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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여행, 등산...

만보기와의 재회

2014. 9. 21.일요일

고향가는 도보여행 준비로,

어제 토요일은 양재천과 탄천으로 성남까지 왕복을 했으니

오늘은 남한산성을 다녀오리라 작정하고 집을 나섰다.

내곡동과 복정역을 거쳐 남한산성 입구인 산성역이 저 멀리 보일 때

대로변 옆의 산에 오솔길이 보였다.

많은 사람이 다닌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샛길처럼 보였다.

산성으로 오르는 샛길이려니 생각하고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니 어떤 산소가 나오고 더이상 길은 없었다.

할 수 없이 돌아서 나오는데…,모자 위로 뭔가가 떨어졌다.

발밑을 보니 밤알이 다 보이도록 쩍 벌어진 밤송이였다.

위를 쳐다보니 커다란 밤나무에 쩍쩍 밤송이가 달려있고,

나무 아래에도 밤알이 담긴 채 쩍쩍 밤송이와 밤들이 떨어져 있었다.

옆에서 주운 나무막대기를 밤나무로 던지자 밤송이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밤알이 들어 쩍 벌어진 밤송이는 발로 살짝 문대기만 해도 밤알이 쑥 나왔다.

밤알은 마트에서 파는 밤알보다 훨씬 작지만, 맛이 좋은 걸 보니 토종인 것 같았다.

한참 밤나무를 털어 밤알을 줍고 밤송이를 까고 했더니,

이내 우리 식구들이 한두 번은 삶아 먹을 수 있을만큼 많았다. 

하지만 산모기는 얼마나 많고 극성이던지…,

내 팔다리는 어디 한곳 성한데가 없었다.

다시 큰길로 나와 산성역 옆에서 등산객들이 보이는 제대로 된 등산로를 따라 산에 올랐다.

한참을 걷다가 시계를 보았더니 집을 나선지 3시간이 지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무픞보호대에 꽂은 만보기를 보았다.

이런! 만보기가 없다.

도보여행에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은행본점에 있는 소비조합까지 가서

일만오천냥이나 주고 산 만보기인데….

아무래도 쪼그리고 앉아 밤을 줍고 밤송이를 기가 빠진 것 같았다.

한참동안, '그냥 산에 오를까? 만보기를 찾으러 왔던 길을 돌아가 볼까?' 고민했다.

찾으러 가자니 낙엽이 많았던 밤나무 아래에서 꼭 찾는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극성스러운 모기떼가 지긋지긋했다. '아깝지만 만보기를 포기하자.' 생각하고 다시 산을 올랐다.

그런데 멸 발자국을 떼는 동안, 만보기를 또 사기엔 시간이 마땅찮을 뿐 아니라, 

'만보기 값이 밤 몇 되박 값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발길을 돌렸다.

밤을 주웠던 밤나무 아래에서 포복을 하듯 낙엽을 하나하나 치우며 만보기를 찾았다.

아무리 찾았지만 찾는 만보기는 보이지 않고,

웬 떡이 또 왔나 싶었는지 모기들은 더 극성이었다. 

그새 떨어진 밤알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밤알도 줍고 싶지 않았다.

실컷 모기들에게 헌혈하면서 밤나무를 몇 바퀴 맴돌아도 보이지 않는 만보기.

찾기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면서 서운한 마음에 뒤돌아 보는데….

한쪽의 낙엽 속에서 빛나듯 까만 뭔가가 보였다.

얼른 다가가 낙엽을 들추자, 그토록 찾던 만보기가 아닌가!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것처럼,

얼마나 반갑던지…

물건도 사람처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 것은 큰 기쁨이다.

내게 소중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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