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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백일 날의 액땜

 

백일 날의 액땜

 

 

이 석 도

   “꽈당∼”

   마치 쇳덩이가 떨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눈앞에 별이 번쩍했다. 운동하던 사람들이 놀라 돌아보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대답은 했지만, 금방 입술이 얼얼해지면서 끈적끈적한 게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얼른 거울 앞으로 갔다. 입술이 터지고, 입술 옆은 제법 깊게 찢어져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몇 일 앞 둔 토요일, 아침 운동으로 헬스장에서 ‘토탈-힙 머신’이란 하체 단련 기구에 무거운 중량으로 다리 운동을 하던 중 다리가 미끄러져 빠지면서 발목에 걸쳤던 발걸이가 튕겨 내 뺨을 강타했던 것이다.

   샤워는커녕 얼굴조차 씻지 못한 채 얼굴을 감싸고 들어서자 집사람이 깜짝 놀랐다.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지만 계속 피가 뚝뚝 떨어졌다. 가까운 동네 병원으로 갔더니, 의사는 상처가 깊다며 일곱 바늘이나 꿰맸다.

 

   꿰맨 상처에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붙인 채 딸의 집으로 갔다.

   사돈네 가족들까지 다 모여 백일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얼마나 다쳤냐며 걱정을 했다. 나는 몇 바늘을 꿰맸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가 가족들이 모두 모여 백일상을 차리고 사진을 찍는데, 외할아버지란 사람이 훈장도 아닌 큼직한 밴드를 붙이고 있으려니 민망했다. 눈앞에 맛난 점심상이 차려졌지만, 마취가 풀리기 시작한 입술이 아파서 식사는 물론 외손자의 백일 떡조차 먹을 수 없었다. 내가 백일잔치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 때문에 연말의 많은 송년모임에서 술 한 잔 제대로 마실 수 없고, 색소폰 연습도 한동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분은 더 언짢아졌다.

   그때 사돈이 웃으며 말했다.

   “사돈, 정말 큰일 날 뻔 하셨네요. 그래도 그만하시니 큰 다행입니다. 외손자 백일 날에 액땜했다 생각하세요.”

 

   앞으로 닥쳐올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긴다는 액땜. 손자에게 닥칠 액(厄)을 막을 수만 있다면 이 상처가 무슨 대수랴.

   지금도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는 손자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다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