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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위하여...

도봉산

 

2013. 3. 2.

고향친구 둘과 도봉산에 올랐다. 상계동에 살면서 도봉산을 자주 오르는 종태와 함께 산행하기 위해  구성에 사는 상진이와 나는 일찍 집을 나서 도봉산역에 도착해 만남의 광장에서 모두가 만나 막걸리 한통만 사서는 10시에 출발했다. 한일은행 역전지점 서무계장 시절 지금의 원준이쯤 되었을 쌍둥이 보라와 세라를 동료들과 번갈아 안고 업고하면서 올랐던 산길. 결국은 정상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쯤에서 고기를 굽고, 밥을 지어 점심을 먹고 내려왔던 추억의 도봉산을 30여년만에 다시 올랐다. 도봉산을 잘 아는 종태가 오봉과 여인봉을 넘어 송추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 입산해 작은 개울을 지나자마자 비까번쩍한 일주문이 보이고 일주문에는 '한국불교 도봉산 능원사' 란 현판이 걸려 있다. 늘 '대한불교 ○○○'만 보아오다 '한국불교'란 문구를 보니 좀 생소하다. 큰법당의 이름도 대웅전이 아니고 용화전이다. 1977년에 창건해 2005년 일주문은 물론 일주문 넘어 보이는 큰 법당, 지붕위의 봉황까지 황금색으로 도배한 절은 꼭 금시계, 금팔찌 칭칭 감은 졸부에게서 풍기는 돈 냄새가 느껴진다. 수려한 도봉산 자락에 어울리게 검소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꾸며졌더라면 등산객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을텐데.... 혹시라도 신도들의 피땀어린 시주돈으로 금칠했다고 불교계 전체가 욕을 먹을까 걱정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이번엔 초라한듯 두개의 깍은 바위를 세워 만든 절 입구가 보였다. 수년 전 법원경매라는 아픔까지 겪었던 도봉사다. 도봉사는 고려 4대 광종무렵 혜거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고려 8대 현종이 거란 침입때 개경(개성)에서 이 절까지 피난을 왔을 만큼 오래되고 유명했던 사찰이다. 창건한 혜거스님이 모셔온 부처님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 151호이며 최근 국보지정을 상신했다는 대웅전 삼존불의 중앙 석가여래철불상 부처님께 삼배라도 올리고 갔으면 좋겠는데 혼자가 아니라 들러지도 못하고 지나쳤다.

 

  '도봉옛길'을 따라 올랐다. 급할 것 없는데다 초등학생시절부터 땔감나무를 잔뜩 실은 지게를 지고 고향산을 뛰듯 탔던 촌놈들이라 왠만한 산은 두려울리 없다. 오봉샘터에서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인 다음 쉬엄 쉬엄 올라 빼어나게 멋지고 웅장한 오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허기를 채웠다. 나는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식당에서 점심먹을 요량으로 사과랑 오랜지만 조금 준비했는데 상진이는 집사람이 직접 준비했다며 김밥과 바나나, 방울토마토, 커피, 쵸콜렛까지 많이 가져왔다. 종태도 김밥에 컵라면, 녹차, 방울토마토를 준비해 왔다. 달랑 과일 몇 조각만 가져갔는데 친구들 덕분에 전망좋은 오봉에서 막걸리 한잔씩을 겸해 점심을 맛나게 먹고 있는데, 고양이 한마리가 살금 살금 다가와 멀찌감치 앉아 있더니 우리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슬그머니 다른 등산객의 점심자리 부근으로 옮겨 웅크리고 있다. 김밥 한조각을 던지자 재빨리 돌아와 물고 사라진다. 털이 반질반질하고 제법 통통한 걸 보니 굶지는 않는 모양이다. 다섯개의 巖峰인 오봉은 오형제의 봉우리라는 뜻과 다섯 손가락의 봉우리라는 의미도 있단다. 오봉에서 멀지않은 곳에 女性峰있다. 이름에 딱 어울리는 오묘하게 생긴 바위다. 여기서도 기념사진 한 컷... 오봉과 여인봉에 얽힌 재미난 전설이 전해 오는데 전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옛날 이고을 원님이 절세미인의 딸 하나를 데리고 부임해서는 장군감 사위를 구하기 위해 여기 다섯 봉

   우리에 가장 높고 아름다운 바위를 올리는 자에게 딸을 주겠다는 방을 붙혔단다. 마침 이 고을의 한 부

   잣집에 아들 오형제가 있었는데 이 다섯형제가 방을 보고 서로 원님의 사위가 되겠다고 경쟁을 시작했

   단다.  오형제는 서로 도우지 않고 크고 아름다운 바위를 구해 봉우리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큰 아들은

   첫째 봉우리에 큰 바위를 올렸고, 둘째 아들은 둘째 봉우리에 크기는 좀 작지만  제법 아름다운 바위를

   올리고, 세째 아들은 세째 봉우리에 좀 더 반듯하고 매력있는 바위를 올렸지만 크기는 좀 더 작았단다.

   크기로 치면 첫째, 아름답기로 치면 세째,  크기와 아름답기의 균형으로는 둘째여서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단다. 막내는 원래있던 바위에 나름 바위를 굴러 올렸지만 형들의 바위에 비해  아주 작아 쑥스러

   워하고 있는데  시합을 마치는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네째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바위를 굴리며 나타

   났다. 네째가 큰 바위를 봉우리에 올리기 위해 애를 쓰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거의 다 올라갈 무

   렵 경기가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네째봉의 바위는 위에까지 올리지 못하고 봉우리 옆에 놓여있어 서울

   쪽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단다. 경기가 끝나고 우승자를 가려야 되는데 원님은 바위만 보면 네째가 최

   고지만 꼭대기에 올리지 못했으니 뽑을 수 없고, 나머지는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어 결국 사위감을 뽑

   지 못했단다. 이 다섯 바위를 바라보면서 이제나 저제나 낭군이 정해지길 기다리던 원님 딸은 기다리

   다 지쳐 죽었고 죽어서는 바위가 되었는데 이 바위가 곧  여성의 상징처럼 생겨 여성봉 또는 여인봉이

   라 부르게 되었단다. 지금도 이 여성봉은 다섯 형제의 상징인 오봉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여인봉까지는 햇볕이 들지않아 얼음판 길이 군데 군데 있었지만 완만히 오르는 산길이라 크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이고 응달진 북쪽이라 대부분 눈과 얼음이 그대로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아이젠을 준비했는데, 아이젠이 없었다면 큰 낭패를 당했을 것 같았다. 요즘 날씨만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아 만남의 광장에서 아이젠을 구입한 상진친구도 사길 잘 했단다. 강남에 살고있어 가끔 찾는 청계산은 흙으로 이루어진 肉山이라 아담한 여성스러움이 있는 반면 도봉산은 한 개의 화강암으로 형성된 骨山이라 웅장한 남성스러움이 있어 등산하는 맛이 났다. 로프와 스틱에 의지하고 아이젠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3시가 좀 넘어 송추 유원지쪽으로의 하산이 끝났다. 쉬엄 쉬엄 걸었지만 족히 4시간이 넘는 시간을 걸었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다. 아마 오랜만에 고향친구들과 함께 한 즐거운 등산이라 그런가 보다. 의정부에서 집에 오는 전철을 타기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비석은 사라지고 받침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비석 터가 눈길을 끈다. 둘러쌌던 방책이 있고 조경수를 볼때 상당히 정성스럽게 보존했던 비석이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사연을 가진 비석이었길래, 이처럼 밑둥치까지 잘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을까 궁금하다. 잘린 비석에 대한 궁금증만 가득안고서 의정부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도봉산 산행 안내도)

 

   

(능원사 전경)

 

 

 

 

(도봉사 입구)

 

 

 

     

(오봉 전경)

 

(오봉에서...)

 

(오봉의 산 고양이)

 

(여성봉)

 

 

(송추쪽에서...)

 

(송추의 밑둥치만 남은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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