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4. 수요일
추석날이다.
밤새 잘 마른 셔츠와 우의를 접어 배낭에 넣는 등 떠날 준비를 마쳤다.
탁자 위에 비스킷 두 개와 커피 한 잔을 올려놓고는 고향 淸道가 있는 서남 쪽을 향해 절을 두 번 올린 후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 어제까지만 비가 온다기에 오늘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또 비라니…
하루 앞 날의 예보조차 제대로 못 맞추는 기상청을 원망하면서 배낭을 다시 열어 우의를 꺼내 입고는 모텔을 나섰다.
시설 좋은 모텔에서 푹 잘 자서 그런지 날씨와는 달리 기분이 상쾌했다.
10여 분을 걸어 해안도로에 다다르자 해안가에 있는 정자 뒤쪽의 먼바다 수평선 너머로 빨간빛이 빤짝거린다 싶더니 찬란한 태양이 솟기 시작했다. 쑥쑥 솟았다. 동해안에서 일출을 여러 차례나 보았지만 붉은 해님은 늘 수평선에 깔린 구름 위로 솟아올랐는데, 구름의 방해 없이 수평선에서 바로 하늘로 솟는 찬란한 일출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어떤 글이나 말로 형언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온전한 모습을 보이자마자 해님은 금방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지만, 나는 문득 세상 아이들의 태어나는 모습이 바로 일출의 모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일출의 광경을 보고 자전거도로를 따라 어떤 공원에 들어서면서 서쪽 하늘을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오, 마이 갓!
몇 년만인가?
공원에 세워져 있는 '한국표준형 원전 준공기념'이란 탑 위로 무지개가 떴다.
정말 멋진 추석 아침이었다.
새벽에 비가 내린 것은 내게 이처럼 멋진 선물을 주고 위해서였나 보다.
이런 줄도 모르고 기상청을 원망했으니…
일출과 무지개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자 가족과 친구들은 멋진 사진이라며, 행운의 징조라며 좋아했다.
비는 오락가락하고…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리며 길을 걸었다.
3년 전, 은행 정년퇴임과 회갑을 자축(自祝)하는 뜻으로 열흘 동안 걸었던 첫 도보여행 때가 생각났다.
정년퇴임 다음날인 2014.10. 1. 서울을 출발해 고향인 淸道郡 梅田面 溫幕里까지 걸었던 열흘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오후 6시만 되면 내 핸드폰이 울렸는데, 폰을 귀에 갖다 대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지.
"어디까지 왔노? 저녁은 맛있는 걸로 무우래이. 내일은 무리하지 말고…"
그런데 이번 도보여행에서는 집사람이 2015년 3월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하고 있다.
새벽에 전화를 해서는 피로가 좀 풀렸는지 묻고 무사 귀가를 기도하지만, 오후 6시에는 어머니와 똑같은 말을 한다.
"어디까지 가셨어요? 힘드셨죠? 잘 드세요. 여기 걱정은 마시고…"
아∼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저께 꿈에 현몽하셨는데…
2011년 크리스마스날 하늘나라 가신 아버지도 보고 싶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시면서 "3년만 아이들 옆에 더 있다 따라갈게요." 하시곤 그 약속을 지키시는 듯 삼 년 두 달 뒤에 정말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는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나 잘 계시리라 확신하지만 한 번씩 보고플 땐 눈가가 축축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추석이라 그런지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길가에 떨어진 밤송이를 벌려 꺼낸 밤을 까먹으면서 산길을 넘자 아담한 마을이 보였다.
여남은 집이 될까 말까 한 작은 마을이었는데 집집마다 지붕 위로 솟은 굴뚝에서 모락모락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마도 추석 차례상에 올릴 밥을 짓는 모양이었다. 지난봄에 씨를 뿌려 이번 가을에 추수한 햅쌀로…
'추석에 대한 추억은 나도 엄청 많은데…'
조상 잘 모시는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많은 행복이 깃들길 기원하면서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자 오른발의 복숭아뼈 조금 앞부분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기분이 나빴다.
첫날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곳이다. 그런데 둘째 날부터 시큰거려 파스를 뿌리고 붙이고 있지만, 잠시 괜찮을 뿐 한참 동안 걸으면 또다시 시큰거리니 걷기에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왜 그럴까? 이상하다 싶어 걷는 발 모양을 바꾸면서 걸었다. 11자의 발을 八자로 양 발 앞부분을 좁혀서 걸어 보고, 역 八자 모형이 되게 양 발 앞 부붐을 벌려서 걸어 보지만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오른발의 안쪽을 세워 걸어 보아도 그대로였다. 마지막으로 바깥쪽을 세우고 걷자 시큰거림이 덜 했다.
아,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거의 모든 포장도로는 빗물이 쉽게 흘러내릴 수 있도록 가운데를 조금 높고 만드는 반면 양 사이드는 낮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차도의 갓길을 걸을 땐 주로 오른쪽 보행이 아닌 왼쪽 보행을 하면서 달려오는 차를 마주 보며 걷는다. 그러니 내 오른발은 자연히 엄지발가락이 있는 안쪽이 낮고 새끼발가락이 있는 바깥쪽이 높아 약간은 꺾이게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하루 백 리씩 걷는 동안 오른발에 무리가 가고 이런 무리가 쌓였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당장 길을 건너 차를 등지고 오른쪽 보행을 했다. 발이 한결 편했다.
이렇게 사소한 차이에 탈이 나다니…
몇 만 분의 일을 따지며 작동하는 오묘함은 초정밀 기계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의 몸도 이처럼 오묘할 줄이야…
아침을 먹지 못했는데 걸어도 걸어도 문을 연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하긴 추석날인데, 이런 시골에서 어떤 사람이 식당을 찾는다고 아침부터 문을 열까 싶었다.
아침 먹기를 포기한 채 죽변항을 향하면서 죽변마을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모네'란 간판에 불이 켜진 식당에서 한 남자가 이빨을 쑤시면서 나오고 있지 않는가.
눈이 번쩍 떠졌다.
식당에 들어서면서 오늘도 장사하느냐고 물었더니 문을 열었단다.
여러 메뉴가 있었지만 국물이 그리워 쇠머리국밥을 시켰다.
쇠머리국밥이 무척 맛있었다.
경기도 곤지암에서 몇 번인가 먹었던 유명 소머리국밥집의 국밥보다 더 맛있었다.
국물 한 방울도 아까워하며 먹고 있는데 앞 테이블의 손님들이 식사하면서 주인에게 인사를 했다.
자기들은 원주에서 동해안으로 바다구경을 온 5형제 부부인데 아침 먹을 곳이 없어 걱정했었다며, 이렇게 추석날 문을 열어 고맙다고, 음식을 맛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을 하자 식당 주인은 자신들은 서울에서 살다가 2년 전에 내려와서는 식당을 차렸단다. 아내는 주방일을 하고 자신은 서빙으로 아내를 돕고 있단다.
식사를 마치고는 계산을 하면서 내가 말했다.
"저는 서울 양재동에 살면서 며칠 전부터 도보여행하고 있는데, 소머리국밥이 참 맛있네요."
그러자 주인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 저도 여기 내려오기 전에 서초구청 부근에서 살았어요. 참, 그때 내 집사람은 양재동 꽃시장 건너편 뼈다귀해장국집 주방에서 일했었는데…"
"AT센터 건너편에 있는 양재해장국 말이죠? 우리 식구들이 자주 가는 집인데…"
"네 맞아요, 맞아. 양재해장국"
그러고는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이 손님 양재동에서 오셨대. 양재해장국이 많이 갔대."
잠시 후 아주머니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주방을 나왔다.
한때 양재해장국에 길들여졌던 입맛이라 오늘 소머리국방이 그렇게 맛있었나?
내 입맛에 참 잘 맞았던 양재해장국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맛이 좀 시원찮아졌다 싶었는데, 이 아주머니가 떠났기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
오늘은 종일 해파랑길 해안도로만 걸었다.
드넓고 푸른 바다뿐 아니라 옥계서원 유허비, 망양정, 천연기념물 제158호로 500년 넘은 후정리 등 선조들의 발자취도 보면서 걸었는데 날씨는 죽 끓듯이 변덕스러웠다. 비가 오다 그치고 또 오다 그치고… 햇볕이 쨍쨍 나서 우의를 집어넣고 얼굴에 선크림을 바른 뒤 한참 걷다 보면 또 비가 내리고… 우의를 꺼냈다 넣었다 한 게 몇 번이었든지 셀 수 없을 만큼 변덕스러웠다.
마침내 망양휴게소를 지나 오늘의 목적지가 4km여밖에 남지 않았을 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집사람이었다.
"지금 은규네랑 당신한테 가고 있어요. 점심 먹고 바로 출발했는데 차가 엄청 막히네요. 어디로 갈까요?"
깜짝 놀랐지만 그 이상으로 기뻤다.
하지만 내 대답은 이랬으니…
"말라꼬 내려오노, 방해되게…, 기성 망양해수욕장에 있는 삼성모텔로 와요. 방 2개 잡아 놓을 게."
"네, 먼저 들어가셔서 블로그 쓰시거나 쉬고 계세요. 우린 차가 막혀 9시는 돼야 도착할 것 같네요."
부지런히 걸어 어제저녁에 알아두었던 삼성모텔을 찾아갔다.
외관상 보기에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모텔이었다.
저녁 먹을 곳도 주위에 전혀 없었다.
'나 혼자 하룻밤 자는 거야 아무러면 어떨까만 집사람이랑 은규 가족들까지 다 오는데…'
그렇지만 주변에는 모텔이 없단다. 4km쯤 떨어진 기성면 소재지에 알아보아도 모텔은 있지만 마땅한 곳은 없었다.
이곳저곳을 알아보았더니 깨끗한 모텔은 후포항까지 가야 한다는 결론.
남쪽으로 무려 19km 떨어져 있어 내일 지나가는 곳인데…
하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다.
결국 후포항에서 시설 좋고 깨끗하기로 소문난 모텔을 알아내 전화를 했다.
그런데 모텔 사장이 예약은 안 된다면서 방이 몇 개 안 남았다고 빨리 오란다.
19km를 걸으려면 적어도 4시간 30분은 걸리는데…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114에 문의해서 알아낸 기성면의 콜택시 전화번호로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질 않는다.
삼성모텔 앞에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트럭이 내 앞으로 와서 섰다. 트럭기사는 하룻밤 쉴 모텔을 찾는다며 내게 삼성모텔이 어떻냐고 물었다. 내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그럼 같이 후포항으로 가자며 조수석에 타라고 했다.
집사람에게 달라진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같이 오고 있는 은규 엄마가 날더러 후포항의 '편지'란 모텔이름을 알려주며 그곳으로 가란다. 서울에서 미리 알아보았더니 후포항에서 제일 좋은 모텔이란다.
그럼 지금 내가 찾아가는 그 무인텔이 아닌가.
나는 후포항에서 내리고 트럭 기사는 다른 모텔을 찾아 떠났다.
인터넷 길 찾기를 해보자 내가 찾아가는 무인텔 '편지'는 후포항에서 3.5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 후포항에도 택시가 없었다. 이곳에서도 콜택시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결국은 걸어야 했다.
걸어 걸어 모텔에 도착하자 8시가 다 되었다.
점심에 저녁까지 못 먹었으니 배는 고프고,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하지만 10시가 다 되어 도착한 은규의 목소리를 듣고 집사람의 활짝 웃는 웃음을 보는 순간 오늘의 피로는 눈이 녹듯 싹∼
은규 엄마와 은규 아빠가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과 컵밥, 컵떡볶이로 오늘의 배고픔도 싹∼
내일 새벽에는 원준이와 세은이도 도착한단다.
내일 점심 때는 자전거로 이곳을 지나는 친구도 내게 오겠단다.
오늘 공식기록은
도보시간은 11시간 52분,
도보거리는 37.71km다.
하지만
여기다 후포항에서 걸었던 50분과 3.5km를 보태면
12시간 42분 동안 41.21km를 걸었던 셈.
예고 없이 찾아 온 가족들 때문에 톱니바퀴 돌아가듯 돌아가던 리듬이 깨지게 되었다.
그리고 도보여행의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가족이 있어 나는 더 행복하다.
내일 하루는 도보여행을 중단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일정을 어떻게 조정할지 고민해야겠다.
첫째, 10월 5일의 6일 차 일정은 고래불 인증센터까지의 도보지만 어차피 어제 이곳까지 19km를 차량으로 이동했으니 6일 차 일정을 몽땅 건너뛴 다음 10월 6일 고래불 인증센터에서 7일 차 도보를 시작할지. 둘째는 7일 차 도보를 기성망양해변으로 돌아가 시작하되 10월 12일 끝날 예정인 이번 도보여행의 전체일정을 하루 연장해 10월 13일로 할 건지, 아니면 7일 차 도보를 기성망양해변으로 돌아가서 시작하되 마지막 일정을 10월 12일 기장군청까지만 할 건지 고민해야겠다.
무엇보다 내일은 만사를 제쳐두고 싱싱한 회를 먹고, 전망 좋은 바닷가를 찾아 손주들과 사랑을 진탕 나누어야겠다.
내 삶의 전부이자 이유이기도 한 가족들과 함께.
기성망양정해수욕장까지의 오늘 도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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