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10. 수요일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나가 창문을 열고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다행이다.
군데군데 먹구름이 보이긴 했으나 점점 파란색이 짙어지는 게 가을하늘다워지고 있었다.
오늘은 매헌초등학교의 운동회가 열리는 날.
우리 원준이가 다니는 이 학교에서는 2년마다 하는 가을 운동회를 애당초엔 지난주 금요일이었던 10월 5일에 열기로 하고는 4일 저녁에 수많은 천막까지 세웠더만 하필이면 그날 밤부터 태풍 쿵레이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10월 10일, 오늘로 연기한다는 공지를 진즉 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제 저녁 무렵부터 학부모들의 모임인 아버지회에서 운동장 곳곳에 다시 천막을 치느라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제 한밤중에 비가 쏟아지길래 운동회를 또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지만 비가 그쳤으니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창문만 열면 내다보이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은규를 유치원 등원차에 태워 보내고는 곧바로 행사장으로 갔더니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파른 가을하늘엔 만국기가 휘날리고 있고, 벌써 개회선언을 했는지 운동장에는 전교생들이 집합해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또 운동장 곳곳에는 수많은 학부모들이 서성이고 있었는데 모두들 카메라나 폰으로 아이들을 찍느라 바쁠 뿐, 먹거리를 들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운동장을 빙 둘러 싼 많은 천막을 들여다봐도 먹거리를 펼친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어제 저녁, 원준이 어미랑 통화하면서 운동회 때 김밥이라도 싸느냐고 물었더니 “아빠! 준비할 것 하나도 없어요.” 하길래 ‘설마!’ 싶었는데…
영 맹숭맹숭한 분위기였다.
잠시 뒤, 넓은 운동장 곳곳에서 학년별로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원준이를 찾아보기 위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언제 나를 보았는지 원준이 엄마와 아빠가 다가와서는 원준의 학급인 2학년 1반 아이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어린이들 사이에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원준이가 보였다.
“정원준! 정원준! 정원준!”
몇 번을 불러서야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원준이에게 “파이팅!”을 외치곤, “할아버지는 詩공부하러 간다. 다시 올게.” 그리고 딸과 사위에겐 “사진 많이 찍어 보내라.” 말하고는 아쉬움이 듬뿍 묻은 발걸음으로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당초 예정대로 5일에 했더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수 있었을 텐데…’
오늘은 매주 수요일마다 박동규 교수님께서 강의하시는 서초문화원의 ‘심상문학-詩창작’이 추석연휴와 개천절로 2주나 휴강했다가 3주 만에 하는 수업의 날이라 결석할 수 없어 운동장을 빠져나왔지만 발걸음이 무거웠다.
'우리 원준이의 첫 운동회인데…'
서초문화원으로 향하는 내내 미안함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오쯤 수업이 끝날 무렵 내가 딸에게 카톡으로 점심은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오후 운동회는 몇 시부터 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원준이 어미는 운동회를 촬영한 여러 사진들과 함께 아이들은 학교급식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학교식당으로 갔단다. 그리고 운동회는 오전 행사로 끝이 났단다.
아니 이럴 수가…
운동회가 10시부터 12시까지, 기껏 2시간 만에 끝나다니…
나는 원준이의 운동회 사진을 몇 번이나 반복해 보았다. 그러자 나의 초등시절 운동회가 떠올랐다.
내 고향 마을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개교 89년이 되던 해인 2012년에, 입학하는 어린이가 없는데다 총학생 수의 태부족으로, 폐교되어 지금은 텅 빈 교사(校舍)와 아이들 발자국조차 남지 않은 넓은 운동장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50여 년 전에는 전교생 수가 500∼600명이나 되는 시골치고는 규모가 상당히 큰 초등학교였다.
그 학교에서도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가을운동회가 열렸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넓은 운동장엔 하늘 가득 만국기가 휘날리고 학교 앞 신작로에는 장터국밥과 탁주 등을 파는 천막이 여럿 생겨 아침부터 우리 동네는 물론 이웃동네 어른들의 발걸음까지 불러 모았다.
운동회의 날은 학구 내 7개 마을의 잔칫날이었던 셈이다.
하얀 세로줄이 그어진 까만 팬티에 하얀 런닝구만을 입은 학생들이 머리에는 파란 띠나 하얀 띠를 동여맨 채 청군 또는 백군으로 나뉘어서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를 목이 터져라 외쳐댔던 가을운동회.
“賞”이 찍힌 얄팍한 공책을 타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렸던 100m 달리기.
사다리와 그물 밑을 통과해야 했던 장애물 경기.
종이에 쓰여진 사람 또는 물건을 찾아 손을 잡거나 들고 달렸던 경기.
3명이 말이 되면 그 위에 한 명을 목말로 태워 상대편의 머리띠를 빼앗는 기마전.
헝겊주머니에 곡식이나 모래를 넣어 만든 오자미를 던져 장대에 높이 달린 종이박을 터뜨리면 큼직한 붓글씨로 “농자지천하지대본(農者之天下之大本)” 등을 쓴 종이 두루마리가 쫙∼ 펼쳐지면서 색종이 조각들이 눈송이처럼 쏟아지던 오자미 던지기 등등…
지금 생각해도 짜릿할 만큼 신나는 운동회였다.
참, 그때의 운동회라면 점심 이야기도 빠질 수 없겠다.
아들딸 또는 손주를 응원하기 위해 운동회에 참석하시는 어른들이 들고 와서는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함께 먹는 점심시간은 우리들이 운동회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큰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으니…
운동회의 메뉴 중 해마다 빠지지 않는 삶은 햇고구마와 삶은 햇밤이랑 빨간 홍시야 청도반시로 유명한 시골이라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이라 별것 아니었지만, 엄마가 펼친 보자기 속에 김밥과 삶은 계란이랑 20원쯤 했던 것 같은 사이다가 한 병만 들어 있으면 최고의 성찬(?)이었다. 이런 것들은 일 년에 한두 번쯤, 소풍갈 때나 겨우 먹을 수 있어 무지무지 먹고 싶어했던 시절이었으니 우리들의 기대와 기다림이 오죽했으랴.
그런데…
너무 변해버린 운동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잘 차려입은 아이들이 파란 운동장에서 맘껏 뛰노는 모습이 보기에는 좋았다.
요즘 엄마들은 편해져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커다란 무엇인가가 빠졌다는, 없어서는 안되는 무엇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농경사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인지 모르지만 나는…
땀 냄새 물씬 풍기며 달려오는 아이들을 온 가족들이 두 팔 벌려 맞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이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김밥을 집어 입에 넣어주는 엄마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
오십여 년 전 그 시절이 그리웠다.
이제는 세상이 조금은 덜 빨리 변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매헌초등학교 운동회 전경
아버지회 자원봉사자로 참여해서는 수레경기에서 엄마와 아빠가 참석하지
못한 여학생의 수레를 대신 밀어주는 원준이 아빠
경기를 기다리는 원준이의 2학년 1반
마지막 스퍼트를 다하는 정원준
멋진 폼으로 장애물을 통과하는 정원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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