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 새해의 한 다짐
이 석 도
“말도 안 돼, 할머니가 어떻게 만들어.”
맛있다며 뼈다귀 해장국을 잘 먹고 있던 여섯 살배기 외손자가 놀란 듯이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끓인 해장국이 맛있냐고 물었던 아내는 식사를 멈추더니 외손자를 주방으로 데려가서는 끓고 있는 냄비의 뚜껑을 열어 보였다.
“정말, 할머니가 만들었네. 너무 맛있어서 사온 줄 알았는데…”
집사람은 외손자를 꼭 껴안았다. 손자가 할아버지보다 훨씬 낫다며 볼에 연신 뽀뽀를 해댔다. 앞으로 더 맛난 요리를 자주 만들어주겠다며 손자랑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 도장까지 찍는 신명 난 모습의 아내가 전날과는 아주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전날 저녁 식탁에도 뼈다귀 해장국이 올라왔었다. 돼지 뼈랑 잘 어우러진 우거지가 푸짐하게 들어있고, 들깻가루까지 듬뿍 뿌려져 있어 꽤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해장국에 밥을 말아 먹기 시작하자 마주 앉았던 집사람이 뼈다귀 해장국을 난생 처음 끓였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돼지 뼈를 사서 핏물을 뺀 다음 몇 시간을 끓인 이야기를 하고, 음식점에서 먹었던 뼈다귀 해장국처럼 맛나게 끓이고 싶어 우거지를 삶아 넣고 들깻가루도 많이 넣었단다. 내가 국물 한술을 입에 떠넣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맛이 어때요?”
제법 맛이 있었다. 하지만, 수십 년의 직장생활 동안 집 밥보다 식당 밥에 더 익숙해지고, 온갖 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내 입맛에 음식점의 해장국만큼 맛나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잘 먹어 주는 것이 음식 칭찬인 줄 알고 자랐던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먹고만 있었다.
“응, 괜찮네.”
몇 번의 물음을 듣고서야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집사람은 시큰둥해져 있었다. 요리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느니, 나랑 사는 게 재미없다느니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가 고향집이나 고모집의 반찬은 늘 맛있다고 한단다. 마누라가 만든 반찬을 맛있다고 한 적이 몇 번 되느냐고 물었다.
삼십 수년 전 신혼 때의 이야기까지 꺼냈다. 남자에게 보신탕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먼 시장에까지 가서 개고기를 사다가 개장국을 끓였더니 보신탕을 끓였다고 내가 잔소리만 하곤 손도 대지 않는 바람에 몽땅 쏟아버렸단다. 집안일에 아무리 애를 쓰고, 잘 해도 남편으로부터 잘했다는 칭찬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했단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아내에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던 기억은 많은데, 칭찬을 했던 기억이 별로 없었다.
왜, 그랬을까?
왜, 유독 집사람에게는 칭찬에 인색했을까?
직장생활을 할 때는 동료나 고객 등 다른 이들에게는 관심의 표현이랍시고 칭찬을 곧잘 했었는데….
요즘은 손주들에게는 칭찬을 입에 달고 살면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여섯 살짜리 외손자의 칭찬 한 마디에 딴 사람이 되었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마음을 다졌다.
‘새해에는 집사람을 춤추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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