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22. 일요일
관악역 2번 출구,
09시 30분이 살짝 지날 무렵부터 손을 치켜들어 인사를 하면서 모여드는 친구들이 마시는 진한 커피향은 오가는 사람들의 코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산행 때마다 그러하듯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영문다방 김마담이 몸소 세 개의 보온병에 타 온 두 종류의 따끈한 커피로 친구들을 맞았다.
오늘은 우리 이륙산악회의 송년 산행일
김귀동 대장과 이풍규 부대장을 비롯해 10명의 멤버들이 참석했다.
산악대장의 출발신호로 10시쯤 관악역을 벗어나면서 시작된 이륙산악회의 2019년 28차 산행 겸 송년 산행.
코스는 약 13개월 전이었던 2018년 11월 11일의 정기산행에서 11명의 대원들이 걸었던 산길을 오르면 될 것 같았다.
관악역 광장은 복적북적 붐볐다. 겨울날씨 치고는 꽤 포근한 일요일이라 그런지 삼성산을 찿은 등산객들이 엄청 많았다.
전날 내가 사는 동네에는 비가 살짝 내리다 말았는데 삼성산에는 눈이 내렸던 모양이다. 양지바른 곳에는 다 녹아 없었지만 그늘진 곳의 바위와 낙엽 위엔 눈들이 그대로 있었다. 군데군데 하얀 꽃이 군락지어 핀 것처럼 보이는 눈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올 겨울 들어 처음 보는 하얀 눈이 얼마나 순결하게 느껴지던지 새삼스러웠다.
50년 가까이 묵은 친구들과의 걷는 산길은 추억의 길이었다.
산행 때마다 그랬듯이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되기도 하고, 아직은 넥타이가 한참 어색해 보이는 사회초년병이 되어 도란도란 추억을 나누기도 했지만 어지러운 국내 정치와 경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는 얼굴을 붉히기도 하면서 산길을 걸었다.
친구들이 준비해 온 간식을 먹으면서 학우봉과 삼성산 정상 및 국기봉을 거쳐 도착한 관악산 공원 입구.
우리 이륙산악회의 2019년도 28차 산행의 기록은 삼성산, 10.3Km, 4시간 40여 분이었다.
2006년 6월 11일 고교동기들이 청계산에 오르면서 창립된 26산악회
名山을 찾아다닌 13년 동안 얼마나 숙성이 잘 되었던지 대원 모두가 人香을 풍기는 멋진 모임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이륙산악회는 네 가지가 없는 산악회이 된 것 같다.
산행 중에는 단 한 모금의 술도 입에 대지 않기로 했으니 첫째가 무주(無酒)요.
산행 코스를 잡거나 산행할 때는 절대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않았으니 둘째는 무과(無過).
안전을 제일의 목표로 삼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작은 사고조차 없었으니 세째 무고(無故)
그리고…, 우리 대원들의 희망(?)과는 달리, 단 한 번도 여성팀과 함께 산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무여(無女)
서울대입구역 삼차고기집
빨갛게 피어오른 숯불 위에서 남의 살이 한창 익어갈 때였다.
건배를 제의하기 위해 일어선 김귀동 대장이 인사말 도중에 산악회 대장직을 내려 놓겠단다.
2017년 12월부터 자임해 4대 산행대장을 맡아 오는 동안 매월 둘째 일요일의 정기산행은 말할 것도 없고, 매월 한 번 이상의 번개산행과 명절 산행 등을 추진해 2018년에는 25회, 올 2019년엔 무려 28회의 산행을 실행함으로서 우리 이륙산악회를 반석에 올렸으니 우리 회원 중 어느 누가 그의 산행대장 사임을 말리지 않았으랴.
하지만, 이내 우리는.
회장과 함께 2년 동안 이륙산악회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 했던, 그리고 산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또 산을 가장 잘 타는 부대장을 새해부터는 대장으로 모시고(?) 자신은 다시 부대장을 맡아 우리 이륙산악회의 발전을 위해 지금까지 했던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봉사하겠다는 김귀동 대장의 아름다고 고마운 고집을 더이상 꺾을 수 없었다.
고기맛 짱.
술맛도 짱.
친구맛 짱.
활활 솟아오르는 숯불 위에서는 붉은 고기가 익어가고
술잔을 맞댈 때마다 우리 가슴엔 우정이 솟고 얼굴은 조금씩 붉게 익어가는 뒷풀이였다.
己亥年을 보내는 아쉬움보다 2020년 庚子年을 맞는 기대가 큰 산행이었다.
우정과 건강이 철철 넘치는 이륙산악회의 송년산행이었다.
관악역 2번 출구에서 영문표 커피를 마시며 친구를 기다리는 친구들
1년 전인 2018년 11월 11일 삼성산에 올랐던 모습
전태호 친구가 전날 집에서 몸소 대추를 푹 고아서는 껍질만 걷어내곤 살을 짓이겨
만들어 왔다는 대추차는 얼마나 진하고 맛나던지 꼭 한 첩의 보약을 먹는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삼막사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내 뒤를 따라오던 한 등산객이 친구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난 국수 먹고 싶으면 저기 가서 줄 서 "
김귀동, 한옥봉, 전태호, 이홍희, 김석진, 이풍규, 박대승, 이석도,김영문, 이종성
이륙산악회의 더 큰 발전과 2020년 몽골트래킹의 성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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