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미삼아 하는...

6개월 동안....

  벌써 6개월이 되었다. 이 걸할까 저 걸할까 고민 고민하다가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정으로 거금(?)을 투자해 시작했다. 지난 초여름. 콩나물 대가리만 겨우 알뿐 제대로 음악공부를 해본 적이 전혀 없고 제대로 부르는 유행가조차 없을 만큼 음악의 외계인이던 내게는 큰 모험이고 어쩌면 영영 가능하지 않을 색소폰에 도전했었다. 오죽하면 이제 네살이 되는 원준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잡고 나들이 가다가 함께 동요라도 부르면 "할아버지 노래 못해." "할머니는 잘해." 그러면서 또 "오빠 잘 부르는 거 봐라."며 선창하면서 나를 가르치려 든다. 무슨 가사인지 알아듣기 힘든 발음이지만 리듬에 맞추어 박자와 음정은 틀리지 않은 걸 보니 할아버지를 닮지않아 音感이 좋다.

 

  음악에 재능이라곤 전혀 없는데다 취미조차 없던 내가 색소폰을 배우겠다니 장난인줄 생각하다 시작한 걸 알고는 식구들 모두가 의아해 했다.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악기에 입을 대고 불기만 하면 소리는 저절로 나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악을 써도 통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매일 점심 후 학원에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니 겨우 소리는 나는데 내가 들어도 악기소리라 할 수 없을 정도다. 매주 한시간씩 1:1 레슨을 받으며 입모양을 다듬어도 다음날이면 또 틀어지고... 입모양이 어렵고 나이가 들어 혀가 굳어 그런지  텅잉이라는 혀 놀림도 여간 어렵지 않았다. 두 달쯤 지나니 소리는 조금은 제대로 나는 것 같은데 왼쪽 엄지 손가락이 아프다. 아픔을 참으며 제대로 된 소리를 내랴, 콩나물 대가리의 계명을 익히랴, 계명에 따라 손가락으로 키를 눌려랴 정신이 없다. 어느 하나 신경쓰면 저게 안되고, 저거에 신경 쓰면 이게 안되니 괜히 시작했나 싶다. 좀 나아지는 가 싶으면 슬럼프가 찾아오고...별 발전도 없으면서 열심히 애만 쓰는 게 안쓰럽게 보였던지 어느날 작은 딸 세라가 "아빠! 이제 그만 하세요. 아빠가 도.레* * * 라.시.도까지 연주하시는 것만해도 대단해요." 그런다. 하지만 나도 사나이 인데,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우라도 잘라야지 그냥 칼집에 넣을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어차피 나는 음감이나 음악재능이 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함을 알면서 스스로 선택했으니 여기에서 물러설 수는 없다. 여기서 그만 둔다면 악기는 고물로도 못 쓸게 아닌가. 

 

  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레슨받는 한 아주머니는 유행가 책를 펼쳐 놓고 반주기에 맞추어 능수능란하게 연습을 하고 있다.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더니 이제 1년이 되었단다. 너무 너무 부럽다. 레슨 받던 어느날 레슨선생에게 "선생님이 보기엔 내가 어때요? 연습을 많이 하는데도 이렇게 발전이 없으니 내게 색소폰이 맞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색소폰을 중고로 팔면 얼마나 받겠소?" 했더니 레슨 선생은 "지점장님 연세에는 다 그래요. 저는 색소폰을 16년이나 했는데도 어려울 때가 있어요. 지점장님은 다른 분들보다 연습을 열심히 하시는 편이니 조금만 더 해보세요."라며 위로한다. 그렇다 소질이 없으면서 남과 같은 노력으로는 안되는게 당연하다. 더 많이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 말고는 왕도가 없으리...

 

  골프를 시작하던 때를 생각해 본다. 일년간 아침 저녁으로 연습장에서 죽자사자 연습을 했었어도 막상 필드만 나가면 심하게 슬라이스가 나거나 훅이 나고, 쌩크까지 나서 골프채를 부러뜨리고 싶었던 적이 어디 한 두번이었던가?  수 년간의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싱글골퍼가 된다는걸 체험하지 않았던가. 또 마라톤은 어떠했던가? 400m 운동장 한바퀴를 못돌아 헥헥 거리던 체력이 연습하고 또 연습하니 400m가 1km 되고, 1km는 10km가 되어, 하프마라톤을 뛰고 끝내 2년만에 백리가 넘는 풀코스까지 완주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나의 장기(長技)는 스피드가 아니라 지구력이다. 1년만에 안되면  2년을 하고, 2년도 모자라면 3년, 아니 언젠가는 될테지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연습만 늘렸다. 매일 색소폰을 걸머지고 출퇴근 하면서 낮엔 학원 연습실에서, 밤에는 세라가게에서 1시간 이상 연습을 했다. 뱃심(복식호흡)으로 밤연습을 마치고 12시가 다 되어 집에 와서 배고프다고 그러면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하는 집사람은 나땜에 잠이 부족하다며 불평하면서도 간식은 또 잘 챙겨준다. 이렇게 각오를 다지고 연습에 열중하니 조금씩 아주 조금씩 좋아지는데 왼손 엄지는 점점 더 아파온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던 어느날 갑자기 低音(도)이 잘 나지 않는다. 아무리 연습해도 삑소리가 나거나 한참 동안 솔(G)음이 난 후에 도(C)음이 된다. 일주일 내내 그러길래 목요일 레슨선생에게 저음이 안된다고 했더니 입모양과 턱모양이 잘못되어 그렇다며 교정시켜주는데 금방은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레슨이 끝나고 혼자서 연습할 때는 또... 인터넷을 검색하고 전문가들에게 상담하니 어러가지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며칠 내내 낮은 도(C)음을 중심으로 연습하는데 계속 삑소리가 아니면 G음이다. 연습이 싫어지고 색소폰도 확 집어 던져버라고 싶지만 들어간 본전과 노력을 생각하니 그럴수도 없다.

 

  다음 목요일 레슨선생에게 도무지 저음이 안되니 선생님이 내 색소폰을 한번 불어 보시라 했더니 선생은 자기의 색소폰을 벗어주며 먼저 내가 자기 색소폰을 불어 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자기 색소폰은 내 색소폰 보다 싸구려라 한다. 처음 불어보는 선생의 색소폰, 그런데도 낮은 도(C)가 아주 부드럽게 잘 난다. 그러니까 선생도 내 색소폰을 불어보자며 저음을 부는데 나와 똑같이 삑소리 나면서 제대로된 저음이 나질 않는다. 그러자 선생은 색소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악기점이 많은 낙원상가의 한 악기점을 소개해 준다. 알려준 악기점에 들러 패드 하나를 갈아끼고 구멍 하나하나 조율 하더니 다됐다며 3만원이란다. 악기점에서 불어 보니 低音 高音 모두 마음에 들게 잘 나온다. 이렇게 조금만 손보면 되는 걸 그것도 모르고 소리 안난다고 스트레스만 받았으니... 하긴 덕분에 저음 연습은 엄청 많이 했다. 소리가 제대로 나오니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고 연습은 재미있어진다. 연습이 재미있어 더 열심히 했더니 왼손 엄지 손가락은 구부렸다 펴면 딸깍 딸깍 걸리면서 더 아프다.  결국 은행부근의 안세병원에 갔더니 '방아쇠 수지증'이라며 수술을 권한다. 수술를 거절하고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처방 받았는데, 1주일간 그약을 먹고 속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위내시경 검사끼지 받아야 했고 손가락은 여전히 아팠다. 할 수없이 양재동의 정형외과에서 정밀 검사를 받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더니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듯 아프지 않다. 그렇지만 의사는 주사로 완전히 나을 수도 있지만 2∼3개월 후 재발될 수도 있다며 그때는 수술을 해야 한단다. 간단한 수술이라 수술비는 8만원밖에 안된다지만...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6개월이 지난 요즘, 아직 색소폰 다루는 솜씨는 서툴기 그지없고 소리 또한 영글지 않았지만 콩나물 대가리는 물론 악보를 설명하는 선생님의 왠만한 음악용어는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가장 어려운 건 리듬, 박자, 음정이다. 16분음표, 한박자 반, 세박자 반의 콩나물대가리가 나오면 얼마나 짧게 불어야 할지, 얼마나 길게 불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된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지점장님 너무 빨라요. 반박자 늦추세요."가 아니면 "지점장님 너무 늦어요 반박자만 당기세요."라고하면서 박자는 발놀림으로 맞추어라 하는데... 박자에 마춰 발바닥을 까딱 까딱 놀리지만 키를 누르는 손가락 스피드에 따라 저절로 빨라졌다 늦어졌다하니 발바닥 장단도 헛사다, 아직 반박자의 길이를 제대로 모르는 나에게는...

그래도 6개월이 되니 에델바이스는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Let it be me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yesterday는 아직 훨씬 더 많이 연습해야 되겠지만...

 

 

 

 

어설픈 나의 연주Let it be me

 

 

 

 

'재미삼아 하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熱河日記(1)』을 읽고…  (0) 2013.05.23
숭례문 기념주화  (0) 2013.05.16
step by step...  (0) 2013.04.23
나의 소꿉놀이  (0) 2013.03.15
또 다른 재미를 찾아서...  (0) 2013.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