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방

[수필] 필사즉생

필사즉생(必死則生)

이 석 도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 등 476명을 태우고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304명이나 사망 또는 실종된 엄청난 해난사고다. 대참사였다. 선장을 포함한 여러 선원들이 사고 직후 선박을 탈출했다는 뉴스와, 구조된 후 병원에서 보인 선장의 언행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죽기를 각오하면 살 수 있지만, 살아날 궁리를 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명량대첩에서 고작 12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몸으로 덮어 중대원을 구하고 산화한 강재구 소령으로부터 ‘살신성인’ 정신을 배웠다. 2011년에는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당한 삼호주얼리호의 선장이 총에 맞아 중상을 입으면서까지 선원 구출 작전을 도와 ‘아덴만의 영웅’이 되는 모습은 온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렇게 대의(大義)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타인을 위해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삶을 살면, 비록 육신은 사라질지라도 그 정신과 이름은 후손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도 필사즉생’과 ‘살신성인 정신’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선원의 책임과 의무도 교육받았을 것이다. 그들이 끝까지 남아 구명정을 내리고 승객들의 탈출을 진두지휘했더라면, 승객들에게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 대신 배에서 탈출하라는 방송만 했더라도 배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많은 승객들이 구조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가장 먼저 탈출해 자신들의 목숨부터 구했다. ‘필사즉생’ 대신 ‘필생즉사’의 삶을 택했다.

   이게 사는 길일까?

   그들의 가족들은 이렇게 살아서 돌아온 그들을 반길까?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를 돌아보면, 가족들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1993년 10월, 부안 위도에서 훼리호가 침몰해 사망자가 292명이나 되는 큰 사고였는데, 훼리호 선장의 행방이 묘연해 사고 직후 탈출 도주했다는 설이 난무했다.  그러나 사고 8일 만에 훼리호의 선체가 인양되었을 때, 선장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마지막까지 승객 구조작업에 힘쓰다 숨진 정황이 드러났다.

   생존설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선장이 훼리호와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은 사실이 확인 된 것이다.

   남편의 탈출 도주설로 가슴앓이를 했던 훼리호 선장의 부인은 남편의 시신을 보고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죽어서 나온 남편이 그렇게 대견해 보일 수가 없었다."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의 가족들도 그들의 남편, 그들의 아빠가 끝까지 배에 남아 승객들의 탈출을 도와주길 바라지 않았을까? 비굴한 삶보다는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승객을 구조한 훌륭한 가장(家長)이었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

   세월호 사고를 뉴스로 볼 때마다, 나는 죽음보다 못한 삶을 선택한 선장과 선원들을 어리석다 비난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절체절명의 궁지에 처해진다면, 나는 어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며 “승무원들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 너희들을 다 구하고 나도 따라갈게.”하며 배와 운명을 같이한 나이 어린 여승무원, 탈출을 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마다하고 학생 구조에 자신을 던진 선생님 등 ‘세월호 영웅들’의 뉴스를 보면서 나는 내가 본받아야 할 삶의 모델을 찾았다. (2014.5.27.}

 

'수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필] 곰탕 한 그릇  (0) 2015.03.18
[수필] 두릅나무  (0) 2015.03.04
[수필] 부조금  (0) 2015.02.26
[수필] 돌과의 대화  (0) 2015.02.26
[수필] 재미난 오해  (0) 2015.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