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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여행, 등산...

이륙산악회의 몽골트레킹(3)

- 5일 차 -

2023. 6. 25. 일요일

어김없이 몽골의 아침이 밝았다.

귀국일이 내일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 날인 셈.

부지런한 새가 피곤하다지만 한 가지라도 더 가슴에 담을 요량으로 동네를 한 바퀴도는 기분으로 산책 나갔더니 내가 꼴찌.

아침식사···, 테레지 국립공원에서의 마지막 식사라서 그럴까? 밥맛은 어제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데도 입맛이 쓰다.

식사 후 가방을 챙겨 버스를 타고 열트산으로 두세 시간 걸린다는 야생화 탐방을 떠났다.

 

그다지 힘은 들지 않지 않는 완만한 구릉지대로 이루어진 열트산 초입

오늘낼이 70인 할배들이 갖가지 재미난 점프로 인생샷을 만들고 있다.

 

 

늑대像인줄 알았는데 들개像이란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맘껏 즐기고 있는 11인의 26 산악회 할배들

이런 초원과 기암괴석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한 번 더 볼 가능성보다 영영 볼 수 없을 가능성 훨씬 크기에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폰에 담고···

 

잘려나간 자작나무 둥치에서 발견한 버섯

삿갓 윗부분이 능이버섯 무늬와 비슷하고 향이 무척 좋았다.

차가버섯 같은 좋은 버섯이 많이 나는 자작나무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향이 좋아 식용버섯이 틀림없다 싶었지만

이름을 모르는 버섯인 데다 우리나라로의 반입 금지 물품에 생버섯이 있는 걸 보았으니 눈물을 머금고···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1971년에 세워진 자이승 승전기념탑과 이태준 기념공원 

대암 이태준 선생은 그동안 우리 독립운동사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 우리 정부에 의해 건국공로포상이 수여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으로 훈격이 격상되었으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었다. 일제 강점기 조국으로 부터 약 2,000km 떨어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항일 독립운동가로 그리고 몽골 마지막 왕의 어의(御醫)로써 뜨거운 38년의 삶을 살다 가신 이태준 선생이

우리의 주목받게 된 것은 1990년 3월 한. 몽 수교 이후였다.

 

자이승 전승탑에서 비라본 울란바토르 시내
몽골 정부청사 앞에서 찰깍!
몽골 전통민속 공연 관람 중

 

 

 

전통 민속공연 관람 후 저녁식사를 위해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한식집 '부산식당'으로 이동했더니

몽골 현지에서 여행사를 운영하고 계시는 사장님 한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23일 체체궁봉 트레킹에서 가이드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큰 고생을 한 우리에게

주관 여행사의 대표로서 사과하러 왔단다. 그 큰 고생에 무엇이 보상이 되겠냐 마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죄송한 마음을 담았다며 차가버섯이 1kg씩 담긴 봉지를 인원수대로 놓고 가시고··· 

 

부산식당 여사장님은 시끄러운 우리들의 억양을 듣곤

부산사람들이라 더 반갑다며 이 반찬 저 반찬을 듬뿍듬뿍 챙겨주셨다.

 

여행사 사장님이 주신 차가버섯

벌써 잊을 수 없는 멋진 추억으로 자리 잡았는데

귀한 차가버섯 선물까지 생겼으니 꿩 먹고 알 먹고··· 

 

국립공원 게르에 묵을 때의 식당에서 차가버섯을 팔고 있어

차가버섯이 얼마나 좋은 버섯인지 많이 들었기에 나는 몇 번이나 들었다 놓으면서

쇼핑센터나 면세점에서는 반드시 사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오늘 저녁식사는 몽골 부산식당에서 한식으로

몽골에서의 마지막 밤은 호텔이다.

여인숙에서 모텔, 모텔에서 진짜 호텔로··· 

비즈니스호텔이 얼마나 깔끔하고 포근해 보이던지

만사를 제쳐두고 눕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가 몽골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순 없단다.

이번 트레킹에서 감초였던 동우 친구의 싱겁고 재미난 이야기와 그의 칵테일은 또 짧은 몽골밤을 더 짧게 만들고··· 

 

- 6일 차 -

2023. 6. 26. 월요일

5박 6일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식사만 끝나면 공항으로 출발한단다.

가방을 꾸리고 있는데 손목 워치에 카톡 들어왔다는 신호가 떴다.

은규 어미인 큰딸이 보낸 카톡이었다. 운규가 쓴 주말일기의 사진이었다.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 더 보고 싶고, 할아버지의 소중함을 느낀단다.

일주일 가까이 보지 못한 손주들이 보고 싶었다.

순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었다.

기다리는 가족이 행복이었다.

 

 

몽골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요렇게

공항으로 가던 중 몽골의 명품 캐시미어 쇼핑몰에 들렀다.

문을 열기도 전에 도착하는 바람에 10여 분 기다렸다가 들어갔으니 우리가 첫 손님이었는데

이내 들이닥친 한 무리의 한국인 여행객들은 몽골을 다녀가면서 캐시미어 안 사가면 후회한다며 매장을 휘젓고, 우리 이륙산악회 친구들도 저마다 아내에게 줄 선물을 찾아다니느라 매장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한 친구들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나는 여성용 숄(shawl)이 걸려 있는 곳에 서서 천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에 대보기까지 했다.

어제 쇼핑센터에서 사위들과 한잔할 요량으로 몽골 보드카 한 병을 샀으니 오늘은 내가 없는 동안 혼자서 손주들을 케어한 집사람에게 캐시미어 선물 하나는 사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고 한 집사람의 엄명(?)이 떠올랐다.

보드카에 숄까지 구입해 가면 집사람이 좋아하기보다는 "얼마 주고 샀냐?", "왜, 이런 색상으로 골랐냐?"며  괜한 짓했다고 야단(?) 칠 것 같았다. 살까 말까 한참 고민을 하던 중 갑자기 기막힌 묘수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옳지!, 그러면 되겠다.'

몇 가지의 색상 중에서 집사람이 좋아할 색상 고르기는 역시 난제 중 난제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풀지 못하는 걸 보면 100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는 힐베르트 수학 난제만큼이나···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갑자기 머리를 스친 기막힌 묘수가 난제를 한 방에 해결한 셈이다.

집사람에 잘 어울린 만한 숄을 골라 계산대로 가서는 의기양양하게 카드를 긁었다.

 

몽골 징기즈칸 공항에서 가이드와 이별하는 26산악회 멤버들

 

우리 이륙산악회의 이번 5박 6일 몽골트레킹에서 걸은 걸음 수는 174,608보.

별 스케줄이 없었던 귀국일(26일)을 제외하면 5일 동안 162,365보를 걸어 하루 평균 32,500보씩 걸었던 셈이니

제법 빡신 트레킹이었다. 또 조난자 취급을 받을 만큼 힘들어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스릴 넘치는 트레킹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멋진 친구들과 함께한 몽골에서의 5박 6일

2018년 판시판 트레킹 후 2020년 출국을 목표로 계획했던 몽골 트레킹이 코로나 팬데믹에 막혔음에도 포기할 줄 모르고 추진해 4년 만에 멋지게 성공한 이륙산악회의 해외트레킹 추진단장 김석진 친구, 이번 트레킹에서 총무를 자청해 소주와 김치, 깻잎 등 먹거리의 출국 전 준비는 물론 보드카와 간식거리를 현지에서 조달하느라 애쓴 신종진 친구, 국내에서의 산행 때마다 입에 맞는 커피를 준비해 와 '영문다방 김마담'이란 애칭으로 받는 사랑이 부족했을까? 몽골에까지 갖가지 커피를 준비해 와 필요할 때마다 친구들의 입맛을 맞춘 김영문 친구, 출국 훨씬 전부터 몽골 트레킹에 대해 많은 정보를 공유토록 해 트레킹의 즐거움을 배가시킨 기동대장 김귀동 친구, '약방에 감초라더니···' 밤마다 친구들 입에 짝짝 달라붙는 칵테일 제조는 물론 싱겁고 재미난 이야기로 5박 6일 내내 우리 모두의 입과 귀, 가슴까지 즐겁게 한 고교 수학선생님 출신 바텐더 이동우 친구, 알프스 몽블랑 트레킹을 친구와 단 둘이서 할 만큼 산행을 잘하는 날쌘돌이 춤꾼 권봉기 친구, 23일 체체궁봉 트레킹에서 제일 먼저 몽골 대통령 관저 경비병 군인을 만나 조난 예방의 실마리를 찾은 정승효 친구, 체체궁봉 산행일 생일을 맞아 버스 안에서 생일 축하를 받은 한옥봉 친구, 올가을 1박 2일로 예정인 영남알프스 트레킹의 총무를 자청한 김홍기 친구, 고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50년이 넘도록 갈고닦은 사진 솜씨에 드론까지 동원해 멋진 추억을 생생하게 남긴 프로 사진작가 김홍관 친구, 친구 한 명 한 명 모두모두가 보석이었는데 이런 보석들 덕분에 甲午生 권봉기와 김귀동 그리고 나, 이석도에게는 맑디 맑은 몽골 하늘의 하얀 뭉게구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칠순여행으로도 오래오래 추억될 것이다.

 

저녁식사 후 여행가방을 열어 선물들을 하나씩 꺼내면서 말했다.

"초콜릿 3통 이것은 원준이, 은규, 세은이 꺼"

"이건 술이야. 이번 주말 사위들과 마실 몽골 보드카"

"짠! 이것은 당신 선물"

그러자 집사람이 물었다.

"웬일로 내 것도 다 있네···, 뭐야?"

"몽골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캐시미어 숄(shawl)이래"

"비쌀 텐데 왜 샀어요, 아무것도 사지 말랬잖아···"

"산 것 아니야. 우리 모임에서 해외여행 보내준 마눌님들 고맙다고 회비에서 하나씩 선물하는 거야."

"색상은 이것 한 가지밖에 없었어요?"

"아니, 몇 가지 더 있긴 했는데 내가 봤을 때 예쁜 당신에겐 이 색이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잘했어요. 천이 부드럽고 좋네···, 와! 이륙산악회 참 좋다. 또 언제 간대?"

 

김홍관 감독, 김홍관 연출의 '26산악회의 몽골트레킹 처음부터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