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김장하느라 집사람과 함께 가락시장에서 배추를 사다가 욕조에 비닐을 깔고 물을 받아 계란이 뜰 만큼 천일염을 넣어 배추를 절였는데... 다음날 아침 욕실에 들어가니 욕조에 물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밤새 욕조 수도를 잠그지 않은 것이다. 소금물은 완전히 맹물이되어 낭패를 당하고는... 이듬해부터는 절인 배추를 주문해 김장을 담근다.
올해도 황토에서 자란 배추가 좋고 바닷물로 절인다는 전남 해남에 20kg 4박스를 주문했으니 내가 적극 도우기로 했다. 절인배추가 도착하는 금요일(12.7) 하루 휴가를 내고 아침운동을 다녀오니 배추가 도착했다. 집사람과 함께 양재동 하나로 마트로 가서 무우, 쪽파, 홍갓, 청각, 생새우등 갖가지 김장 부자재를 사는데 최근 한파와 폭설로 가격이 많이 올랐단다. 절인배추 4박스면 배추가 20∼24포기쯤 될거라는 생각에 메모지를 체크하면서 각종 부자제와 수육거리 돼지고기를 잔뜩 구입해 두고 고향친구들의 부부 송년모임에 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부부모임이라 서초동 교대역 부근의 맛난 고깃집에 6쌍 12명을 예약해 두었는데...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있는 친구가 폭설로 인한 아파트 제설작업에 대기하느라 부부모두 참석치 못한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우리 모임 회장인 친구의 부인이 참석치 못한 사유는 며칠전 친구가 거실에서 가벼운 스윙연습을 하는데 잠자는 줄 알았던 7살짜리 강아지가 갑자기 뛰어들어 골프채에 맞는 바람에 머리를 크게 다쳐 뇌수술을 하고 1주일간 입원했다가 퇴원해 지금은 집에서 회복중이라 혼자 두기가 안쓰러워 모임에 오지 못했단다. 1주일간 입원하는 동안 하루 병원비가 30만원이 넘어 송아지 값이 들었다니 송아지보다 비싼 강아지가 된 셈이다.
또 상계동에 거주하는 우리 총무도 부인이 참석치 못했는데, 그 이유는 한 어린이를 어린이집 하원시켜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돌봐주는데 약속시간까지 아이부모가 오지않아 모임에 올 수 없게 되었고, 안성에서 낙농업을 하면서 축산 유관기관에 근무하는 친구의 아내는 젓소때문에 모임 참석을 못 했다니... 내가 농담삼아 얘기했지만 세 새끼땜에 이번 우리 부부모임은 영 싱거워졌다. 개 새끼, 소 새끼, 애 새끼때문에 6쌍의 부부중 온전히 참석한 부부는 2쌍밖에 안되었니...여기다 눈(?)새끼까지...... 그렇지만 축산업을 하는 친구덕분에 TV에서만 보던 쇠고기 이력제로 우리가 주문하는 쇠고기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사육되었는지, 언제 도축되었는지 등 소상한 정보를 알 수 있었으니 쇠고기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쇠고기 이력제는 포장에 붙어있는 라벨에 쓰여진 인식번호를 스마트폰으로 http://mtrace.go.kr 에 조회하면 바로 그 쇠고기에 관한 각종 정보가 나오는 참 편리하고 바람직한 제도인 것 같았다.
네(?) 새끼들 땜에 좀 일찍 귀가한 덕분에 김장준비를 할 수 있었다. 집사람이 찹쌀 풀을 쑤는 동안 나는 무우채만 썰었는데 집사람은 찹쌀풀로 양념반죽까지 만들어 토요일 아침 일찍 김장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두고 잠자리에 든다.
12월 8일 토요일 06시 기상,
양념장에 무우채와 각종 야채를 넣어 섞으니 양념장이 한 다라이나 된다. 24포기 김장은 문제 없을 줄 알았는데 전날 택배 온 절인 배추의 박스를 풀어 헤치니 왠걸 배추가 생각보다 많다, 집사람이 일일이 세어보고는 30포기가 넘는다며 양념장이 모자랄 것 같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일단은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김장을 시작한다. 배추에 김치속을 골고루 넣는다. 김장을 담그면서 내게 가장 힘든 것은 김장이 아니라 한번씩 벗는 고무장갑을 손에 끼는 일이다. 전날 내가 낄 요량으로 사온 고무장갑이 L 사이즈인데도 앞치마와 팔뚝에 양념장을 묻히며 한참 씨름을 하지않고는 끼워지지 않는다. 배추의 절반에 속을 넣었는데 남은 양념장은 절반에 훨씬 못 미치니 모자라는 게 틀림없지만, 일단 잠시 휴식∼
잠시 쉬는 동안 절인 배추를 담아 온 박스와 비닐을 정리하는데, 20kg을 담았던 박스가 엄청 튼튼해 그냥 버리기에 아까답는 생각이 들면서 목요일 많은 눈이 내린 날 원준이를 데리고 공원에 갔을 때 생각하던 눈썰매가 떠올랐다. 어릴때 아버지가 내가 탈 나무썰매를 만들 때 그랬던 것 처럼 나무대신 박스를 자르고, 철사 칼날대신 비닐을 씌운 밑창을 붙여 의자까지 넣으니 튼튼하고 멋진 썰매가 되었다. 즐거워하는 원준이를 태워 끌고 다닐 생각만 해도 기쁘다. 부족한 양념 속을 더 만들기 위해 가까운 마트에서 쪽파등을 사오는 동안 전날 통영에 주문한 생굴 5kg이 도착했다. 생굴까지 넣은 속을 넉넉히 채운 김치가 한통 한통 쌓이면서 내 고향 경상도 식의 재료에 집사람의 전라도 손맛까지 담겨져 별미가 기대되는 올 김장도 끝났다..
내가 김장 설겆이를 대충하고 쉬는 동안에도 정작 가장 힘 들었을 집사람은 잠시도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어제 사다 둔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삶고있다. 그리고는 집사람이 이제야 다 됐다며 보라네, 세라네 식구 모를두 불러 갓 담은 김장김치랑 생굴에 김치속, 절인배추, 돼지고기 수육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저녁을 먹인다. 이모집에서 낮잠까지 자고 온 원준이는 연신 "고기,고기"하며 맛있게 먹는 모습에서 하루의 피로를 씻고, 집사람이 맛있게 먹는 자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에서 친정엄마의, 장모의, 외할머니의 사랑을 느낀다.
아이들이 저녁까지 다 먹는 걸 보고, 집사람은 이젠 막 담은 김장 2통과 몇가지 반찬을 듬뿍 챙기더니, 같이 부천에 가자며 운전을 부탁한다. 형수께서 최근 건강이 좋지않으니 김장을 못했을 거라며 김치통을 싣고 원준이를 데리고 부천을 다녀왔다. 내일은 제기동 처형집에도 김치 한통을 갖다드리고, 아버지 첫 기일인 크리스마스 날 시골갈 때는 엄마가 드시도록 김장김치를 가져 갈 거라고 하니 언제나 넉넉하게 마음 쓰는 집사람이 고맙고, 장인, 장모님 살아계실 때 無心했던 내가 부끄럽고 미안하다.
(배추 택배박스로 만든 썰매)
(할머니와 함께 즐거운 정원준)
김장의 유래
'채소를 소금물에 담근다'는 의미의 '침채(沈菜)'는 '팀채',
『삼국사기』에는 신문왕이 683년에 왕비를 맞이하면서 내린
중국에서는 3000년 전에 이미 오이지를 ‘저(菹)’라 하였고,
한편 지(漬)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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