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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방

네 잎 클로버

 

 

2013. 7. 2. 화요일

서초문화원 수필반 9기 수업이 시작된 날이다.

계속 수업을 받는 회원이 15명이고, 9기에 처음 등록한 회원은 둘 뿐이다.

내 고향친구도 이번 期에 등록하기로 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오늘 역삼동 아파트를 세입자와 계약을 한다더니, 아마 다음주부터 올려나 보다.

 

지난 달 4일 제출한 작품들에 대한 서평이 있었는데,

나는 일곱번째 작품인 ‘네 잎 클로버’에 대하여 서평을 받았다.

 

나름대로 퇴고도 많이 했기에 군더더기는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교수님은 아직도 불필요한 문장이 있다며 지적했다.

그리고 글을 쓸 때 결말이 제일 어려운 걸 느끼는데,

결말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교수님의 퇴고에도 조금 이상이 있는 것 같다.

띄워 쓴 '네 잎' 붙여서 '네잎'으로  쓰라고 지적했는데

사전에서도, 교수님의 작품에서도 띄워 쓴 '네 잎'이 맞다.

그리고 '어느새'를 '어느 새'로 띄워 쓰도록 퇴고했는데

아마 착각하신 모양이다. 다음주 수업 때 여쭈어 봐야겠다. 

 

다음 주에는 '아카시아 꽃향기'에 대한 서평이 있을텐데,

그 작품에서는 큰 지적이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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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잎 클로버

이 석 도

(⑦ 초고, 2013.6.4, 퇴고, 2013.7.2)

   봄이 시작되면서 양재천의 첫 주인은 개나리였다. 얼마 후에는 벚꽃이, 다시 철쭉이 되었다. 철쭉이 지고 한참이 지나도 새 주인이 보이지 않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새벽의 양재천은 어느새 클로버가 주인이 되어 있었다.

   소복이 내려앉은 눈처럼 양재천변 군데군데에 무리지어 하얗게 핀 클로버 꽃의 이채로움은 양재천의 새 주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토끼풀이라는 이름이 훨씬 친숙한 클로버, 어릴 때 소꼴 베던 못 둑에서 앙증맞은 토끼풀이 보이면 풀 망태기는 던져둔 채 꽃반지를 만들고, 꽃시계도 만들고, 꽃목걸이도 만들었던 장난감이었다.

   이런 소중한 추억을 품은 클로버이지만, 군에서 졸병이던 시절에는 틈만 나면 잔디 연병장에서 뽑아야 했었던, 달콤한 휴식시간을 빼앗아간 잡초였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쟁터에서 우연히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고는 신기해 뜯으려 고개를 숙인 순간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가 목숨을 구했다. 그래서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라는 꽃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클로버 무리만 보이면 허리를 굽혀 네 잎이 달린 클로버를 찾았다. 과학적으로는 단순한 돌연변이일 뿐이라는데, 네 잎은 물론 다섯 잎, 심지어 스무 잎이 넘는 클로버도 있다는데…

   오랜 노하우의 덕분이었을까? 내 눈에는 네 잎 클로버가 제법 잘 띄었다.

   은행 지점장 시절, 채취한 네 잎 클로버를 직원과 고객들에게 나누어 주면 그들은 정말 행운이라도 받은 듯이 좋아했다. 처음에는 네 잎 클로버를 그냥 주었지만, 다음에는 명함 크기의 백지에 붙여 코팅을 해서 주고, 그 다음에는 명함 크기 색종이에 붙이고 좋은 글까지 넣어 코팅해서 주었더니 지갑에 넣어 다니면 되겠다며 더 좋아했다.

   많은 세월이 흘러도 앙증맞게 자라는 클로버가 보이면 허리를 굽혀 네 잎을 찾는다. 오래된 버릇은 쉬이 바뀌지 않는가 보다.

   몇일 전 아침 운동을 마치고 공원을 걷는데 키가 크고 잎사귀가 넓은 양재천의 클로버와는 달리 토종인 듯 땅바닥에 바짝 기며 자라는 작은 클로버들이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 횡재한 기분이었다. 네 잎 클로버가 여기저기 많이 있어, 보이는 족족 다 땄다.

   수북이 뜯은 네 잎 클로버, 사진을 찍고는 말리기 위해 책갈피에 끼웠다.

   출근길엔 카톡으로 “오늘 아침에 찾은 행운, 당신께 드립니다.”라는 문자와 함께 네 잎 클로버의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냈다. “고맙다.”는 여러 친구들의 답장을 받았는데 한 친구가 보낸 답장을 읽고는 가슴이 뜨끔했다.

   “행운을 찾기 위해 행복을 짓밟지 마세요.”

   그랬다. 꽃말이 한낱 ‘행운’일 뿐인 네 잎 클로버 하나를 찾느라 별 생각 없이 클로버 무리를 밟으며 샅샅이 뒤지곤 했다. 밟히는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인 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되돌아보니 내 생애도 비단 네 잎 클로버의 경우만 아니었던 것 같다.

   공기나 물같이 늘 곁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려 애쓰기는커녕 등한시했다. 내 가정을 있게 하고, 지켜 준 직장에 고마워할 줄도 몰랐다. 현실은 내게 항상 조금씩 부족하게 준다고 생각했었다.

   한 마디로, 늘 부족하다 여겼기에 넘치도록 채우고 싶었고, 허황된 꿈을 꾸면서 욕심을 쫒으며 살아온 것이다.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행운만을 찾으려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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