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10. 화요일
몸이 가볍다. 날아갈 듯 가벼웠다.
평소보다 3시간이나 더 잤으니 이번 도보여행 중 잠을 가장 많이 잤던 지난밤.
욕조보다 더 좋은 피로 회복제는 잠이었다. 그래서 집사람이 PC를 달가워하지 않았나 보다.
모텔을 떠나 조금 걷다 보니 여기저기 모텔이 여럿 보였다. 대부분이 내가 잤던 모텔보다 시설이 훨씬 좋아 보였다.
'저 정도의 시설이라면 욕조도 있고 PC도 있을 텐데…'
'조금만 더 걸을 걸…'
어젯밤 조금만이라도 더 걷지 않고 주저앉았던 게 조금은 후회되었다.
하지만 금방
'그래, 잘 잤잖아, '
마음을 고쳐먹자 마음이 편했다.
마음도 가볍다. 오늘은 35km만 걸어도 되는 데다 이제 사흘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가벼웠다.
새벽하늘이 아름다웠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새벽이라 더 아름다운 것 같았다.
찌그러진 곳 하나 없이 새빨간 모습으로 떠오르는 해님이 고마웠다.
동해안의 가을 새벽을 만끽하며 걸었다.
길가에 가지런히 핀 코스모스는 오늘따라 더 아름다웠다.
도로변 잔디밭에 세워진 두 마리의 베짱이 모형.
한 마리는 악기를 켜고 또 한 마리는 악기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필시 가을을 노래하는 모습이리라…
어릴 때 읽었던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가 떠올랐다.
부지런히 일하면서 추운 겨울에 대비해 양식까지 비축하는 개미와 여름철 내내 노래만 하며 노는 베짱이.
그러나 겨울이 오자 베짱이는 굶주림에 시달리다 개미에게 음식을 구걸하지만 개미는 베짱이의 게으름을 비난하는…
그런데 요즘의 내 삶이 흡사 베짱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을 정년퇴직한 후엔 손주들을 돌보면서 하고 싶은 거나 하는 지금의 내 삶이 베짱이 삶과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오전 내내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오후에는 동호회에 나가 색소폰을 연습하고,
시간이 나면 수필을 쓰네, 詩를 쓰네 하면서 긁적거리기 일쑤고,
금요일이면 연필 풍경화 그린답시고 집사람과 가방 챙겨 나가는 지금의 내 생활이 베짱이 같아 쑥스러웠다.
하지만 곧 40여 년 동안 개미처럼 열심히 일했으니 이젠 하고 싶은 것이나 하면서 인생을 즐길 자격이 있다 싶었다.
부지런히 걸어 울산 정자해변에 도착하자 어제 통화했던 고향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먹을 곳을 찾아보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헛수고가 되어 할 수 없이 편의점으로…
컵라면을 누가 인스턴트식품이라 하겠는가?
친구와 고향 소식, 친구들의 근황 등을 나누며 먹는 컵라면은 얼마나 맛있던지 진수성찬의 밥상 못지않았다.
리듬이 깨질까 봐 서두르는 나를 보내며 친구는 걷다 목마를 때 마시라면서 내게 양파즙, 대추즙을 보따리째 건네주고 …
이제 울산 시내를 향하여 Go∼
울산시내를 향하는 내 앞을 무룡산이란 높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무룡산을 넘어야 한다.
어림잡아 10km, 서너 시간은 걸어야 하는 산길.
산에 오르는 차도 옆으로 황금벌판 사이의 쭉 뻗은 농로가 보였다.
가을을 더 느끼고 싶어 농로를 걸었다 양쪽 황금벌판에서 풍겨오는 가을 냄새를 내 가슴에 차곡차곡 담았다.
한참을 걷는데 길 옆의 풀밭에서 뭔가가 쑤욱∼,
뱀이었다. 제법 굵은 구렁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여지없이 스틱을 휘둘러 때려잡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뱀이라 징그럽기보다 오히려 반가웠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판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데도 폴짝폴짝 뛰는 메뚜기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개구리도 없었다.
속초에서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개구리와 메뚜기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3년 전 서울을 출발해 고향 청도에 가면서 3번 국도변을 걸을 때는 여기저기서 개구리가 논으로 폴짝폴짝 뛰어드는 모습과 메뚜기들이 짝짓기 하는 모습을 엄청 많이 보았는데, 우렁이들이 많았던 논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뱀만 한 마리 보았을 뿐 개구리, 메뚜기와 우렁이는 한 마리도 못 봤으니…
'이곳도 농약을 많이 치진 않을 텐데 왜 없을까?'
참 이상하다 싶었다.
무룡산을 가로지르는 산길에 접어들었다.
'세월이 좀 먹나.' 하는 심정으로 온 사방을 살피며 느릿느릿 걸었다.
패잔병처럼 양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스틱을 질질 끌면서 시나브로 걸었다.
홍시가 빨갛게 익어가 듯 내 온몸도 가을햇살에 빨갛게 익는 것 같았다.
가을햇살이 내 마음도 잘 익게 해주길 바라면서 걸었다.
무룡산 산길.
마라톤에 한창 재미를 붙였던 10년 전,
우리은행 울산지점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그때 나는 이 길을 몇 번 달린 적이 있었다. 생수 한 통이랑 만 원짜리 몇 장만 넣은 쌕을 허리에 두르고는 마라톤 팬티바람으로 무룡산을 넘어 정자해변까지 달려가 물회 한 그릇을 먹고는 또 달려 주전해변에서 파도와 몽돌이 만들어 내는 합창을 들으며 낮잠을 즐기곤 했었다. 그러다 다시 일어나 남목을 거쳐 사택으로 돌아갔으니 반나절에 100리를 달리곤 했던 셈이다. 그런데 요즘은 하루 종일 100리 걷는 것도 쉽지 않으니…
참 그때는 이 길에도 쌩쌩 달리는 차들이 엄청 많았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모든 차들은 이웃하여 새로 뚫린 31번 자동차 전용도로로 가 버리고 내가 걷는 옛길에는 차량이 거의 없으니 車道라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어디 도로만 그리하랴.
인생도 젊은 날에는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야 되는 사람, 만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때때로 귀찮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친구들도, 이웃들도 하나씩 하나씩 떠나버려 절로 외로워진다고 하니 어찌하랴.
이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을….
마침내 내가 들리고자 했던 곳에 도착했다.
우리은행 울산지점.
2005년부터 2007까지 2년 6개월 간 지점장으로 근무했던 곳이다.
울산지점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나는 무척 힘들어했었다.
'1999년 지점장으로 승진하면서 대구에서 근무했었는데 또 지방근무라니…'
든든한 배경이 없는 처지를 원망하며 애꿎은 집사람에게 성질부리며 화풀이를 했었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부임했던 곳이 울산이었다.
게다가 한일은행 시절에는 한강 이남에서는 최대 점포 중의 하나였던 울산지점이지만 내가 부임했을 때는 쇠락 중에 있었다. 서울을 비롯해 대부분의 도시들이 그러하듯 울산도 태화강 남쪽의 삼산동 주변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로 울산의 모든 富와 모든 상권이 강남 삼산동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구도심이었던 옥교동 시계탑 사거리의 울산지점 주변 상가는 텅텅 비어 空洞化되고 있을 때였으니…
하지만 내게 40여 년의 은행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묻는다면 나는 울산지점이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내 집사람에게 가장 좋아하는 도시를 묻는다면 집사람은 거침없이 울산이라 답할 것이다.
옛 영광을 되찾아 보자며 직원들과 의기투합했던 추억.
새로운 거래처 유치를 위해 울산의 모든 공단은 말할 것도 없고, 경주 외동지역의 공단까지 샅샅이 누볐던 열정.
구도심의 쇠락이란 큰 어려움을 이겨내고 업적평가에서 그룹 1위를 해 여러 직원이 큰 상을 받고 좋아하던 모습. 또 全 직원들이 성과급을 두둑이 받고 기뻐하던 추억. 나 또한 포상으로 집사람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어깨 으쓱했던 추억. 서울이나 고향에 가지 않는 휴일이면 김밥 한 줄 넣은 배낭을 메고 올랐던 영남알프스 가지산의 추억, 머리 복잡한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서 듣곤 했던 주전해변의 파도와 몽돌이 만든 화음. 주말 부부로 살면서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내가 서울로 올라갔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집사람이 내려와 며칠씩 사택에 같이 있으면서 해운대, 통도사를 비롯해 경주 주변의 사찰에서 울진 덕구온천까지 안 가본 곳이 없을 만큼 곳곳을 여행 다니면서 부부의 정을 도탑게 했던 행복.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고향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뵙고 그동안의 불효를 조금씩이나마 만회할 수 있었으니…
어디 이것뿐이랴.
겨울이면 집사람이 찜질방에 온 것 같다며 좋아할 만큼 펄펄 끓었던 사택 생활.
무릎이 편찮으셨던 어머니를 이곳으로 모셔와 수술하시고, 아버지께서 갑작스러운 패혈증으로 입원하셨던 곳도 울산.
부모님과 대구 누이들의 가족들을 불러 바닷가와 사택에서 보냈던 즐거운 시간의 행복.
서울에 사는 고향친구 부부들을 초대해 가지산에 오르고 대왕암 등 바닷가를 관광하면서 싱싱한 회를 먹었던 추억.
내 딸들이 내려올 때면 맛있게 먹었던 봉계 쇠고기 등, 등, 등,…
하나하나 꼽자니 끝없이 나온다.
울산지점에 잠시 들렀다가 울산 시내를 관통하며 걸었다.
울산 시내를 걸으면서 나의 울산 생활을 살찌웠던 고마운 분들의 얼굴을 떠올랐다.
2년 반 동안 아침, 저녁을 맛나게 챙겨주셨던 사택 아주머니.
나를 음치에서 구해 주겠다며 팔을 걷고 나서셨던 노래교실 선생님.
그리고 나를 유난히 아껴주시던 □□석유 박 회장님,
은행 실적뿐 아니라, 혼자 있어 외롭겠다며 수시로 불러내 맛난 회를 사주시던 고교 대선배 ○○메탈 회장님 등등…
정든 객지를 떠날 때 사람들은 울면서 왔다가 웃으며 떠난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내게 울산은,
내게 울산은 오기 싫어 울면서 왔다가 가기 싫어 울면서 떠난 도시였다.
오늘 숙박지로 예정한 두왕사거리로 가는 길.
그곳까지는 아직 5km나 남았는데, 울산시청 부근을 지날 때 번쩍번쩍하는 모텔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른 핸드폰을 꺼내 두왕사거리 부근의 모텔을 검색했더니 '모텔'이 아닌 '장여관', 그것도 딱 2개뿐이었다.
이웃에 있는 마트에 들어가 두왕사거리 부근에 모텔이 있느냐고 묻자 직원은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잘은 모르지만 공단 입구라 없을 걸요."
'그래,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5km 더 걷자.' 마음먹으며 삐까번쩍한 모텔 안으로…
국도변의 베짱이 모형
고향친구와 한컷
울산 생활 중 살았던 우리은행 사택
태화강변
오늘의 도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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