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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야기

원준이 할머니의 생일

올 만우절은

집사람 생일이었다.

생일을 앞둔 주말 원준이는 엄마, 아빠, 이모랑 이모부를 따라 FC서울과 FC경남의 K-리그 개막전을 보러 상암 축구장으로 갔다. 원준이는 "이겨라 축구장"에 간다며 좋아라 했는데... 흐리고 쌀쌀한 날씨가 약간 걱정되었지만 집사람과 함께 16시부터 시작하는 작은 콘서트를 보기 위해 대학로의 조그만 극장을 찾아 집을 나섰다.

 

 

  별로 낯이 익지 않은 젊은 신인가수들이 "오 남매라는 그룹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에 앞서 지명도를 높히기 위해 소극장에서 장기 공연을 하고 있단다. 『오 남매』라 해서 5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인가 했더니 "오" "五"가 아니라 감탄사 "Oh!"라면서 6명의 그룹이란다. 100여명 정도의 많지 않은 관객이지만 무대와 맞닿을만큼 가까이 앉아 가수들과 같이 호흡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반응하기에 대형 콘서트와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주로 힙합과 랩이 많아 젊은이들에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적지않은 4,50대의 관객들이 같이 팔을 흔들며 흥겨워하고 있다. 음악이라면 원체 소질이 없지만 관심조차 없었던 나에게는 무척 경이롭고 부러운 모습이었다. 1년전의 아빠라면 딸 보라는 이런 콘서트 티켓을 결코 사지 않았을 텐데 작년 여름부터 색소폰을 배운다며 매일 색소폰을 둘러매고 연습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이젠 음악에 제법 흥미를 가진 줄 생각하는 모양이다. 1시간 반동안 콘서트를 보는 내내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며 흥겨워 하는 집사람을 따라 음악과 친해지고 싶어 박자를 맞추면서 몰입하려 애썼지만  쉽지않았다. 그나마 열광의 분위기와 '매일 매일 하루종일 노래하는 저 가수들은 힘들지 않을까? 노래부르는 가수들은 얼마나 흥이 날까?' '관객들은 뭐가 신이나 저렇게 야단일까?' 하는 잡생각을 하느라 집사람에게 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짧지않은 시간을 쉼없이 같이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스스로 음악에 소질이 없다, 흥미가 없다, 관심이 없다며 멀리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는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겨울 목감기가 심해 이빈후과를 찾아갔더니 내 목을 들여다 본 의사가 "선생님 노래 잘 부르시죠?" 놀리나 싶었다. 젊잖게 "아뇨, 음치중에 상 음치입니다."했더니 내 성대가 이중구조라고 설명하면서 아나운서나 가수들의 목 구조가 대부분 이중성대라며 나도 노래를 했다면 잘했을 거란다.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음악을 가까이 하려, 친해지려 좀 더 노력해야겠다 마음먹으며 아이들과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집사람과 내가 먼저 도착하고 조금있으니 아이들이 도착했다. 이틀 후 맞을 집사람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바다고기라면 새우부터 고래까지 굽는다는 역삼동의〈굽다, 고래불〉로 모였다. 우리 손자는 난생 처음 간 축구장 한자리에서 2시간을 보내기가 얼마나 지루했던지 엄마와 아빠, 이모랑 이모부까지 많이 힘들게 했단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서는 "이겨라 축구장" 갔다 왔다며 자랑하느라 신이 난 원준이를 보면서 준이가 좀 더 크면 가끔 야구장이나 축구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아들이 없어 함께 즐기지 못한 스포츠 관람 재미를 손자로부터 맛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음식이 나오기 전, 원준이는 몇차례나 반복해 케익에 촛불을 켜고 축가를 부르며 할머니의 생일을 많이 많이 축하해 주었다. 맛난 요리를 먹으며 내가 농담삼아 "이러다 내일 모래 진짜 생일날까지 매일 잔치하는거 아니야?" 라 했는데 정말 생일 전날인 다음날 저녁에는 온 식구가 모여 '스파게티 파티' 하고, 음력 생일날인 4월1일 저녁에도 다 모여 미역국에 논현동에서 보내 온 생일케익에 촛불을 켜고 축가를 또 불렀으니 내가 농담한대로 2박 3일(?)간 우리가족이 만든 행복잔치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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