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1. 토요일
대모산 오르기로 한 날.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설 때의 발걸음과 마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볍고 상쾌했다.
지난 토요일 함께 구룡산에 올랐던 집사람이 그날 저녁 식사 중에, 몇 년만에 했던 산행인데도 생각보다 덜 힘들었을 뿐 아니라 막 돋기 시작한 봄기운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 무척 좋았다면서 다음 토요일엔 대모산에 가자고 한 덕택(?)이다. 게다가 지난 토요일 구룡산 산행 때는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었으면서도 아빠랑 놀고 싶다며 빠졌던 원준이가 오늘은 순순히 따라 나섰으니 기분이 더 좋았다.
1. 도보→능인선원→구룡산둘레길→대모산 정상→수서역→지하철→집
2. 지하철→수서역→대모산 정상→구룡산 둘레길→능인선원→도보→집
1번이 좋을까?
2번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신분당선 시민의숲역으로 향했다.
신분당선도 여유로웠지만 승객 몇 없는 3호선은 여유롭다 못해 '한적'이란 단어가 어울릴 정도였다.
양재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면서 빈 자리를 차지하기란 보통 행운이 아닌데 오늘은 3/4 이상이 빈 자리였으니 조금은 생소한 느낌마저 들었다. 우한 폐렴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마스크 착용 이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면서 국민들에게 모임, 회식, 행사 등에의 외출을 최대한 자제해 주길 당부하더라만 우리 백성들이 이렇게 말을 잘 들을 줄이야…
수서역을 6번 출구로 빠져나와서는 등산화를 졸라매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오르기 시작한 대모산.
네이버로 검색한 「한국지명 유래집」에 따르면
대모산은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고 해서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원경 왕후와 조선 태종을 모신 헌릉이 내곡동에 자리하면서 어명에 의해서 대모산(大母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이밖에도 산 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과 닮았다는 것과 또는 구룡산의 봉우리와 함께
여성의 앞가슴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대모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단다.
할머니를 따라 걷는 원준이의 뒷모습이 아주 의젓하다.
지난 토요일만 해도 봉오리만 봉곳했을 뿐 활짝 핀 꽃은 몇 없었는데
일주일 만에 중턱까지의 진달래는 이처럼 활짝 만개하고 있었다.
나무들의 일주일은 꽃봉오리를 활짝 열거나 참새 혀 같았던 새싹을
내 엄지 손톱만큼이나 키웠는데, 나의 일주일은 도대체 뭘 한 걸까?
짧은 詩라도 한 편 내주었으면 좋으련만…
삶은 계란을 엄청 좋아하는 정원준, 잠시 자리에 앉자 삶은 계란부터 찾았다.
산에서 먹는 삶은 계란이 더 맛있다며 아예 폭풍 흡입이다.
롯데타워를 배경으로 찰깍∼
김밥 4줄, 샌드위치, 삶은 계란, 오렌지, 사과, 오이 등등
맛난 먹거리가 지난 토요일 산행 때보다 훨씬 푸짐한 건 다 원준이 덕분인 듯…
능인선원으로 하산, 하산 인증샷은 능인선원의 대형 좌불을 배경으로…
수서역 쪽에서 올라 대모산 정상과 구룡산 서울둘레길을 거쳐 능인선원 쪽으로 하산한
오늘 산행 코스를 더듬어보는 정원준
293m밖에 되지 않는 해발의 야트막한 山인데다 잘 조성된 서울둘레길 4코스 중 일부인
그다지 험하지 않은 산길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번갈아 외손자 손을 잡고 걸었던 대모산 산행.
함께 19구단을 외우기도 하고 삼국시대 신라 화랑들의 심신단련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지만,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산길이 운동장인 양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외손자가
넘어질세라 다칠세라 잔소리하기 바빴다. 그때마다 가슴은 저리면서도 행복했다.
'먼 훗날, 원준이가 손자 손을 잡고 대모산에 오른다면 오늘 산행이 떠오를까?'
'떠오른다면…, 손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우리 이야기도 할까?'
아내와 외손자와 함께 8km를 걸으며 4시간을 머물렀던 대모산
대모산(大母山),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산이었다.
엄마 품처럼 얼마나 포근하던지…
외손자와 함께한 대모산
봄소풍은 행복이었다.
집에 들어서면서 집사람이 말했다.
"다음 토요일엔 청계산에 가요."
"청계산? 오케이"
기쁨에 대답이 저절로 나왔다만
잠시 후엔 고민이 살짝…
'마누라랑 산에 다니느라 매달 두 번씩 가는 이륙산악회 산행에 참석 못 하면 어쩌나…'
'친구들과 세상 사는 얘기와 헛소리(?)를 나누면서 걷는 산행이 얼마나 즐거운데…'
'산행을 마친 후 친구들과 마시는 하산주는 또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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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이번 주 선물은 고민,
행복한 고민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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