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6. 월요일
매일 했던 것처럼 왼쪽 무릎에 무릎 보호대를 두른 다음 오래 걷는데 좋다면서 집사람이 사다 준 발가락 보호대(?)를 발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러곤 어제 오후부터 근육이 뭉친 것처럼 불편해진 오른쪽 종아리에는 파스를 붙인 후 펜션을 나섰다.
기분이 상쾌했다.
높은 산으로 빙 둘러싸인 문경 산골의 맑고 신선한 공기 덕분도 있겠지만,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푹 잤기 때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내가 울산지점장으로 근무하면서 사택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의 생각이 났다. 보통 때는 한두 달에 한 번쯤 울산에 내려오는 집사람이 겨울철만 되면 지글지글 끓는 사택의 온돌방이 좋다며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내려와 옆에 침대를 두고도 찜질한다며 온돌방을 뒹굴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문득 집사람이 보고팠다. 자기 전에 빨아서 방바닥에 늘어놓았던 옷이랑 양발까지 온돌방이 뽀송뽀송하게 말려준 덕분에 옷 입을 때의 기분은 더 좋았다.
어제부터 나와 같이 굽이굽이 걸었던 불정천은 아주 빼어난 아침 경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 고향 청도의 푸른 듯 맑은 강물과 달라 보였다. 어제 오후부터 나와 함께한 강물은 분명 바닥이 환히 보일 만큼 맑은데도 어딘가 검은 물이 흐르는 듯 느껴지는 불정천을 보면서 '이상하다.' 여기고 있었는데, 불정역의 역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비록 20여 년 전에 폐쇄되기는 했지만, 석탄 수송역으로 세워진 불정역도 연탄이 주 연료이던 때가 최고의 전성기였단다.
석탄 채굴의 상처를 씻어내는 물이 흘러 불정천을 검게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불정천 변을 걸었다.
한참 걸어가는 내 앞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선 교각들이 나타났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은 그 교각의 사이를 지나가고, 내가 걷는 길 옆의 산허리를 돌아가는 또 다른 길에는 트럭 한 대가 느릿느릿 달려가고 있었다. 높다란 교각 위의 도로는 산에 막히면 산을 뚫고, 산과 산 사이는 교각을 세워 연결했으니 아무런 막힘도 걸림도 없이 쭉 곧게 뻗은 중부내륙고속도로. 고속도로 못잖게 쌩쌩 달리는 차들을 마주 보며 지금 내가 걷는 길은 지역마다 이름을 달리하지만 지금은 [문경대로]라 적혀있는 3번 국도였다. 그리고 산허리 돌아 느릿느릿 달리는 차를 싣고 있는 길은 이름 모르는 지방도로였다.
이 셋의 도로를 한꺼번에 보면서 걷던 중,
불현듯 '이런 길을 걷는 것이 어쩌면 인생, 아니 우리의 삶과 비슷한 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걷고 싶어도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고속도로처럼 우리 같은 소시민들이 근접할 수 없는 특권층 사회. 넓고 빠른 지름길이지만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쌩쌩 달리는 차를 마주 보고 걸어야 하기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고 마음 놓고 쉴 곳조차 마땅찮은 국도 닮은 삶. 산 따라 물 따라 마을마다 다 들렀다 가느라 빙빙 돌아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느릴 수밖에 없지만 온갖 꽃구경 사람구경 다 하면서 쉬고 싶을 때 아무 데서나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시골길, 지방도 인생.
나의 삶을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국도를 걷듯 살았던 것 같다.
학창 시절은 물론 직장 생활에서도 남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 남보다 앞서야 된다는 강박감에 묶여 살아야 했다.
지금까지는 가정도 뒷전, 가족도 뒷전, 오직 직장만을 최고로 여긴 채 앞만 보고 달린 인생을 살았음을 깨달았다.
한 갑자를 다 보내고 걸어서 고향에 가는 지금에서야, 나는 국도의 갓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긴장을 해야 하는지, 얼마나 지루하고 무미건조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또 고속도로를 닮은 국도보다 시골길을 걷는 것이 훨씬 운치가 있고 걷기에 편할 뿐 아니라, 마음마저 편안하다는 걸 느꼈다. 비록 굽이굽이 돌아서 걸을지라도 이 길이 진정 내가 걷고 싶은 길이다 싶었다.
조급한 마음에 온갖 위험이 다 깔린 지름길을 걸어서 목적지에 일찍 도착해 푹 쉬는 것보다는, 조금은 늦더라도 천지사방 다 살피면서 꽃구경 사람구경 다 하면서 쉬엄쉬엄 시골길을 걷듯이 살아야겠다 싶었다. 이제부터라도 그리 살리라 마음먹었다.
입이 심심했다. 집사람이 배낭에 매단 주머니에 넣어준 인삼사탕을 입에 넣었다.
금방 입 안에 번지는 달콤한 맛을 느끼며 집사람에게 짜증을 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보여행을 떠나던 날 새벽, 배낭을 메고 일어서는 나에게 조그마한 복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인삼사탕을 넣은 주머니라며 말했다.
"심심할 때 입 안에 녹이면서 걸으면 괜찮을 거예요."
나는 옛말에 먼 길을 떠날 때는 속눈썹조차 떼놓고 간다는데, 왜 쓸데없는 걸 주느냐고 짜증을 냈었다.
그러면서 사탕주머니를 던져 버릴까 하다가 배낭에 그냥 쑤셔 넣었다가 이틀 전부터 배낭 멜빵끈에 매달고 다니면서 입이 심심할 때마다 입에 넣어 녹이면서 걸었다. 사탕의 달콤함은 심심함을 달래 줄 뿐 아니라 피로감도 꽤 많이 덜어 주는 것 같으면서 집사람의 사랑까지 느끼게 하고 있으니 어느덧 사탕주머니는 사랑주머니가 된 셈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성신교회 부근에 도착했다.
오늘 당초 도보예정거리는 35.6km였다. 그런데 55,175보를 걸었으니 40km는 족히 걸었나 보다.
함창 부근에서 앱을 들여다보며 지름길을 찾느라 우왕좌왕하면서 헛 고생한 거리가 5km나 될 줄이야.
길가의 감나무와 배나무에서 딴 홍시 2개와 배 1개로 아침을 때우고, 김밥 2줄과 캔커피로 점심을 때웠더니 배가 고팠다.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모텔에 들어가 주변의 식당을 물었더니 인근에는 없단다. 식당과 가까이 있는 다른 모텔의 위치를 묻자 모텔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는 자기들이랑 저녁식사를 같이하면 된다며 밥이 다되면 연락할 테니 방에 올라가라고 했다.
고맙꾸로…
※ 오늘의 도보경로(40km): 불정맨션→함창시장→공갈못휴게소→성신교회→예스모텔(걸음수: 55,175보)
※ 오늘의 경비(33,300원): 김밥, 캔커피 3,300원, 모텔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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