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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부조금

출근길에 집을 나서면서 쳐다본 우편함에는 하얀 봉투 하나가 꽂혀있었다.

꺼내보니 6년 전 명퇴한 은행친구가 보낸  아들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었다.

1월은 결혼의 성수기가 아닌데도, 집사람과 내가 받은 결혼 청첩장은 네댓 개가 되고,

겨울부터 봄이 되는 환절기엔 해마다 많았던 부고(訃告) 또한 벌써 여러 건이 문자로 왔다.

여러 해 전에는 나는 결혼 청첩이나 부고를 받게되면 부조금을 친소의 정도에 따라 적당히

정했지만, 요즘은 치부책을 보고 빚 갚는다는 기분으로 정한다.지금까지 준 것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딸 둘의 결혼과 이태 전 아버지의 장례에서 받은 부조금을 기록한 치부책이다.

나는 경조사 연락을 받고, 이 치부책을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간사한지를 느끼곤 한다.

내가 받을 때는 부조를 많이 하는 사람이 고맙기만 하더니 내가 갚아야 되는 청접장을 받았

을 때는, 내게 부조를 적게한 사람이 다행이고, 부조를 아예 하지 않았던 사람은 '나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생겨 더 다행이다 싶으니…,이런 얄팍한 마음이 생기는 나 자신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한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결혼할 무렵에는 기껏 2천원, 3천원이었던 부조금이 3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에는 최소 5만원이고, 웬만하면 10만원이지만, 어지간한 예식장의 밥값 또한 적게는 5만원

전후라 많게는 10만원 전후라부조금이 많다 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 일정한

수입이 없을 때는 큰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조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준말이라던데,

내가 어릴 때, 고향에서 보았던 시골의 상부상조가 떠올랐다.

그때, 고향에서는 어느 한집에서 결혼 또는 회갑 같은 잔치가 있을 때는 동네 대부분의 집에

서 막걸리, 감주, 메밀묵 등 잔치에 필요한 음식을 만들어서 들고가고, 동네의 어른들뿐 아니

라 아이들도 잔치집에서 음식을 먹었으니 동네 잔치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는 말이 있을만큼 어려웠던 시절도 상부상조라는 아름다운 풍속

이 있었기에 큰 일들을 잘 치룰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이 아름다운 풍속이 뇌물, 인사 등 다른 수단으로도 꽤 변질되었다며 걱정하는 사람들

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한 사람을 돕는 십시일반과 다르지 않은 상부상

조의 원래 뜻을 잘 되살린다면 큰 일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는 정말 좋은 풍속일텐데….

나도 이제는 청첩장이든, 訃告를 받게되면 빚을 갚는다는 마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 또는 슬퍼하는 마음을 부조봉투에 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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