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憧憬)
이 석 도
나는 어려서부터 대구를 동경하면서 자랐다.
대구가 우리나라 최고의 도시인 줄 알았고, 능금을 많이 먹어 예쁜 대구 여자들은 화장실에도 가지 않는 줄 알았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한때 돈벌이를 위해 대구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그때 나와 누나는 할머니 곁에 남겨두고, 어린 동생들과 초등학생인 형은 데려갔다.
네댓 살의 어린 내가 엄마랑 아빠와 떨어지는 걸 얼마나 두려워했을까?
엄마랑 아빠가 사는 대구에 얼마나 가고 싶어 하면서 자랐을까?
밤마다 대구에 가고 싶어 베갯잇을 적시며 잠들곤 했던 것 같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대구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내 꿈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고모 집이 있는 부산으로 보내 학교를 다니도록 했다.
어린 시절의 꿈이 좌절되어서일까?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대구에서 살아보고 싶어 했다. 은행에 입사했을 때는 인사부에서 근무 희망 지점을 조사할 때마다 ‘대구지점’이라고 적어서 냈다. 그런데도 서울에 있는 본점으로 발령이 났으니….
군에서 제대한 후 복직을 할 때도 대구지역에서 근무하기를 원했으나 서울의 지점으로 발령이 났을 뿐 아니라, 해마다 대구 근무를 희망했지만 허사였다.
내가 원하면 원할수록 대구는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대구에서 사는 게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살고 싶어졌다.
천신만고 끝에 대구에서 살아보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내가 모셨던 지점장이 본점의 주요 부서장이 되었을 때, 그 분께 부탁했던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까지 데리고 한없이 동경했던 대구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대구에 대한 나의 동경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대구는 내가 살았던 서울만큼 화려하지 않았고 깨끗하지도 않았다. 대구 여자들 모두가 아름다운 줄 알았던 것은 환상이었고, 대구 사람 모두가 친절한 줄 알았던 것도 착각이었다.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보수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였다. 내가 왜 대구를 그토록 동경했나 싶었다. 이사 온 지 채 두 해도 되지 않아 ‘다시는 이곳에서 근무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대구를 떠났다.
그러나,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이…’
지점장으로 승진하면서, 과거의 근무 경력 때문에 또 대구에 있는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은행 생활 중 지점장 승진이 가장 기쁘다던데…, 내겐 기쁨만은 아니었다. 기쁨 못지않은 답답함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나 이때는 15년 전 처음 이사 와서 살 때보다는 모든 면에서 훨씬 수월했다. 그간 대구에 많은 변화도 있었지만, 내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지난달, 정년퇴임과 회갑을 자축하는 『걸어서 고향까지』의 도보여행을 하면서 다시 대구를 찾았을 때, 이곳을 동경했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을 읽을 때는 ‘첫 사랑은 만나지 말고, 가슴 속에만 담아 두는 게 좋구나.’ 느꼈었는데…, 이제 대구를 걸을 때면 동경(憧憬)이 첫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늦게서야 깨닫곤 한다. 대구에서 살려고 애썼던 지난날이 씁쓸하기만 하다.(201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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