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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여행, 등산...

동해안을 걷다 (3)- 인생을 생각하다.

2017. 10. 2. 월요일

몸이 가뿐했다.

발가락의 물집은 다 나은 듯하고, 컨디션도 어제보다 훨씬 좋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신 한 캔의 맥주 덕일까? 

딸네집에 온 기분으로 푹 자서 그럴까? 

아니면 세 손주들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그놈들이 보내준 응원 덕분일까?

아마도 이 세 가지 모두가 내 氣를 북돋운 모양이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기에 날씨가 염려되어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가 보았다. 

예보되었던 대로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장맛비나 태풍 때처럼 요란스럽게 않고 부끄럼 많은 새색시의 몸짓처럼 곱게 곱게 내리고 있었다.

이 정도의 비라면 걷기에 괜찮겠다 싶었다. 

몇 해 전에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판초우의를 입고 모자에 헤드랜턴을 씌워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러고는 10년 넘게 운동하면서 신었던, 이번 도보여행에서 비가 올 때 한 번만 더 신고 버릴 작정으로 가져온 낡은 운동화를 신고 모텔을 나섰다. 

정동진에서 산 하나를 넘는 동안 가을꽃이 아름다운 강원도의 시골 정취에 빠져 걷기도 했지만, 심곡항에서부터는 다시 해변로를 걸었다. 그런데 심곡항에서 들어선 해변로의 이름은 헌화로(獻花路)라 불리고 있었는데, 너울성 파고가 심한 날에는 폐쇄되어 통행이 금지될 만큼 바다에 바짝 붙어 있어 경관이 무척 좋았다.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명품도로였다.

파도소리를 듣고 바다 내음을 맡으며 걷자니 참 좋았다. 

거센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가 철썩철썩 굉음처럼 들려왔다. 내가 이번 도보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몇몇 친구는 문명의 이기인 차를 두고 몇 날 며칠씩 걷는 건 미친 짓이라며 말리곤 했었는데…, 온몸으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마주치고, 파도와 자갈이 함께 만드는 천상의 화음을 듣고,  또 세찬 파도가 해변으로 밀어내는 각종 해초에서 풍겨오는 상큼한 바다냄새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다면 그런 소리를 또 할까 싶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먼바다에서 큰 파도가 밀려오자 바위가 온몸으로 막는다.

바위에 세차게 부딪친 파도는 울부짖으며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바위를 때린 파도가 아플까? 파도를 맞은 바위가 아플까? 

큰 바위가 파도에 조각나고 닳고 닳아서 되었을 바닷가 몽돌은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온몸을 굴리면서 짜르르짜르르 소리 내어 반응을 하고, 몽돌이 파도에 쪼개지고 깎여서 되었을 해변의 모래는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를 아무 소리 없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 부부의 인생도 이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들도 파도와 바위처럼 젊은 날엔 결국은 자기의 아픔이 되는 줄 모르고 사소한 일에 목숨을 내걸고 서로를 할퀴지만, 중년이 되어서는 파도와 몽돌처럼 서로 조금씩 화음을 맞추면서 갈등이 잦아들다가 황혼의 노년엔 파도와 모래가 그러하듯 모든 걸 이해하면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았다.  

 

걷고 또 걸어 망상해수욕장으로…

그곳엔 망상해수욕장역이란 아주 앙증맞은 간이역이 있었다. 

간이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망상역이 있으니 이 역은 여름 한철에만 운영하는 듯 잠겨 있었는데 몇 사람만 들어서도 역사가 꽉 찰 것처럼, 소꿉놀이처럼 아주 자그마했지만 해수욕장은 엄청 넓은 게 시원하게 느껴졌다.

망상해수욕장을 벗어나 걸을 때였다.

바다 가운데 솟아있는 바위들.

이들 바위 위에는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앉아 있었다.

갈매기들도 오늘은 임시공휴일일까?

그런데 앉은 모습이 참 이채로웠는데, 하나같이 북쪽을 향해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이놈들의 고향이 북쪽에 있을까?

추석을 앞두고 고향에 있는 부모를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묵호항, 동해항을 거쳐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인 삼척항에 도착했다.

아침부처 내리던 비는 종일 오락가락하면서 내렸지만 내 도보여행에 어려움은 거의 주지 않았던 셈이다.

 

삼척항의 온 거리에는 대게 찌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가게마다 입구에 커다란 솥을 걸어 놓고 대개를 찌고 있었다.

맛난 냄새를 풀풀 풍기는 큼직한 대게가 무척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군침이 돌았다.

'우리 원준, 은규, 세은이도 엄청 좋아할 텐데…'

가게에 들어가 대게의 가격과 서울로의 배달을 문의했더니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국내산 대게는 겨울에 잡히기 때문에 지금 나오는 대게는 모두가 수입산이란다. 하지만 최하 등급의 가격은 kg당 5만 원이나 한단다. 지금 주문하면 낼모레가 추석이라 택배가 안 된다며 추석 후에 주문하라면서 내 손에 명함을 쥐어 주었다.

오늘 도보시간은 11시간 55분

도보거리는 41.74km.

그런데 삼척항 부근에는 숙박할 곳이 없었다.

인근에 파라다리스란 모텔이 하나 있었으나 얼마 전에 문을 닫았단다.

편의점에 들러 숙박할 만한 곳을 여쭈자 제일 가까운 숙박처라야 시내에 있는 모텔이란다.

시내에 가자면 온 길을 3km나 되돌아가야 하는데…  

손주들과의 영상통화 시간.

셋 놈 모두가 맛있는 거 먹는다고 우리 집에 모였다면서 한껏 귀여운 모습을 다 보이고…

원준이는 오늘 할머니랑 잔단다.

할아버지 안 계신다고 원준이가 할머니를 챙기다니…

장한 정원준, 정말 많이 컸다.

그런데 동해안에는 내일 또 비가 온단다.

이번 금요일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도 있다.

3년 전 고향 가는 첫 도보여행 때는 걸었던 열흘 내내 빗물 한 방울 안 맞았었는데…

왜, 그럴까? 10년 동안이나 정들었던 운동화, 아니 10년 동안 온몸을 다 바쳐 내게 봉사한 운동화, 이런 운동화를 비 올 때 한 번만 더 쓰고 버리겠다는 내 마음이 들통난 걸까? 그래서 하늘의 노여움울 산 걸까?

하지만 오늘처럼 부끄럼 많은 새색시 몸짓처럼 곱게곱게 왔으면 좋겠다.

내 집사람 걱정 덜 하게… 

 

 

 

 

 

 

 

여기가 헌화로

 

 

 

 

 

 

 

 

 

 

 

 

 

 

 

 

 

 

 

 

 

 

 

 

 

 

 

 

 

하나 같이 북쪽을 향해 앉은 갈매기들

 

 

 

파도에 밀려 나온 해초들은 상큼한 바다냄새를 실어 나르고…

 

 

 

 

 

 

 


여기는 남대문(숭례문)의 정동방이란다,

구태여 이렇게 곳곳의 정동방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좀 있으면 이곳보다 조금 남쪽 해안에서는 "이곳이 행정수도 세종시의 정동진이다." 할까 두렵다. 

 

 

묵호항 옆에 있는 우리은행

 

 

 

 

 

 

 

 

 

드디어 삼척항

 

오늘의 도보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