구령에 따라 다리를 같이 놀리고 있었지만, 내 보폭이 점차 좁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질 때마다 보폭을 넓혔지만 금방 숨이 가빠지고 힘이 들었다. 할 수 없이 보폭을 좁혀 달리면서 뒤로 처졌다. 그러자 곧 보폭이 나와 비슷한 여성 마라토너와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한참 나란히 달리던 여성이 서서히 나를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뒤따라 달리면서 보폭이 같은데, 왜 처지는지를 살펴보았다. 보폭은 비슷했으나 내가 세 걸음을 달리는 동안, 그녀는 네 걸음을 달리고 있었다.

많은 마라토너들이 나를 추월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나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풀코스를 달리다 한 번 중간에 포기한 이후에는 혼자서 편하게만 달린 탓에 보폭은 좁아지고, 발걸음은 느려져서 그들만큼 빠르게 달릴 수가 없었다.

‘마라톤은 인생의 축소판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마지막까지 달려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고, 인생살이에서 성급한 일처리가 실패하기 십상이듯, 마라톤에서는 오버페이스를 하면 완주하기가 어렵다는 면에서 닮았다고 한다. 인생에 극복해야 할 고난들이 많이 있듯이 마라톤에는 오르내리는 언덕들이 군데군데 있고, 레이스 중간중간에 물을 마시고 컨디션을 조절해야 하듯, 인생에서는 재충전과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마라톤 참가자들과 함께 달리면서 마라톤이 인생에 비유되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라톤에서의 보폭 넓이가 인생에서는 노력의 대소(大小)가 아닐까 생각되었고, 마라톤에서 발놀림의 속도는 인생에서라면 근만(勤慢)의 정도(程度)일 것처럼 보였다.

이날의 달리기는, 넓은 보폭과 부지런한 발놀림이 빠른 완주를 이끌어 내듯이 노력하고 부지런한 삶이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한다는 확신과 함께; 혼자 달릴 때보다 여럿이 달릴 때가 수월하고 재미있었던 것처럼, 더불어 사는 삶이 훨씬 알차고 행복하겠다는 걸 느끼게 한 런닝이었다.

갈림목에 이르렀다.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달리는 마라토너들에게 손을 들어 완주를 기원하는 파이팅을 외치고, 나는 내 길을 달렸다. 내년 마라톤 대회에서는 지금보다 넓어진 보폭과 빨라진 발걸음으로 달리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인생살이에서도 조금 더 노력하고, 조금 더 부지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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