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날 -
2023. 6. 21. 수요일
옛날 옛적 甲寅年, 1974년 2월 어느 날
부산직할시 서대신동 구덕종합운동장 바로 옆에 위치한 경남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 중 적잖은 젊은이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 뿌리내려 살면서 오십 년이 되도록 모임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재경 26 동기회'라 한다. 그리고 이 '26 동기회' 멤버들 중에는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십수 년 전 '26 산악회'란 소모임을 결성한 후 매월 한두 차례 이상은 꼭 함께 산을 오르내리면서 우정을 쌓고 행복을 나누고 있었는데, 오늘은 모임의 멤버들 중 11인이 몽골로 5박 6일 일정의 트레킹을 떠나기로 했으니 이 얼마나 경사스러운 날인가 싶다. 우리 '26 산악회'의 산행은 수도권에 있는 산을 주로 오른다. 멀어야 기껏 강원도에 위치한 산이었다. 하지만 2015년 4월엔 한라산을 올랐고, 2017년 7월에는 백두산에 올랐고, 2018년 11월엔 3,143m의 해발고도로 인도차이나반도에서는 가장 높다는 베트남의 판시판을 올랐으니 사전적 의미 중 하나인 바다를 건너는 것이 海外라면 서해를 건너는 우리 이륙산악회의 이번 트레킹은 비행기 타고 가는 네 번째 海外(?) 산행인 셈이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느라 밤잠을 설쳤을 텐데도 약속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인천공항에 도착한 11인 용사(?)의 얼굴엔 피로의 기색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그냥··· 조금은 들뜬 듯 마냥 밝고 맑기만 했다. 하긴··· 어찌 그러하지 아니하겠는가···.
판시판트레킹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2020년 몽골트레킹'에 새끼손가락을 걸었건만 2019년 시작된 '코로나'라는 몹쓸 병이 온 세상을 덮치는 바람에 3년 동안이나 마음 졸이며 학수고대했으니···
우리를 태운 아시아나 항공 OZ 567기는 09시 25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느라 아침식사를 못한 우리가 기내식으로 허기를 달래는 등 여유를 부리는 동안
뱅기는 3시간 35분을 날자 어느새 창밖으로 끝없는 초원이 보이더니 울란바토로 칭기즈칸 국제공항
인산인해를 이룬 몽골 공항 입국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우리 한국말밖에···
마중 나온 미모의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공항 안 식당에서
몽골 전통국수인 듯 보이는 면요리로 속을 채운 다음 25인승 버스로 Go! Go!
끝없이 펼쳐진 초원
가로수 몇 그루를 제외하곤 나무라곤 보이지 않는 초원이지만
곳곳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 떼와 양 떼, 그리고 소떼의 모습은 시원하다 못해 눈이 시리다.
산은 나무가 있어야 제맛이고, 산은 나무가 있어야 아름다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얀 버선의 곡선미가 우리나라의 한 아름다움이듯
열여덟 시골처녀의 솟은 젖무덤처럼 봉긋봉긋 솟은 얕은 산은 몽골 아름다움의 시작이었다.
사막으로 가던 중 잠시 버스에서 내려 드넓은 몽골 초원의 맑고
신선한 공기를 가슴에 담으면서 세계평회를 발원하는 돌탑(?) 탑돌이 하는 친구들···
공항에서 1시간 40분을 달려 도착한 고비사막 아르부르드의 게르
이 게르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낙타를 탄 후 모래썰매 체험의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우리 일행은
털갈이 시기라 털갈이가 한창인 지저분한 낙타의 모습에서 수년 전 낙타 접촉으로 발병되어
많은 나라를 두려움에 떨게 한 '메르스'란 중동 호흡기 증후군을 떠올리며
낙타체험은 패스하고 모래썰매 체험을 위해 모래언덕으로···
모래가 참 곱다.
밀가루만큼이나 입자가 작다.
사막이 되는 건 강수량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막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모래썰매를 마칠 무렵 한두 방울씩 비가 내리고 하늘엔 먹구름이 까맣다.
한국에서 수년간 공부를 한 덕에 우리말이 능숙한 현지인 가이드가 걱정 섞인 말을 했다.
"저녁에 캠프파이어를 하고 별구경도 해야 하는데··· "
그러자 한 친구가 말했다.
"호란, 걱정하지 마. 우리 26 산악회 친구들은 3代 덕을 쌓아 괜찮아. 한라산에 올랐을 땐
백록담의 맑은 모습을 봤을 뿐 아니라 백두산에 갔을 때도 눈이 시리도록 맑고 깨끗한 천지의 모습을
북파와 서파에서 두 번이나 봤고 3,140m의 베트남 판시판산도 맑은 모습 제대로 보고 왔다네···
우리가 등산하는 날엔 오던 비도 멈춘다네."
어린아이가 따로 없다. 70살의 아이다.
그저 즐겁고, 마냥 행복하기만···
몽골의 여름은 낮이 훨씬 길다고 한다.
06시 안 되어 솟았던 해님이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이렇게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자
우리들의 밤은 시작되었다.
캠프 파이어가 끝나자 드러난 몽골의 밤하늘
쏟아질 듯 많았던 어린 시절 고향하늘 은하수의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은하수가 나타나지 않아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보는 북두칠성의 또렷한 모습과
다닥다닥 점찍은 듯 많은 별들의 모습은 적잖은 위안이었다.
- 2일 차 -
2023. 6. 22. 목요일
몽골 사막의 아침은 이런 모습으로 밝았다.
아침 식사 후 오늘의 행선지인 테레지 국립공원으로 Go! Go!
오늘은 사이클 대회가 있는가 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의 지평선을 보던 중
논 한 마지기, 밭 한 뙈기 보이지 않는 모습에 불현듯 나는 어릴 적 시절이 떠올랐다.
자식들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자식들에게 한 글자라도 더 배우게 하기 위해 비탈진
산기슭의 나무뿌리까지 뽐아내면서 손바닥 만한 밭을 만들어 일구시던 내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그 시절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라가 이곳에 계셨다면 이 텅 빈 초원도 오곡백과 넘실거리는
옥토가 되어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초원
우리 대한민국 영토의 약 16배로 세계 19위의 국토면적이라니 넓긴 넓다.
게다가 인구는 우리 대한민국의 1/10도 안 되는 340여만 명인 데다
무수한 지하자원이 묻혀 있다니 척박해 보이기만 하던
초원이 이젠 부러워지기 시작하고···
칭기즈칸 전망대를 둘러본 뒤 도착한 테레지 국립공원 게르
이곳에서 사흘 밤을 묵는단다.
공기 맑은 초원과 기암괴석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흘 동안 가슴도 눈도 호강할 것 같다.
게다가 게르마다 깨끗할 뿐 아니라 화장실과 샤워 공간이 설비되어 있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화장실이 따로 없고 샤워 공간은커녕 공동 세면장이 있었지만 똑똑 떨어지는 듯 나오는 물로는 양치질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던, 첫날밤을 보낸 사막의 게르가 시골동네 여인숙이었다면 오늘부터 사흘 묵을 게르는 모텔급
태레지 국립공원의 명소 라마사원을 오르내리는 동안엔 이름 모를 야생화의 아름다음에 빠지고
거북바위, 책 읽는 바위 등 금강산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물주께서
숨겨둔 예술감각을 여기에서 발산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공원 게르는 식사도 좋았다.
저녁식사 후 세상에서 가장 편한 모습으로 여유를 즐기는 친구들
이틀째 밤은 깊어갔지만
오늘밤도 그냥 보낼 순 없다며
바텐더를 자청한 동우 친구가 실력을 발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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