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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이야기

고향을 빛내는 후배

 

(내 고향 명대의 전경)

 

 

대구에서 남쪽으로 100여 리. 

경상북도 끝자락은 慶北 淸道郡.

淸道의 山東지역엔, 낙동강의 지류인 동창천이 흐르고 영남알프스라 불릴만큼 높고 아름다운 산들을 경계선으로 해 울산광역시와 밀양시를 이웃하는 梅田面이 있다. 산 높고, 물이 맑으며 인심마저 좋은 전형적인 농촌인 이곳에 固城李氏 집성촌 마을이 있는데, 바로 내 고향 梅田面 溫幕理(明臺)이다.

또, 임진왜란 때 옥포만호로 있으면서 전장에 나가 임진왜란 최초의 승전인 옥포해전에서 대전과를 거두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천거로 경상좌수사로 승진하였으며 후일 삼군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한 息城君 이운룡 장군(1562∼1610)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50여 년 전에만 해도, 우리 동네의 가구수는 300호가 훨씬 넘었다. 집집마다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온종일 골목마다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넘쳐 흘렀던 농촌치고는 꽤 큰 마을이다.

이 시절, 고향의 초등학교에는 재학생들이 무려 700명을 넘을 때도 있었다.

매월 4, 9, 14, 19, 24, 29일이면 마을 앞 장터에 5일장이 섰고, 장마당은 불콰하게 酒氣가 오른 어르신들의 언성으로 시끌벅적했지만, 다샛만에 찾아 온 상인들이 진열해 둔 생선과 잡화, 싸전 앞에는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 여름날의 장날이면 우리는 아이스께기 장수를 따라다니며 졸졸 흐르는 단물을 받아먹는 재미에 푹 빠져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의 고향은 너무 썰렁해졌다.

몇 년 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새로 지은 교회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지만,

5일장이 사라진 지는 벌써 몇 십년이 되었고, 자식들을 도회지로 떠나보낸 어르신들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9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내 고향의 초등학교도 재학생이 너무 적어서 2012년에 폐교되고 말았으니….

 

이런 내 고향에 큰 경사가 생겼다.

올 4월에 치루게 될 제20대 국회선거를 앞두고, 며칠 전 각 정당(政黨)에서 비례대표를 발표했는데,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발표한 비례대표 명단에서의 남성 최고 순번인 2번이 이종명 예비역 대령이 아닌가.

그가 내 고향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으니.

내 고향 明臺의 자랑이자, 우리 淸道의 자랑이다. 

내 모교 梅田初等의 자랑이자, 우리 固城李氏의 자랑이다.

방송과 일간신문 등 모든 메스컴에서는 연일 그에 대한 대서특필의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그는 DMZ의 영웅이다. 

매전초, 매전중, 달성고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9기로 임관한 그는 대대장으로 근무하던 2000년 6월 27일 경기도 파주 인근의 비무장지대(DMZ) 수색작전 중 후임 대대장이 지뢰를 밟아 쓰러지자 전우를 구하러 들어갔다가 그도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에 들어오려는 부하 장병들에게 "위험하니 들어오지 말라."고 제지하며, 부상 입은 전우를 부축해 포복으로 현장을 탈출한 참군인으로 살신성인의 표상이 되었으며, 이후 26개월 간의 재활치료를 거쳐 육군대학 교관으로 복귀해 지난해 10월 만기 전역한 오늘날의 영웅이다.

 

국회진출!

집권당의 비례대표 2번이라면 국회의원은 따논 당상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선거 때만 되면 입후보자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공약(空約)을 내세우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 큰소리 치며 머리를 조아린다. 간이라도 빼줄 듯이 알랑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금뱃지만 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 없다. 오직 자신의 사욕(私慾)과 당리당략(黨利黨略)만을 위해 싸우고, 계파 싸움 등 권력투쟁만 일삼는 집단이 바로 국회이고, 국회의원이 아니던가. 

하기사, 정당(政黨)의 무리 당(黨)자는 같은 목적으로 모이는 사람들의 무리를 뜻하는데, '당(黨)'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검을 흑(黑)'자 위에 '입 구(口)'자가 있고, 그 위에 지붕이 쓰여져 있는 모양이니, 결국 속 시커먼 사람들이 말만 무성한 채 한 지붕 밑에 있는 모습이다. 이 말은 곧, 장치인은 속이 시커멓다는, 또는 속이 시커멓게 되어야만 정치인이 된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득 옛 시조가 생각난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白鷺)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들이 너의 흰빛을 시샘하나니,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 더럽힐까 걱정하노라.

포은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 가던 날, 팔순의 노모가 간밤의 꿈이 흉하니 가지 말라고 문밖까지 따라 나와 아들을 말리며 이 시조를 읊었다고 하는데…, 

고고하고 맑은 정신의 소유자라면 시커멓게 물들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나라와 전우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살신성인의 참군인이라면,  

조선시대의 최대 국난이었던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원균의 부하 장수였음에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도와 나라를 구한 식성군 이운룡 장군의 출생지인 慶北 淸道郡 梅田面 溫幕(明臺)에서 가난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자라면서 어린 아이답잖게 과묵하고 총명했던 내 고향의 후배 이종명이라면, 폐수처리장의 물보다 더 혼탁해진 지금의 정치판에서도 능히 불순물을 걷어내고 중화시켜 주위를 맑게 하는 청정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폐교된 모교 매전초등과 교회 건물 오른쪽의 이 대령 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